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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초록병

소주

by JIA

해외에서 한국드라마를 보면 유독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며, 외국인들은 저 작은 초록병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한다고 한다. 남녀가 마주 앉아 초록병에 든 알코올을 마시면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니 마법의 병이 분명하다.

작은 잔에 한잔씩 따라 마시다가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못다 한 솔직한 감정이 흘러나오고 남녀의 사랑이 급속하게 진행되며 급기야 고백을 하는 용기가 생긴다는 마법의 소주는 한국에 오면 꼭 마셔보고 싶은 술이라 한다.


'술꾼도시여자들'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보면 소주를 너무 맛있게 먹는 탓에 정지버튼을 누르고 냉장고로 달려가 맥주 캔을 따고 다시 보는 드라마였다. 오늘 마실 술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세 여자가 소주를 부딪히는 장면이 유쾌한 건 함께 '적시자'를 외치는 친구가 있다는 거다.

친구와 소주 한잔. 치킨엔 맥주. 소주엔 삼겹살이라는 공식이 있다. 내가 깨우치지 못하는 수학공식은 많으나 술의 공식은 알아가기 위해 이것저것 도전해 맛보는 편이다. 하지만 나에게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술공식이 있다면 소주다.

대학에 들어가니 소주병을 줄 세워 먹고 온갖 진상 부리는 것도 모자라, 먹은 안주를 그대로 길바닥에 부침개를 부치는 술 취한 남자들을 보고 인간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소주는 처다도 보지 않았다. 선배들이 권하는 소주를 한잔 마셨더니 이걸 도대체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썩은 표정을 짓고, 나는 통금시간이 다 되어 집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막차를 타고 집으로 왔었다.


도통 나에게 간섭이 없던 아빠는 내가 대학생이 되자 여자는 밥 늦게 다니면 안 된다며 고등학교 때에도 없던 통금시간을 만들어 나를 옥죄었다. 한술 더 떠 삐삐도 없던 나에게 집으로 걸려오는 동아리 남자선배의 전화를 엄마는 바꿔주지 않거나 쌀쌀맞게 끊었다.

대학생이 되면 소개팅. 미팅도 하고 연애도 하고 남자친구도 만나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부모님은 대학생에 대한 환상은 걱정으로 둔갑하여 조신하고 참신하길 바랐으나, 걱정과는 달리 나는 남자에게 관심도 없는 자기애가 충만한 자기 계발 유형인 학생이었다. 나의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아르바이트와 학과공부에 전념했으며 인간관계도 적당히 유지하는 계획형이었다.

그때 알았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연애를 하기 시작했는데, 공통점을 보니 늦게까지 어울리며 소주를 마신다는 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삐삐를 가지고 있었다. 소주를 마실 줄 알아야 술자리에서 오고 가며 썸도 타고 고백도 주고받는 청춘의 무르익음은 대부분 나의 통금시간 너머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녀가 함께 마시는 소주와 썸은 비례했다. 소주가 쓰다며 내뱉은 표정이 너무 리얼했는지 아니면 부모님의 엄격함이 캠퍼스에 퍼진 건지, 난 연애한번 못해보고 졸업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취준생으로 있을 때다. 원하는 곳은 오라고 하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 월세를 내면 생활비가 쪼들리고, 원치 않는 곳은 월급은 안정적인데 하고 싶은 일은 아니고. 돈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를 고민하던 터였다. 집만 있다면 이런 고민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왜 우리 부모님은 서울에 살지 않는 건지. 저 수많은 집들 중에 월세 걱정 없이 두 다리 뻗고 누울 방하나만 있다면 좋겠다며 집 없는 서러움을 한탄했다.

가난한 청춘이었다.

소주를 잘 마셔 연애도 많이 해본 두 친구는 자신들도 나와 같은 취준생이지만 친척집과 언니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너보다 형편이 낳다며 삼겹살을 사주겠다고 했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오늘은 나도 한잔 마셔야겠다며 원샷을 했다. 소주는 목구멍을 부드럽게 타고 들어가며 쓴맛에 여전히 썩은 표정을 지었지만 끝맛은 달큼했다.

소주가 달다.


소주가 달기 시작하면 어른체험현장이 시작이라 했던가. 연애도 못해보고 자기 계발에 열정을 다했지만 취직 못하고 있는 애매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나에게 소주는 그제야 말을 걸었다.

"한잔 더해, 한잔 더해, 너 내일 일도 없잖아" 라며 초록병이 나에게 속삭였다. 삼겹살을 먹고 소주 한잔을 들이켜는 기분은 힘든 일을 잊게 할 만큼 마치 어른이 된 삶을 더 깊숙이 느끼게 하는 입성식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친구들과 얼마나 많은 다디단 씁쓸함을 누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친구 언니네 집이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모두 출근하고 일없는 나만 늦잠을 잤다.

머리가 뱅글뱅글 돌 듯 아파왔다. 좀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하고 몸을 일으키자 구토가 올라왔다. 급기야 식은땀까지 나고 손발이 차가워지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변기통을 붙들고 어제 먹은 것들을 모두 토해냈다. 소주맛이 나는 액체를 내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 더 구역질이 나왔다. 개운치 않게 구토했다 싶으면 일부러 역겨운 토사물들을 보며 자극을 줘서 모두 게워내려고 변기를 붙들고 버텼다. 욕실에서 기다시피 나와 친구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반질고리야 어디 있니. 제발. 제발"


고통보다 외로움이란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체했을 때 아무도 옆에 없어 스스로 손을 따기 위해 손가락에 실을 묶고 있는 내가 애처로웠지만, 일단 사는 게 먼저다. 나의 왼손을 나의 오른손이 바늘로 찔러야 한다. 손에 힘도 없어 덜덜 떨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한 번에 찔렀다. 엄지손가락에서 검은 피가 동그랗게 맺히는 걸 보니 그제야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눈물이 났다. 눈물콧물 쏙 뺀 그날 먹은 삼겹살과 소주는 나에게 처참한 외로움과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후로 난 소주를 마실수가 없었다.

초록병을 마신 나에게 연애가 아닌 급체를 가져다준, 못쓸 마법의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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