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며 바닥의 자연물들을 채집하다가 투명한 돌을 발견했다. 진흙이 잔뜩 묻어있지만 그 안은 투명한 빛을 감추고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수정을 캐겠다며 산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물에 담가서 진흙을 닦아내고는 투명한 돌 안에 숨은 신비로움을 들여다보곤 했다. 물에 넣으면 새끼를 낳는다며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도 해서 몇 날 며칠을 물에 담가놓고 매일 들여다봤다. 그러나 돌은 언제나 그대로었지만 조금 자란 것 같기도 하다며 자랑했다.
아이들이 가져온 돌들은 생김새와 크기도 달라서 가끔 집에서도 급하게 쓰임을 할 때가 있다.
정월 대보름에는 손에 잡히는 돌을 골라 호두를 깨어먹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넘어가려면 얼른 옆에 있는 돌을 올려놓기도 한다. 주방에 프라이팬거치대가 자꾸만 앞으로 쏠려 내려앉았다. 아래에 뭘 받쳐주면 좋을듯해 둘러보니 납작한 돌이 있었다. 납작한 돌은 이제 싱크대 수납장으로 자리를 옮겨 프라이팬들이 쏟아지지않게 지지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돌멩이가 많아 어디에서 가져온 건지 알 수는 없으나, 납작한 돌은 흔치 않기 때문에 어디서 가져왔는지 분명히 기억이 난다.
공룡발자국의 화석지가 있는고성의 바닷가였다. 해안가는 퇴적암이 겹겹이 쌓인 모습이었다.
공룡발자국에 물이 차있는 걸 보니 밀물이 들어왔다 나간 흔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공룡발자국을 찾고 겹겹이 쌓인 돌을 만지자 돌조각이 떨어졌다. 납작한 모양의 돌을 유심히 관찰하고 공룡이 살았던 시대의 돌이라며 손에 쥐고 다녔다.
아이는 가져온 돌을 줄 세워놓고는 하나씩 여행의 발자국을 모으듯 쌓여갔다. 이사를 하며 돌들은 장난감통으로 흩어지고 이젠 여행도 귀찮다며 가지 않으려는 청소년이 되었다.
아이는 자랐지만 작은 돌들은 아이들 손바닥만큼의 크기대로 멈춰있다. 돌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 여행을 하다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돌들만이 안다.
장난감통에 굴러다니는 돌들을 보니, '토이스토리'의 영화처럼 우리가 잠든 사이에 돌들이 서로 움직이며 이야길 나누는 상상이 되곤 한다.
"넌 어디서 왔니."
"난 한라산 꼭대기에서 오랫동안 살았어. 육지는 처음이야"
"난 계곡물속에서 살았었는데, 수영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
"난 오랫동안 소원탑에 쌓인 돌이었어. 비바람에 돌들이 무너지면서 마을로 데굴데굴 굴러내려 왔지.
흙더미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더니 놀이터에 뿌려졌어. "
"난 해수욕장에서 다른 돌들과 함께 파도에 밀려 종일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내곤 했어.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라 소리를 낼 수가 없어. "
"너희들도 여행을 참 많이 했구나. 난 공룡과 함께 살다가 화산더미들의 뜨거운 마그마에 몸이 녹아내리면서 바닷가로 흘러가다 차가운 물을 만나 절벽에 굳어버렸어. 예전에는 바닷속에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은 이미 파도에 부딪쳐 아래로 떨어지고 나만 남게 된 거지. 어느 날 이 집 아이가 손으로 나를 만지더라고. 그 따듯한 촉감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단단히 붙잡고 있던 돌에서 손을 놓게 된 거야. 아이가 나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런데, 아이는 우릴 자기 집에 갖다 놓고는 이제 보는 체도 안 하는 거지. "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너는 왜 말이 없니."
"난 한국말 몰라. 라오스에서 왔거든. "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수영복을 세탁하고 말리는데 아이 수영복 바지에서 돌하나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