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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l 18. 2023

이길 수 없는 싸움

화내는 인생은 안 좋아~

 아침 6시에 일어나 짧은 낮잠도 없이 없이 온종일 걷고 뛰고 서서 지내도 잠을 자지 못하는 때가 있다. 말을 너무 많이 해 목이 컬컬 쉬거나 맛있고 졸리는 음식을 마구 먹어도, 잠이 안 온다. 생각이 많아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나는 대부분 잠을 자지 못할 때 생각이 많아지는 편이다.


 내 어릴 적 사진이 하나 있는데, 뭉태기로 사진을 버려할 어느 시기에 쓸려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두 살 때인가 세 살 때인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시절에 엄마가 찍어둔 사진인데, 졸리다며 이불을 꺼내야겠다고 가더니 두 팔을 한껏 뻗어 이불을 안은 채로 잠에 들어버린 꼬마 신잔디 사진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어이없고 웃겨서 엄마가 얼른 카메라를 찾아다 찍어두었다. 장롱은 활짝 열려있고 착착 접혀 쌓인 이불 위에서 양팔을 대자로 뻗은 채로 꼬꾸라지듯 엎드려 잠에 들어버린 아이. 내가 생각해도 그 모습은 너무 웃기고 그래서 귀엽다. 그토록 어릴 적부터 나는 잠이 많은 인간이었다. 갓난아이 때부터 나는 아무에게나 잘 안겨서 잠을 잤다. 보행기에 앉혀두고 엄마가 이일 저일 하다가 주변이 너무나 조용해졌다는 걸 깨닫고 놀라 쳐다보면, 보행기 아래로 발을 동동 띄운 채 고개를 떨구고 잠을 자고 있었다고. 잠순이 신잔디는 고대로 자라나서 20대까지 이어져왔다. 차에 타면 나는 경우를 가리지 못하고 침을 흘리며 자곤 했다. 그건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밴드 시절엔 무대 직전에 차에서 잠에 들어서 목이 맥혀 본 공연을 제대로 못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부터 껌이나 사탕을 챙겨 다녔다.(이거 참 할머니 같은데 사실 나 할머니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오늘만 해도 여기 카페로 오면서 클로즈업된 꽃 사진을 이만 장 정도 찍었다. 사진첩을 열어보면 꽃이 연사로 찍혀있어서 동생이 할머니냐고 한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뭐 어때서?' 라기보다는 쑥스럽게 '순수해서 그래.' 하고 대답한다. 아주 째까난 목소리로…)


 잠이 안 올 때는 일단 책을 펴보는데 졸린 둥 만둥 한 상황에서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몇 줄 읽다 포기한다. 기타를 들어본다. 한 시간 반 동안 메트로놈 연습만 하는데도 잠이 안 오는 것은 전 세계 뮤지션 중에 나 밖에 없을 것이다. 하기 싫은 것 리스트를 만들어해 본다. 화장실 청소하기 그릇 정리하기 홈스트레칭 따라 하기… 잠이 안 온다. 새벽 4시가 지나면 포기하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화를 내기 시작한다.


 저번주는 불면과 싸우는 한 주였다. 술을 대왕고래처럼 마셔도 잠을 못 잤다.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해서 화가 나고, 엉망이 된 아침엔 빼앗긴 시간 때문에 화가 나고, 낮에는 중요한 업무 중 참을 수 없게 잠이 쏟아져 화가 난다. 3일째 잠을 못 잤을 때는 원래도 좋지 않던 기억력이 가장 먼저 말썽이 된다. 하루종일 격앙된 상태로 지내다 보니 평소에는 막힘없이 하던 일도 두 번, 세 번 확인해야만 한다. 너무 자주 까먹고 기억하기를 반복하면서 더 화가 난다. 밤이 되면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캄캄한 정적과 싸운다. 절대 눈을 뜨지 않고 세 시간 네 시간을 오기로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네 시간이 넘어가면 포기하고 일어나서 용서를 빈다. 제발 잠을 자게 해 주세요. 책을 편다, 기타를 든다, 청소를 한다. 엉망인 아침에 쪽잠을 잔다. 주변에서 공사가 시작된다. 아침 8시부터 앰뷸런스가 지나간다. 냉장고 소리가 평소보다 34배 크게 들린다. 3M사에서 나온 귀마개를 찾으려 서랍을 통째로 뽑아 방바닥에 쏟았더니 그만 잠이 놀라 달아난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효율적으로 살아내야만 한다.


 4일 차에 접어들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싸우려 했던 태도에 진심으로 참회하며 패배를 인정하고 병원으로 간다. 아이고, 참으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하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백캐럿 다이아몬드 같은 약을 받아오면 그날은 그저 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날이다. 혹시나 약효에 방해가 될까 봐 저녁도 조금만 먹고 따뜻한 물로 오랜 시간 샤워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약을 삼킨다. 너무 길지도, 절대로 짧지도 않은 단잠을 자고 아침 6시를 맞이한다. 어제까지 원망스럽던 비가 고맙고, 다시 할머니가 되어 꽃을 오백 장씩 찍으면서 카페로 간다. 책을 편다. 메모장을 연다. 글을 써본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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