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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Sep 26. 2024

눈 감으면 보이는 아름다움

소도시

여고생 친구들과 대학생이 되어서도 만났다.

우린 화장을 이제 막 시작한 터라 눈썹 반쪽이 없었다. Y는 세련된 엄마의 화장대와 옷장 너머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화장하는 것도 잘했다. 그런 Y는 우리를 볼 때마다 이리 와보라며 눈썹 칼로  '쓱쓱' 눈썹을 반절 밀어버리고 눈썹펜슬로 자신의 눈썹과 똑같이 뾰족하게 그려 넣었다.


J는 우리 중에서 눈이 가장 작았다. 눈에는 쌍꺼풀이 생길 공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숱이 없어 밀어버릴 눈썹도 없었다. Y는 차라리 이렇게 없는 눈썹이 오히려 그리기 쉽다며 J의 황량한 눈썹을 캔버스 삼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J에게 어울리는 눈썹모양을 찾아주려 연구하는 집중력이 멋졌다.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탐구자세를 보고는, 역시 진짜 공부는 학교밖에 있다며 Y에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해보라며 진로를 정해주었다.     


Y는 자신과 비슷한 눈썹을 J에게 그려주자 J는 이게 뭐냐고 싫다고 했다. Y는 어차피 지우면 된다며 이번엔 조금 동그란 반달모양으로 그렸다. J는 이번에도 이게 뭐냐며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Y는 안 되겠다며 눈썹 위에 콤팩트로 '톡톡' 하며 덮어버렸다.


“J야  원래눈썹이 너랑 잘 어울려, 우리 중에 자연미인도 한 명 있어야지.”


눈썹을 보기 위해 안경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한 J는 안경을 다시 쓰면서  "싫어! 나도 너희들처럼 눈썹이 있고 싶어" 라며 떼를 썼다.

“J야 넌 전문가가 필요한 거 같아. 야매로는 안 되겠어.”


 그 당시 유행한 메이크업은 김혜수의 산 같은 눈썹과 이영애의 스모키입술이었다.

J의 피부톤은 카페모카 하드색에 가까웠다.  J의 입술에 입술선을 그리고 그 안에 어두운 스모키를 붓으로 채워 넣었다. “J야 너 부시맨 같아. ” 우린 깔깔대며 웃었다.     


Y가 그려준 눈썹을 집에서 혼자 따라 그릴 수가 없던 나는 눈썹이 반쪽만 있는 채로 얼마간 다녀야 했다. 그 후로도 화장에 소질이 없던 터라 눈썹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자라는 데로 두었다. Y는 만날 때마다 최신유행하는 화장법을 선보여주었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매번 색이 달라졌다. 우리도 따라 해보고 싶어 서로 해달라며 손톱을 내밀었다.

  

J는 우선 화장법보다는 피부톤에 맞는 콤팩트를 찾아야 한다더니, 다음에 만날 때는 얼굴만 허옇게 동동 떠서 나타났다. 목과 얼굴이 분리된 채 나타난 J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린 파우치에 있는 각자의 화장품들을 꺼냈다. 화장품의 정보를 공유하고 이번엔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그리는 법을 Y가 선보였다. 얼굴이 각이 졌지만 피부톤은 아기피부처럼 맑고 깨끗한 C가 먼저 얼굴을 내밀었다.


섀도로 각진 턱에 음영을 주고 아이라이너를 그려 넣고 짧은 눈썹이지만 마스카라를 하고 뷰러로 최대한 잡을 만큼 잡아 올렸다. 처음 보는 얇은 쇠막대기에 라이터로 열을 가한 후, 눈을 뒤집어 까고는 열이 남아있는 막대기를 살금살금 움직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 작은 쇠막대기는 뭐냐고 물으니 Y는 다 쓴 마스카라의 솔들을 불로 태워버리면 이렇게 깔끔하게 쇠만 남는다고 했다. 그게 바로 눈썹 고데기가 된다고 했다.

놀라운 발명이었다.      


C의 짧은 눈썹이 순식간에 고데기되는 장면 본 우리는 나도 나도 해달라며 달려들었다.

J가 먼저 안경을 벗어젖히며 자신도 C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다. Y는 이미 J를 화장해 준다는 것은 고난 위의 도전을 감수하는 거라 팔을 걷어올리고는 섀도단계를 하고 아이라이너를 그리기 위해 눈꺼풀을 올렸다.      

옆에 있던 나는 아이라이너가 빨리 마르라고 손을 팔랑거렸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라는 Y의 주문에 J는 손거울을 들고는 눈을 떴다. 그 순간 아이라이너가 안보였다.


"감아봐."

"떠봐." 사라졌다.

눈에 지방도 많고 작아서 아이라이너가 묻혔다.  

"J야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거야 괜찮아. "

다음은 아이라이너가 감춰진 눈꺼풀을 뒤집어 까고 마스카라를 했다. J는 호들갑을 떨면서 간지럽다고 웃어대는 바람에 마스카라가 아래 눈두덩이에 묻어버렸다. 옆에서 손거울을 들고 있던 나와 C도, 도전의식에 불타던 Y도 의자에 엉덩이를 바짝 붙었다. 그러다 Y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바람 빠지는 한숨을 쉬었다.


"야야 못하겠다. J야 넌 얼굴이 너무 어려워.”

     

J의 얼굴은 한쪽 눈만 메이크업된 상태였다. 반쪽을 포기하고 한쪽을 지울 것인가 아니면 한쪽을 똑같이 채울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있었다. 나는 속눈썹 고대기 기법이 신기해서 호기심에 따라 해 봤다. 고데기를 할 땐 옆에서 팔을 건드리면 눈에 데어버리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건 누가 해주는 것보다 자기가 해야 잘되는 것 같다며 J에게 라이터와 쇠막대기를 건네주었다. J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속눈썹을 향해 가져가는 순간 "앗 뜨거워" 하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나 안 해! 그냥 살래!” 그제야 스스로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때 Y가 메이크업 파우치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J야 실망하지 마. 우리에겐 인조눈썹이 있어." 두 개의 눈썹이 케이스에 유물처럼 보관되어 있었다.

미스코리아대회에 나갈 때 붙일듯한 무서운 눈썹을 Y는 조심스럽고 귀하게 꺼냈다. 연약한 눈썹을 꺼내는 도구도 구비되어 있었다. 콘택트렌즈를 사면 주는 플라스틱 집게로 천천히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인조눈썹에 접착제를 바르고는 J의 눈을 다시 한번 뒤집어 까고는 속눈썹 위에 붙이고 손을 떼지 않고 기다렸다.

Y는 어서 마르라며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고 꾹 눌렀던 손을 떼었다.   

   

'캭 캭 캭' 순간 숨이 넘어갈 듯 웃다가 의자까지 뒤로 넘어갔다. 나자빠지는 우릴 보고는 혼자 웃지 못한 J는 손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자 만족스럽다는 듯 한쪽도 마저 붙어보라고 Y를 재촉했다.


오랜만에 뒤집어진 우린, 학창 시절의 소녀들처럼 눈물을 닦아가며 서로 등짝을 때려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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