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발매된 동료의 신보를 들었는데, 도무지 멈추지 않는 눈물이 났다. 가사를 따라 읽으며 이토록 펑펑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눈물이 톡 떨어지는 방울 울음이 아닌 아주 쏟아져 세수를 시키는 줄기 울음. 베갯잇 여기저기로 뚫린 축축한 눈물 구멍에 더 이상 얼굴을 돌려 누울 곳이 없는 울음, 다리를 모아 웅크린 채 스스로를 안았을 때 닿는 바지의 무릎부분이 둥글넓적 젖어버리는 울음. 코를 세차게 풀고 찬물로 세수를 해도 입안에 짠맛이 느껴지는 그런 울음을 내는 음악이 얼마만인가.
나는 주로 뒤를 돌아볼 때 눈물이 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에 더 과거로 가는 회상열차에 갇혀 뒤로만 가는 풍경을 보아야 할 때면, 그것이 무척 아름다웠다 할지라도 눈물이 난다. 좋았던 것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서, 아팠던 것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운다. 돌아갈 수 없는 장소와 돌아가기 싫은 장소들, 간절한 순간과 경멸의 순간, 아무리 외워도 희미해지는 얼굴과 아무리 가려도 선명해지는 얼굴이 나를 울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방울 울음 정도일 뿐이다.
「나에게 맺힌 수만 가지의 당신에게」를 들었을 때 내가 눈물이 난 것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과 아무에게도 들을 수 없을 말들이 모두 들어있는 것 같아서였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과 내 자신을 이해하는 순간도 있었다. 모든 사람인것 같지만 나의 고유함인것 같고, 나의 고유함인것 같지만 그사람이 보이기도 했다.
‘당신을 에워싸는 그 견고한 자존심과’
‘당신을 겨누었던 여러 갈래의 경멸과’
‘당신이 벼려낸 내 혀끝의 날카로움과’
‘당신이 강요했던 일방적인 선문답과’
‘당신을 보정하는 그 온전한 아름다움과’
'당신에의 동경과 당신에의 연민과’
…
한참 동안 이 곡을 듣다가 문득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어느 날엔가 이 곡을 들으며 희미하게 웃어볼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행간소음. 행간에서 나는 소음. 어쩌면 이 곡은 과거라는 서사의 틈새에서 결과를 일으켰던 수만 가지의 이유들을 노래로 나열한 곡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을까. 여기 적힌 이 많은 소음들 말이다.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짓과
당신을 설명하는 타인들의 낱말들과
당신의 행복과 당신의 온기와
당신을 에워싸는 그 견고한 자존심과
당신의 시간과 당신의 오해와
당신과 나누었던 알 수 없는 포옹과
당신의 노래와 당신의 안위와
당신을 가리키던 주인 없는 손가락과
당신의 오만과 당신의 고통과
당신이 베풀어 온 따스한 위로들과
당신의 괄시와 당신의 소망과
당신이 나에게 준 고문과 같은 사랑과
당신의 자국과 당신의 웃음과
당신을 겨누었던 여러 갈래의 경멸과
당신의 자유와 당신의 낙관과
당신이 남기고 간 내 텅 빈 마음의 무게와
당신의 옛날과 당신의 호의와
당신이 머금었던 묘연한 몇 시선과
당신의 동정과 당신의 낙인과
당신이 벼려낸 내 혀끝의 날카로움과
당신의 희생과 당신의 냉소와
당신이 강요했던 일방적인 선문답과
당신의 위선과 당신의 자비와
당신을 보정하는 그 온전한 아름다움과
당신의 자취와 당신의 충동과
당신의 날들에서 낙오당한 내 외침과
당신에의 동경과 당신에의 연민과
당신이 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나에게 맺힌 수만 가지의 당신에게」- 행간소음
https://youtu.be/G2mrau_xQGI?si=flj_5NQ5Nqo2L41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