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되 진지한 맥주 Bock
비가 내린다. 규칙 없는 빗소리를 들으며, 빗물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클지 아니면 그들이 떨어져 지평의 닿는 소리가 더 클지 의문한다. 뜨거운 물을 차 처럼 들이킨다. 컵 안의 남아있는 비린 냄새가 비 때문일지 기분 때문일지 생각한다. 텅 빈 머릿속에 비가 찬다. 오늘은 무얼 생각할까 고민하면서 고인 빗소리를 음악 삼아 휘젓는다.
비가 불어도 고운, 가을이다.
내가 무작정 좋아하는 사람들.
나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정확하기론 아직도 겸손을 택하는 사람들의 지조를 사랑한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이따금 겸손을 '떠는' 사람들이 바보취급 당하곤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자리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높음을 존경한다. 그들은 내 주위에 있는 듯 없는 듯 몸을 감추고 있다가 작은 기척만으로 큰 가르침을 주는데, 내가 그들을 통해 배우는것은 모습이나 언어로서가 아니라 시간으로서다. 겸손한 사람들은 관계에 관한 끈기가 있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먼저 아는 것에 가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 자신을 등한시하지 않으면서도 늘 다양성을 추구하며, 때로는 논리와 경우보다도 조화를 더 선우위로 추구한다. 무엇보다도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에도 겸손할 줄을 안다.
나는 오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따금씩 감정이 넘쳐흘러 평범하지 않은 형태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솔직함이 좋다.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스스로를 '내가 솔직한 사람이라서-' 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는 무례하다.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의 차이는 '시래기'와 '쓰레기' 만큼 크다. 존중과 매너는 지성의 증명이다. 관계에 있어서, 솔직함을 핑계로 지나치게 본능적인 언행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는 무섭다.) '오버하는 사람'은 흘러넘치는 감정의 탓으로 이따금 다양한 얼굴을 가지는데, 이러한 변덕이 나는 좋다. 횡단보도에서 해드셋을 낀 채 몸을 흔드는 사람의 뻔뻔함이 좋고, 화가 나면 강렬하게 삐진 티를 내는 사람의 유치함이 좋다. 사실은 내가 좀 그렇다. 나는 약간의 조증이 있다.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길에서 엉뚱한 춤을 추거나, 너무 큰 소리로 웃어버리거나, 술에 취한 것 처럼 말을 많이한다. 그럼 안되나? 배운대로 살기에 내 마음이 너무나 벅차는 것을.
'겸손'과 '개성', 비 '내리는 오후' 라는 세가지 태그를 가진 맥주가 있을까? 자신있게 떠오르는 맥주를 소개한다.
독일 맥주는 부드럽고 점잖지만 편안하게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남다른 사교성을 갖고있다. 오늘 소개 할 맥주는 그러한 독일 맥주의 좋은 특징을 잘 반영하면서도 개성을 강하게 가진 Bock beer이다.
보크비어 (Bock beer)의 '보크'(Bock)는 독일어로 '염소'라는 의미로서, 처음 이 맥주를 고안한 지방의 이름인 '아인보크'에서 딴 것과 이 맥주를 먹고 취한 사람들이 염소에 받혀서 쓰러졌다는 구문 속에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 (정확한 지명은 '아인베크' 지만 당시 사람들은 '아인보크' 라고 발음하며 염소와 연관시킨 것 같다.) 보크비어는 색이 아주 짙고 도수가 높은 편이며, 다크 초콜릿향과 엿 기름향의 달큼한 조화가 특징이다.
수상 경력이 화려한 독일의 아잉거 양조장(Ayinger Brewery)에서 출시되는 셀레브레이터 도펠복(Celebrator Doppel Bock)을 소개한다.
맥주 잔 안으로 코를 대면 초콜릿향이 풍부하게 풍긴다. 따땃한 가을철 보리빛을 띄는 거품은 두껍게 솟아오르다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금새 가라앉는다. 한 모금 마시자 마자 말린 자두와 무화과향이 부드럽게 퍼진다. 단맛 신맛 고소한맛이 어우러져 입안 한가득 잔치가 열린다. 화려하되 진지하다.
내가 은근히 싫어하는 사람들.
나는 권위적인 사람을 경계한다. 옳고 그름 이란 어쩌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 같은 것, 늘 변화하지만 반드시 존재하며, 언젠가는 참이고 또 언젠가는 지나가버린 것이 될 수 있는 유기적인 것이다. 소속감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반항심을 느낀다. 대우에 집착하여 언어를 칼처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자아의 방패가 없다. 자유란 과연 안정적인 규칙 속에 존재할까? 진정한 자유는 말이 없다.
그리고 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는 조금씩 그 점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비 부딪히는 소리와 사람들.
빗소리를 잘 듣자하니 그 안에 목소리가 있다. 오늘은 좀 가냘픈 소리. 나는 비 내리는날 하늘을 올려다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비는 비밀이 많구나. 나는 좀처럼 침묵이 많은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친구들과 그들의 상처를 떠올린다. 곱씹을수록 놀랍고 대단한 이야기가 투성이다. 눈이 시려오는데도 슬프지는 않았다. 아마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 아쉬워서 맺히는 눈물일거야. 사람에 대해 생각하며 떨어진 비를 쳐다본다. 빗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클지 그들이 떨어져 지평에 닿는 소리가 클지 고민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유가 없는 것 들 일지도 모르겠다. 가냘픈 비 부딪히는 소리와 사람들 같이.
글.사진 신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