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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Sep 28. 2024

지방애들은 고향친구에게 약하다

신림동

서울은 자다가도 코 베어가는 곳이라고 그랬다.

도시에 갖 입성한 지방애들은 한 번씩 사기당하기에 좋은 타깃이 된다. 아는 친구들이 하나둘 다단계에 말려들어가는 일들이 잊을만하면 일어났다.

갑자기 취직을 해서 서울에 간다고, 아는 언니가 자기 회사에 오라고 했다고, 숙식까지 해결해 준다고 짐을 싸고 도시로 온다. 군대 다녀와 복학하기 전에 구한 아르바이트, 서울에 취직하고 싶다는 후배들에게 전공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밀며 목돈 이삼백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 집에서는 취직했다 좋아하고 부모는 없는 돈 챙겨 자식들에게 보태 보내는 게 부모심정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는 다단계 숙소에서 도망 나온 사연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친하던 친구도, 동네 언니 형 선배도 믿었건만, 감쪽같이 속은 걸 알고 나면 그 배신감으로 더 이상 사람을 못 믿게 된다. 속은 사람이 다시 사람을 속이는 일이 반복되는 시스템이었다. 순진한 게 탓이 되고 모르는게 죄라며 자책하게 된다.


나도 취직을 준비하고 있을 때, 회원영입을 위해 나를 목표로 삼았는지 친하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자꾸 연락이 왔다. 친구들끼리 연락하다 보면 나한테만 연락이 온건 아니었다.

학교친구들은 냉정하게 잘라낼 수 일었지만, 어릴 적부터 놀던 고향친구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고향친구는 다단계 정신교육을 단단히 받고 왔는지 아직 취직도 못한 나에게 200만 원어치 화장품을 권했다. 그러니까 나는 드라이기 살 돈도 없어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며 버텼고, 마트에 가서도 전지현의 머릿결처럼 긴 머리를 날리고 싶은 엘라스틴 샴푸를 사고 싶었지만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저렴한 드봉샴푸로 연명하던 시절이었고, 김치를 볶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자취생이었다.     


친구는 서울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바로 취직해서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다고 했었다. 어느 날 본인 얼굴에 메이크업을 잔뜩 하고 어색한 정장차림을 하고 와서 나에게 내민 건 화장품 카탈로그였다.

눈치챈 나는 너 다단계라고 이건 아니라고 피 터지게 설득을 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신림동 미로 골목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매니저라는 사람까지 와서는 같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담당하는 관리 매니저는 열심히 매출을 높이면 자신과 같은 매니저가 되고 점장이 되면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다며 성공한 여성을 목표로 정신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허름한 신림동 방까지 찾아왔을 때는 나의 형편을 보기만 해도 불쌍해서 그냥 돌아갈 줄 법도 하지만, 다단계의 전략은 없는 사람에게 더 끈질기다.


친한 친구를 먼저 공략하는 다단계 접근전략에 따라 나를 타깃 삼은 친구는 결국, 우리가 함께 시골에서 보낸 우정기간을 들먹이며 불쌍하게 한건만 해달라고 매달렸다. 본인도 카드로 긁어 값아 나가고, 몇 명 더 모이면 돈도 갚고 승진도 할 수 있다고.      


어쩌겠는가 지방애들은 고향친구한테 약하다. 서울 하늘아래 부모형제도 가까이 없고 낯선 곳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도와주고 있었던 그때. 친구하나 살리는 샘 치고, 속는 샘 치고, 눈 딱 감고 150만 원을 카드 12개월 할부로 긁었다. 나는 내 생애 돈이 없어 가장 가난하던 시절, 내 생애 가장 비싼 화장품을 샀다.


고급스러운 병에 담긴 귀한 화장품은 세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친구는 피부가 좋아질 수 있다며 몇 단계에 걸쳐 발라야 하는 화장품 순서를 꼼꼼히 적어둔 메모를 내 화장대 앞에 붙어주었다. 종류도 많은 화장품을 콩알만큼씩 얼굴에 아껴 발라 쓰며 그 빚을 갚아 가느라 허리가 휘었었다.

신림동 방을 벗어날 때까지도 할부는 계속되었다.


친구는 그 후 더 이상 영업할 주변인이 없었는지 힘들다며, 다단계 같다며 그만두었다. 나의 카드할부는 여전히 매월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친구는 해맑게 앞으로의 진로를 이야기했다.

"나 이제 헤어디자인 배워보려고. "    


그 후 일담,

친구는 서울 입성식을 호되게 치른 후, 미용 아카데미에 등록을 했다. 수료 후 청담동 연예인들이 다니는 샵에 취직을 해서 어시스트부터 배워 헤어디자이너의 자리까지 이르렀다.

친구는 화장품 카탈로그를 내밀었던 친구들에게 머리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유혹하며 다시 미용실로 소환했다. 친구들의 머리를 연습 삼아 일이 끝나고 나서도 배움의 열정을 멈추지 않은 채 우리의 머리를 자르고 볶아놨다.


때로는 길이가 삐뚤게 잘리거나 머리카락이 타들어가거나 파마가 한쪽만 풀린다거나 염색이 얼룩덜룩 되는 어려 고초가 있었지만, 화려한 청담동의 불 커진 미용실 구석에서 퇴근 후 자신의 꿈을 위해 나의 머리카락을 이리 뜯고 저리 뜯었던 친구의 열정을 카드할부로 치렀다며 나를 위로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남자고 서로의 꿈을 응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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