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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Sep 18. 2024

환상 속의 그대

시골 바닷가


당신의 일탈 중 기억 남는 게 있나요?

나에게 묻는다면 단연, 혼자서 첫차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서태지콘서트를 보러 간 일이다.

내 나이 15살이었다. 파스텔핑크 마이마이 카세트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즐겨 들었다.

밤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쓰다가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눈물자국을 일기장에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흔적을 남기는 감성 풍부한 소녀였다.


나의 첫 연예인은 윤상이었다.

윤상에게 팬레터를 한창 쓰던 중, 혜성같이 등장한 서태지의 노래와 미소년의 얼굴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어디 그 당시 나뿐이었을까.

그러나 학생수가 많지 않은 시골동네에서 서태지를 열성적으로 좋아한 것은 나뿐이었다.

TV에서만 보던 서태지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라디오에서만 듣던 목소리를 직접 듣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콘서트가 열리는 잠실 주경기장으로 가기로 했다.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서울 갈 차비와 콘서트 티켓비용을 모았다. 콘서트는 일요일 오후, 시골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 걸리니 지하철을 타고 잠실주경기장까지 가고 2시간 콘서트를 보고 다시 터미널에서 막차를 타고 집에 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전날에는 엄마에게 일찍 교회에 갈 거라고 미리 말해두고, 서울에 입고 갈 옷과 가방, 소지품등을 머리맡에 챙겨두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버스를 놓칠세라 새벽부터 일어나 6시가 되길 기다렸다.       


일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버스정류장 앞 슈퍼에서 서울 가는 차표를 사고 6시 첫차에 올라탔다.

서태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꿈만 같았다. 버스 안에서 나는 콘서트에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이미 외운 노래가사를 다시 한번 정독하며 테이프를 들었다.

서울로 가는 버스 창밖으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내 마음도 둥근 태양처럼 설렘으로 부풀어 오르고 서태지를 만날 생각에 벅차올랐다.

마음이 놓인다는 듯 잠이 오기시작했고 서울에 도착했다는 버스기사의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하나둘 일어서 나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버스에서 내리려는 순간,


"아빠?"  

내리는 입구 앞에는 아빠가 서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내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평온하게 오는 동안 시골동네가 뒤집어졌다.

버스표를 파는 슈퍼주인은 교회집사님이다. 동네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웃인 작은 시골동네에서 내가 어느 집 딸내미이며 몇 학년인지도 대부분 알고 있다.

내가 서울이요 하며 차표를 살 때, 아저씨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다지 말수가 없는 슈퍼 아저씨와, 그다지 어른들에게 인사성이 밝지 않는 내가 서로 물을 일은 아니었다.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간 엄마는 내가 교회에 없는 걸 알았다. 교회친구들에게 내가 어디에 갔는지 물었다.

그때 슈퍼아저씨가 나를 찾는 엄마를 보고는 느리게 말했다.

     

"아침에 첫차 타고 서울 가던 교. "

"잉? 아니 애가 혼자 꼭두새벽에 서울 가는데 왜 말을 안 했유? "

"아니 차표 끊는 사람들한테 워디가냐고, 왜 가냐고 내가 일일이 붙잡고 다 물으면 된데유? "

"아니 그래도 그렇츄!"

"어린애가 혼자 버스 타고 서울을 가는디 왜 안 붙잡았유?  이상허다 생각 안 했유? "  


엄마는 괜한 슈퍼아저씨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친구들을 붙잡고 지아가 왜 서울에 갔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하나같이 아마도 서태지 콘서트를 보러 갔을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엄마는 예배고 뭐고 목사님에게 기도해 달라는 말을 하고는 집에 와서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교회 간다고 아침 일찍 나갈 때부터 워째 이상타 혔다. 저 미친 것이 서울이 어디라도 겁도 없이 혼자 간다냐.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면 어쩔라고 거기가 어디라고 가. "


엄마는 전화기를 붙잡고 이모에게 나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고,

때마침 서울에 있던 아빠와 연락이 닿아, 아빠는 나를 잡으러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있던 것이었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이었지만, 혼내지는 않았다. 아빠는 공중전화에 가서는 나를 만났다며 엄마와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는 같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고, 이모에게는 여유 있게 저시절에는 가수들 좋아하는 시기라 그런 거라고 허허 웃었다.

이모도 서울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모네 가게로 붙잡혀온 나는 혼자 갈 수가 없으니 사촌동생과 같이 가라고 했다. 사촌동생은 서울 사는 애가 시골 사는 내 덕분에 콘서트장에 덤으로 가게 되었고 지금은 유명한 뮤지컬배우로 성장해 본인이 연예인이 되었으니, 내가 잡힌 것 마냥 앞날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빠는 우리를 콘서트장에 데려다주었고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나는 콘서트장 앞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음악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리며 신나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혼날 때 혼나더래도 드디어 콘서트장에 왔으니 즐기기로 했다.

서태지 패션을 따라한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나도 질세라 준비한 벙거지 모자를 쓰고 야광팔찌도 양손에 끼웠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앞뒤 학생들과 이야길 나누었다.

이렇게 서태지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대전 대구 부산 마산 창원 등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 빼곡했다.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온 사람들은 팻말을 들고 옷도 똑같이 맞추고 지역이름을 앞세운 팬클럽 플래카드도 들고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러 온 수많은 인파들 속에 있으니 나의 죄가 조금은 묻어가는 것 같아 안도되었다.


나는 콘서트장의 열기와 환호성에 가슴이 뛰고, 서태지를 내 눈앞에서  본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황홀했다. 너무 들뜬 기분을 표시내면 안될듯해서 눈치껏 시골 가는 버스를 타서는 다시 반성하는 모드로 전환해야 했다.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온갖 욕과 빗자루로 등짝을 얻어맞아야 했지만, 서태지를 직접 본 기쁨으로 어떠한 구박과 타박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아빠는 내편을 들어주며 엄마에게 말했다.


"지아처럼 정신 나간 애들이 한둘이 아녀. 거기 어마어마하게 다 모여있드라니"


다음날, 내가 서태지를 보러 몰래 혼자 서울 간 이야기는 동네, 교회, 학교에까지 소문이 쫙 퍼졌다.

동네에서 나를 보는 어른들은 지나갈 때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으며 쯧쯧댔다. 난 어른들 사이에서 되바라진 애가 되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힐만하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때 그 시절, 환상 속의 그대를 만나기 위해 첫차에 발을 디딘 겁 없는 나의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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