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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Oct 01. 2024

지란지교를 꿈꾸며 1

반포동 지하

대학졸업 후 서울로 더 공부하러 가고 싶었으나, 부모에게는 더 이상 손 벌릴 수가 없었다.

난 목돈을 스스로 벌어 떠나기로 결심했다.

돈을 가장 많이, 빨리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근처에 있는 반도체 생산직 공장에서 3교대 야간근무를 하면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1년 일하면 퇴직금도 나오니 청춘을 딱 1년만 돈 버는데 바치기로 했다. 같은 목표를 가진 고등학교 친구 S와 함께 공장에 들어갔다. 둘은 서울 가기만을 꿈꾸며 버티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S는 한 달도 안 되어 도저히 못하겠다며 나갔다.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은 곰처럼 나는 홀로 묵묵히 버텼다. 야간, 휴일에도 일해 수당을 더 받았다. 공장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은 하나였다. 나의 꿈을 계속 되뇌는 일이었다. 일기에 쓰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서울에서 화려하게 날개를 펼칠 나를 상상했다.

     

드디어 일 년 되는 날, 퇴직금까지 챙겨 나와 바로 서울로 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엄마는 내가 친구들도 안 만나고 밤낮으로 고생하며 번 돈을 고스란히 모은 통장을 건네주었다.

부모에겐 믿음을, 주변인에게는 독한애라는 배지를 달고 독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동굴에서 뛰쳐나간 S는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S의 부모님은 딸과는 다르게 1년 동안 버틴 나를 굉장히 신뢰를 하셨고, 딸이 서울에 가서 지아랑 같이 살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1년을 버틴 친구이니 뭔들 못하겠냐 S는 나에게 시집오는 것처럼 정말 몸만 와서 나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자취방을 찾기 위해 S와 나는 일단 강남으로 갔다. 서울에 오면 강남이 아니던가.

빌라들이 즐비한 주택가의 부동산으로 들어가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우리의 형편이면 반지하만 가능하다고 했다. 빌라입구에서 아래 계단을 한 칸 내려가니 반지하방이었고, 한 칸 더 깜깜한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방이 나왔다. 우린 언제나 하늘이 보이는 지상에서만 살았지 지하방이란 말도 처음들었다.  지하창고라는 말에 익숙했지 지하에 사람 사는 방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반지하와 지하의 월세가격은 5만 원 차이가 있었고 반지하는 빛이 창문의 반쯤 들어오지만 방이 작았다. 지하방은 방이 큰데 창문이  없고 지상바닥에 뚫린 물받이 공간이 유일한 빛이자 창문이었다. 큰방을 누릴 수 있는 대신에 햇볕이 없는 대가를 감수하라는 듯, 가격의 차등을 주었고 선택은 우리의 몫이었다.


서울은 햇볕도 돈 주고 사야 하는 곳이구나.

대자연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는 일조량조차 도시에서는 평등하지 않았다.

     

우린 부모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로 올라온 사회초년생이다. 앞으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며 자신을 돌봐야 한다. 낯선 도시에서 돈걱정도 해야 했지만, 강남의 반짝이는 네온사인에 더 가슴이 뛰던 20대 초였다. 햇볕대신에 네온사인 불빛을 선택하기로 하고 지하방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잠만 잘 건데 뭐.”   

  

지하방은 우리와 함께 방을 공유하는 작은 동반자 있었는데, 그건 바퀴벌레였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부모밑에서 곱게만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우리의 눈물겨운 독립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골에서 온갖 동.식물들을 만나며 살았던 나 아니던가. 하지만 이건 처음 보는 벌레다.

     

퇴근을 하고 방문을 열고 불을 켜면 방 한가운데서 유유하게 돌아다니던 바퀴벌레는 순식간에 '사사싹' 숨어 들어갔다. 저 놀라운 광경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바닷가 바위에 가면 갯벌레들이 모여있다가 사람이 다가가는 순간 바위틈으로 무리들이 숨어 들어가는 재빠름에 소름이 돋지 않던가.

우린 방문을 열 때마다 바닷가 바위에 도착해, 방이란 섬으로 들어가야 할 때마다 소름 돋는 장관을 매일 경험해야 했다.


처음에 바퀴벌레를 보며 소리를 질러댔던 연약함은 점점 담대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바퀴를 잡기 시작했다.    

책으로도 때려잡았고 휴지로 눌러 집어 잡았다. 나를 놀라게 한 대가로 살아남을 줄 알았냐며 숨어든 곳을 파헤쳤지만 재빠르게 도망가는 바퀴벌레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점점 커지는 몸집과 새끼들까지 늘어나는 걸 보니 더 화가 나, 이미 뒤집어진 벌레 위로 에프킬라만 고약하게 뿌려대며 징그러움을 복수했다. 우리의 생활비 일부를 바퀴벌레 약을 사는데 소비하는 게 아까웠지만, 바퀴벌레의 번식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장 어둡고 습넓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지하방은 바퀴벌레에게는 최상의 터전이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우리가 방에 들어오면 양보하듯 자취를 감추어주는 것으로 바퀴벌레를 잊게 해 주었다. 사이좋게도 불이 켜질 땐 너희 공간, 깜깜 할 땐 우리 공간이라며 강남신사답게 굴었다. 잡다가 잡다가 귀찮아서 그냥 보내줄 만큼 덤덤해지며 바퀴벌레와의 공존을 인정했다.


네가 이겼다. 그래 같이 살자라는 비위 좋은 마음으로 지냈다. 정말로 우린 잠만 자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주말이면 네온사인에 정신 팔려 놀러 다니기 바빴으며 바퀴벌레가 먹고살 음식물조차 줄 여력이 없는 도시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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