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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l 10. 2023

응급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에선 아픈 아이가 울고 애타는 부모는 소리를 지르고 옆에 누운 아줌마는 간호사들이 불친절하다며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사유로 8시간이나 응급실에 대기해야 했다. 편의점에서 초콜릿 따위를 사 먹으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피곤에 절은 두 발을 질질 끌고 도착한 편의점에서 세 개 들이 초콜릿 두 봉지를 계산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보고 당황하여 눈을 껌뻑거리는 사이 벨은 짧게 두어 번 더 울리고 꺼졌다. 한 번 더 오면 받아야지, 아니 받을 수 있을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편의점을 나와 초콜릿 하나를 까서 먹었다. 겉에는 아몬드가 잔뜩 붙어있고 안에는 헤이즐넛이 들어있는 고급 초콜릿이다. 너무 달아 이가 시렸다. 물을 하나 사려는 걸 깜빡했구나, 생수를 사서 나오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또다시 끊어질 새라 입안에 초콜릿이 다 녹기도 전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이고. 잘 지내셔요?”

“…”

“여보세요~ 어머니~ 저 신잔디예요~ 전화하신 거 맞으셔요~?”

“어~ 맞아~ 잔디, 그래 잔디. 꼭 시집가~ 내가 고마워. 동해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전화해~ 차비는 걱정하지 말고~”

“네, 어머니~ 걱정 마세요~ 건강은 괜찮..”하는 도중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생수를 따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머금은 물로 시린 이를 골고루 씻어내며 벽에 기대 쪼그려 앉았다. 그녀가 갑자기 전화를 끊은 것에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왜인지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1년, 아니 거의 2년 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녀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 이름만 보아도 떨렸고 무서웠고 피하고 싶었다. 받지 않은 전화에도 이름의 여운은 너무나 길어 몇 개월이나 맘에 아른거렸다. 다음에 또 전화가 오면 받아야지, 다음에는 정말 받아야지. 했다. 응급실에서 그녀와 나는 그 짧은 몇 마디를 나누고 아마도 희미할 서로의 얼굴을 되뇌었다. 그녀와 나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단 한번 만난 사이였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동해를 찾지 못한 것은 그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왜 안 가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어 그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며 지내왔다. 그가 안치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납골당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빽빽한 칸 중 하나의 작은 한 칸에 들어있는 그의 웃음기 없는 증명사진과 평생 아껴오던 카메라를 보았다. 납골당은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공포영화 속 영안실 같은 푸릇한 형광등, 으슬으슬하게 그늘진 자리, 너무 고요해 걸을 때마다 요란하게 퍼졌던 내 발자국 소리. 모든 게 싫었다. 이듬해부터는 가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8시간의 사투를 보내고 집에 와 누웠을 때 눈알에 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다른 곳을 쳐다봐도, 눈을 감아도 그가 보였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나라도 그를 기억해야 하는데, 왜 나는 자꾸 잊으려고만 할까. 깊은 죄책감에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다음날 아침 동해행 버스표를 끊었지만 또다시 가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나는 먹고 마시고 모든 것을 잊고.


 오늘 아침, 생전에 그가 찍은 사진들을 열어서 보았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보자는 결심도 해보았다. 하지만 끝내 동해행 버스 티켓은 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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