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963 도서관
나는 이곳에 가고 싶어 부산에 간다. 바로 F1963. 이곳은 원래 고려제강의 와이어 공장이었던 곳인데 갤러리, 서점, 도서관, 정원 등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했다. ‘F’는 팩토리, ‘1963’은 공장이 완공된 해를 뜻한다고 한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때 공장이었던 과거의 역사와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스토리를 가진 건축물이 좋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건 6년 전, 혼자 떠난 부산 미술관 여행에서였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과 F1963의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구본창의 달항아리 전시를 보러 부산에 갔었다. 단지 전시 때문에 찾게 된 공간인데 이렇게 나를 매료 시킬 줄을 몰랐다.
F1963에는 내가 좋아하는 3종 세트가 다 있다. 국제갤러리, 예스24 중고서점, 그리고 F1963 도서관. 특히 나는 이 도서관을 너무나 사랑한다. 부산에 오면 항상 여기를 제일 먼저 들른다. F1963 도서관은 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넓은 공간에 중앙 부분이 가라앉은 듯 낮게 설계되어 있어 공간의 깊이와 집중감을 더해준다. 그 안에는 그랜드피아노, 모던한 소파와 탁자, 스피커 등이 놓여있어 마치 책으로 둘러싸인 근사한 거실 같은 느낌이 든다.
도서관에는 미술, 건축, 사진, 디자인,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서적이 가득했는데 나는 음악 서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베토벤, 바흐, 슈만 등 음악가 전기, 글렌 굴드, 리흐테르 같은 연주자의 에세이, 풍월당 서적, 신뢰하는 평론가들의 책,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교향악 악보까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읽고 싶은 책을 두 손 가득 한아름 골랐다.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 <풍월한담 바흐편>, <슈베르트의 세 개의 연가곡>, <슈만 내면의 풍경> 등 여러 권을 펼쳐 몇 챕터씩 읽어봤다. 그중 <리흐테르> 와 <풍월한담>은 사서 제대로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몇 달 전, 대만 소설 <피아노 조율사>를 읽으면서였다. 소설 속에서 리흐테르는 주인공이 존경하는 연주자로 등장하며 그의 연주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주인공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책을 읽고 난 후 그의 연주를 찾아 듣게 되었고 음악에 대한 성직자 같은 태도와 사랑, 그리고 그만의 확고한 예술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 도서관은 고등학생 이상만 입장이 가능해 아이는 예스24 서점에서 책을 읽고 나 혼자 도서관에 들어갔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서 아이와 잠시 떨어져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꽤 좋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여행에서도 필요했다.
나는 이 도서관이 너무 좋다. 만약 집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매일 방문해 서가의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며 예술 세계를 넓혀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날은 비가 종일 내렸는데 원래 공장이었던 터라 위쪽이 투명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 있어 비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그 빗소리가 또 하나의 음악처럼 들려 예술적인 감성을 더해주었다.
이곳은 주말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고 한적하다. 나는 도서관 가운데 공간에 스피커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마치 내 거실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신은 맑아지고 내면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이 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약 2시간을 보낸 후 예스24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우리는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아이의 눈빛은 더 깊어져 있었다. 혹시 나도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비쳤을까?
F1963 도서관은 예술을 사랑하고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금요일 저녁마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반달서림에서 클래식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들도 분명 이곳을 좋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