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양복점이었다. 어렴풋한 비탈길에 놓인 작은 가게는 나무색을 띠었다. 내 키만 해 보이던 갈고리 모양 자는 가장자리가 허옇게 바래져 겨우 눈금을 부지하고 있었다. 비단결 같은 검정 옷감이 필름처럼 돌돌 말려 차곡 거리는 미로길, 나는 아마도 목련과의 큰 꽃이 무늬를 이룬 원피스를 입고서 찰랑 뛰어다니며 양복점 딸내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내가 가게 앞 비탈길을 뛰놀다 넘어지면, 엄마는 갖은 핀잔을 섞어서 내 머리를 다시 빗겨주고, 양말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주고, 다 되었다는 의미론가 등짝을 툭툭 치셨다. 나는 넘어져도 울지를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쌀집에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쌀가게 안채에 조그만 다락이 딸린 방 한 칸이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이제 와서 그때 주인집 주방을 얻어 쓰는 게 어찌나 눈치가 보였는지, 그 집 식구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애를 썼는지 모른다 하며 절절하게도 그 시절을 추억하지만, 내 기억 속의 젊었던 나의 엄마는 늘 웃음소리가 높고 또렷했었다. 쌀집 언니는 키가 크고 훌라후프를 잘 돌렸는데, 내가 너무나 어리고 조그마해서 절대로 훌라후프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때였다. 나에게 쌀집 언니의 훌라후프는 마치 청소년이 되는 지름길처럼 여겨졌다. 날이 좋으면 쌀집 문지방에 다리를 접고 앉아서 언니가 휘두르는 훌라후프에 눈알을 굴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엄마가 마음껏 시끄러웁게 뚝딱거릴 새 주방이 생길 무렵까지도, 훌라후프를 돌리던 쌀집 소녀는 나의 첫 연예인이자 무려 나의 작은 미래였다.
서른 되던 해 첫날 아침, 아래층에서 요란하게 고소한 냄새가 났다. 배가 많이 나온 나의 이모부는 하얀 백발의 서양인이시다. 내일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는데, 그 사실이 무척 서운하다며 어깨를 찌푸리는 내게로, '여기서 너는 스물여덟 일뿐이니 이십 대의 두 해를 더 보내고 돌아가면 되잖냐'며 주름진 윙크를 날리시던 배 나온 나의 이모부는, 여전히 서른 살이 되기로 결정한 조카를 위해 아침 일찍 팬케이크를 굽고 계셨다. 나는 파란만장했던 나의 이십 대를 어떻게 보내줄꼬 고심 끝에 미국에 계신 이모 댁에 놀러 왔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온 것이다. 나의 서른 살.
이모는 팬케이크를 삑삑 자르면서 여동생의 서른 살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다. 서울 어딘가에 작은 양복점을 열었다고 눈빛을 반짝이던 그녀의 서른 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도 뱃속에 천방지축인 무언가를 품고 다니던 그녀는 남편의 일을 좋아했고, 남편의 일을 거드는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 부지런한 동생이었다. 내가 눈빛의 박수를 보내자 이모는 팔깍지를 끼우며 내게 서른이 되니 번뜩 이 마음이 한 단계 성숙해짐을 느끼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잠시 허전한 표정으로, 아직도 열일곱에 머물러 있는 나의 정신상태와 아이 둘을 낳고도 하나를 더 품은 채로 양복점을 열었던 서른 살 엄마를 비교했다.
이모는 이모부를 향해 간결한 윙크를 건넨 뒤 작고 부드러운 손을 내 손등에 포개 올렸다. 얇아진 살결과 함께 무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눈을 맞추자, 이모는 누구나 서른 즈음엔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일흔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열일곱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중 누구도 결국엔 철들지 않는다.
이모는 내게 '선배'들의 마음도 우두커니 소녀로 머물러 있음을 일러주면서, 언젠가 '서른 살 소녀'였을 그리고 지금도 사실은 소녀일 뿐인 네 엄마에게 반드시 좀 더 상냥한 대우를 해드릴 것을 약속받으시며 이야기를 마치셨다.
나는 왠지 모르게 쌀집 언니를 떠올렸다. 나는 내 키가 그것보다 조금 더 커진 것을 깨달을 즘부터 열심 있게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하여 한 겹에서 두 겹, 두 겹에서 세 겹씩이나 돌리는 훌라후프 신동이 되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멀찌감치 마주 보고 서서 훌라후프 세 개씩을 차고 큰소리로 초를 재며 깔깔거렸다. 키가 너무 많이 커버린 언니는 세월이 주는 약간의 껍질을 차고서도 다시 훌라후프를 돌려주었고, 여전히 훌라후프를 좋아했다.
나는 이번엔 들판을 뛰어놀고 가끔은 상스러운 말을 해도 귀여운 엄마의 활기찬 시절, 그리고 언젠가 세월의 껍질들에 덮일 나를 비교했다.
그리고 지극한 상냥함으로, 엄마의 껍질을 조금 녹여보기로 결심했다.
바이젠 맥주를 처음 먹어봤을 때의 감탄을 잊지 못한다. 잘 만든 카푸치노의 쫀쫀하고 보드라운 폼을 연상케 하는 바이젠의 알찬 거품은 첫 한 모금에 내 취향을 저격했다. 맥주란 자고로 시원하게 팍 쏘는 맛으로 먹는 거지!라는 고정관념을 깨부숴준 첫 번째 맥주가 과연 바이젠이었다. 바이젠 비어는(Weizenbier) 독일식 표현으로서, 하얗다는 의미의 'Weiss'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독일식 밀맥주를 가리킨다. (바이젠 비어, 바이스비어 모두 동일하게 독일식 밀맥주를 뜻한다)
국내에서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밀맥주로는 파울라너(독일)와 호가든(벨기에), 크로넨버그 1664 블랑(프랑스)이 있다. 세 가지 모두 전국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로수길, 홍대, 이태원 등 펍이 즐비한 번화가라면 탭(생맥주)으로도 만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리의 맛과 밀의 맛을 떠올려보자. 보리는 거친 촉감과 구수한 맛이 떠오르고, 밀은 부드러운 촉감과 곡물의 단맛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밀이 많이 첨가된 맥주는 보리로만 빚은 맥주에 비하여 부드럽고, 곡물의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밀맥주는 보리 맥주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아 불투명하고, 거품이 오래간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밀맥주에는 오렌지, 바나나, 벌꿀 등 흔히 떠올리기로 빵과 잘 어울리는 향을 첨가한 맥주가 많다. 국내에서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밀맥주로는 파울라너, 호가든, 크로넨버그 1664 블랑 등이 있다. 특히나 파울라너는 지극히 상냥하지만 적당한 무게감을 지닌 통통한 소녀 같다. 사실 이 맥주는 아직도 소녀로 머물러있는 나의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는 맥주로서, 여행 후 엄마와 한낮의 취기를 매개로 소녀스런 수다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껍질 이완제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하여 이제부턴 이 파울라너 맥주를 상냥한 맥주라고 해야겠다)
엄마라는 껍질 속 소녀를 불러내고 싶은 딸들에게 이 상냥한 맥주를 권한다. 꼭 한낮에, 혹은 꼭 낭만을 겸한 밤에 그녀와 나누어 드셔 보시기를. 세월이 가져가는 것은 단지 시간일 뿐, 소녀의 우아함은 우리들 안에 여전히 감돌고 있다.
글.사진 신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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