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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Sep 06. 2024

홀로서는 다육이

식물채집


아침에 일어나면 창가에 있는 식물들에게 먼저 눈을 맞춘다.

다육식물의 오동통한 잎을 엄지와 검지로 만지며 인사를 한다. 안녕.

영양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다육이 잎 하나하나에 수분이 가득 차올라 단단하다.


실수로 잎이 하나가 떨어져도 다육이는 바로 시들지 않는다.

잎하나에도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흙에 떨어진 잎은 이제 홀로서기를 준비한다.

기하게도 다육식물 잎하나를 흙에 올려두기만 하면 뿌리를 내리며 생명을 이어간다. 


떨어져 나온 작은 잎 하나는 땅을 탐색하며 저장해 둔 영양분을 먹으며 기다린다.

알맞은 땅이라 생각하면 뿌리를 내놓는다. 뿌리는 흙을 움켜쥐고 뿌리를 조금 더 길게 내린다.

뿌리에 흙이 매달려 있는 그 모습에 왜 가슴 한 편이 시린지, 흙을 잡아 살고자 하는 뿌리의 생명력이 살고자 하는 우리의 생존력과 닮아 애잔해진다.     


잎은 가지고 있던 수분과 영양분을 서서히 줄여가며 아주 작은 새잎을 만들어 낸다. 새잎이 자라는 만큼 원래의 잎은 쪼그라들며 말라간다. 자신이 가진 영양분을 모두 새잎에게 내어주며 거름이 되며 사라진다.

잎이 천천히 마르면서 새잎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희생과 닮았다.      


여러 잎들이 같은 땅에 떨어졌어도 뿌리가 나오는 시기는 제각각 다르다.

성질이 급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잎은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다.

잎이 제법 통통해서 이 녀석이 먼저 뿌리를 내릴까 싶어 쳐다보면, 아직 꼼짝도 안 하고 있다.

영양분이 부족한가 싶어 분부기로 비를 내려준다. 햇볕이 드는 창가에 옮겨 일광욕도 해준다.

그래도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자신의 것을 주고 싶지 않은 욕심 많은 녀석이구나.   

   

또 다른 잎은 끝이 말라있다. 끝을 잘라내어 주고는 땅에 잎끝을 대어준다.  여러 개의 잎들이 뿌리를 내리고 새순을 낼 때 유독 혼자만 꿈적도 안 하는 잎이 있다.

난 다른 잎들과 씨름하느라 경쟁하느라 의기소침해 있는 건 아닌지.  

다른 화분에 옮겨 넉넉한 흙에 놓아둔다. 잘난 것 들에 치어서 재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듯해 옮겨주었더니,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뿌리를 내렸다.

혼자 있음 심심할 것 같아 다르게 생긴 다육이 잎들도 옆에 놓아주었다.

서로 말동무하며 지내라고. 너와 다른 생김새의 잎들의 이야기도 들어가며 살라고 한다.

자식을 키우듯 다육이 잎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귀를 기울여준다.

   

다육식물의 잎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걸 보면,

먼저 태어난 생명은 새로운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 동물, 심지어 손톱만 한 식물의 잎 한 조각에서도 자신의 것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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