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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l 05. 2023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무슨 일을 하건 어디에 있건 간에


 좋아하는 일만 마음껏 하며 산다는 것은 물론 보기 좋다. 하지만 이 일 저 일 한다고 해서 그것은 보기 좋지가 않은가? 당연히 아니다. 언젠가는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것보다 나의 정체성을, 이를테면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이고, 특정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고... 이런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버텨야 하는 것이 응당 젊음이다,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 심지어는 성공하려면 편하게 잠 잘 생각도 하지 말라는 길잡이 채널이 성행이지만 나는 그런 꼭지점 달리기식 삶에 너무나 금방 지쳐버렸다.


 엄마는 24살에 시집을 와서 오빠를 낳고 양장점을 시작했다. 실패를 거듭하고 몇 년간 쌀집에 딸린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그러면서 엄마가 바란 건 어디서 무슨일을 하던 간에 다만 안전하게, 건강하게 살아내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주인집과 부엌을 공유하는 삶 속에서도 딸에게 커다란 목련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혔고, 오렌지색 하트 무늬가 놓인 흰 스타킹을 신겼다. 머리는 늘 단정하게 빗어주고 소풍땐 어김없이 소고기 김밥을 쌌다. 그렇게 귀하게 컸다 내가.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남들만큼 이뤄낸 것이 1도 없을까. 돈이라도 모아둘걸. 왜 굳이 나는 음악을 놓지 못해 삶을 쪼개서 살고 있나 고뇌를 거듭하던 시절. 내게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다. 엄마가 내 음악을 응원해 주었다거나 지원해 준 것은 아니다.(사실 아직도 엄마는 내심 내가 음악 하는 일을 그만두기를 바랄 수도 있음) 하지만 바로 저런 이야기를 들려준 것. '나 그래도 너 이렇게 키웠어. 넌 내가 낳은 네 명 중 가장 말을 빨리했지. 네가 가장 먼저 한 말이 엄마도 아빠도 아닌 ‘아름답다’라는 걸 아니? 넌 그렇게 특별한 아이였어. 그래서 네가 개명해 달라 조르고 졸라도 안 해준 거야. 넌 그 이름에 맞는 아이라고 생각해, 뿌듯해.'


 방송인 홍진경이 '타인의 좋은 평가가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공간을 매일매일 정돈하고 가꾸며 살아가는 습관이야 말로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라고 했던 말에 여운이 길었다. 엄마와 유나는 정리정돈을 좋아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반대로 나는 아직도 유나가 “언니. 이리 와봐.  옷 접어서 다시 넣어봐.” 하고 궁서체로 말할 정도로 정돈 좀 하면 병이라도 걸리려는 사람인 데다 자존감엔 또 얼마나 예민한지 잠자는 호랑이 코털처럼 가만히 놔둬야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정도인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너 그렇게 키운 애야.’라는 말을 처음 해주었을 때, 그때 정리정돈을 시작했다.(완벽한 유나한테는 아직 혼남) 처음엔 일단 자주 안 쓰는 물건을 눈에 띄지 않게 꾸겨서 숨겨두는 걸 시작으로 점점 나아가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정돈 달인 소리도 듣는다.(증명 가능) 그랬더니 스스로 좀 대견했다. 지금보다 좀 더 쪼개서 살아도 잘 살아질 거 같은데? 하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호떡 뒤집듯 금새 ‘어떤 일을 얼마큼 하면서 살던 별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어 난!‘하는 마음가짐에 이르렀다. 하여, 지금의 나는 음악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출판사 직원만도 아니며, 광고 디자인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한 마디로 이것저것 하고 사는 사람이지만, 꽤 만족한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최신 유행어, '자존감'인가? 자존감을 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맙소사. 정리정돈이야 말로 품위를 지키는 첫걸음이 아닌가! 홍진경이 이 사전을 만든 건가?

이 글을 쓰면서 엄마가 어릴 적부터 나를 품위 있는 아이처럼 보이게 꾸며준 것도 엄마의 자존감이었던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정리정돈을 시작해보자. 꾸겨 넣는 것으로 시작해도 충분하다. 내 방 정돈해 줄 것도 아니면서 흘리는 말들은 산 넘어 들리는 메아리 정도로 듣자. 그렇게 오래오래 지내다보면 삶을 얼마큼 더 쪼개 살아도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무슨 일을 하건 어디에 있건 간에 품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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