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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May 23. 2021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어

나는 무수히 실수하고, 실패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엄마

나는 채점을 마친 수학 문제집을 아이 앞에 놓았다.

“어? 이렇게 많이 틀렸어요?”

아이는 틀린 갯수를 세어보더니 시무룩했다.

“괜찮아. 뭘 이런 거로 속상해하고 그래.”

“너무 많이 틀렸잖아요.”

말하면서 눈을 여러 번 깜박거리는 게 아이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 틀리면서 배우는 거야. 이거 진짜 어려운 문제인데 맞혔네. 도현이 대단하네.”

내 위로와 칭찬에도 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좀처럼 마음을 풀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답답했다.

숨을 크게 한번 골랐다. 아이 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도현아. 엄마도 어렸을 때 많이 틀렸었어. 특히 이렇게 긴 문장제 문제 있잖아. 이게 너무 어렵고 이해 안 되더라. 이런 문제들이 나올 때마다 많이 틀렸었어.”

“엄마도 그랬어요? 엄마는 선생님이잖아요. 그런데 엄마도 많이 틀렸어요?”

아이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럼! 엄마도 엄청나게 많이 틀리면서 배웠어. 하도 틀려서 똑같은 문제를 풀고, 또 풀고 몇 번씩 풀었다니까.”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도 무수히 많이 틀렸었다고. 아이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생기를 되찾은 아이 얼굴을 보고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다시 천천히 풀어 볼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개로 틀린 문제의 답을 싹싹 지우고 연필을 쥐었다.     

 

하루는 아이가 울상이 되어 집에 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계속 자기 마음대로만 해서 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너랑 앞으로 안 놀 거라면서 자기한테 모래를 던지고 가버렸다고 했다. 아이는 말하는 내내 울먹였다. 나는 이제 제법 몸집이 커져 꽤 무거워진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말했다.

“친구가 잘못했네. 고집부리고 모래 던지고. 도현이 진짜 화나고 속상했겠다. 그 친구랑 계속 마음이 잘 안 맞으면 조금 거리를 둬. 모든 친구랑 다 잘 지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아이 편에 서서 아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친구가 자기한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면서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친구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쳤다고 억울해했다. 나는 지난번 아이 마음을 풀리게 했던 그 말을 다시 꺼내 보았다.

“도현아.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어. 친구 때문에 속상한 적이 있었어. 친한 사이였는데 친구가 말을 함부로 해서 그 친구랑 싸우고 오랫동안 말도 안 하고 그랬었어.”

“엄마도 그런 적 있어요?”

“그럼! 친구랑 지내다 보면 그런 일을 다 겪어. 항상 잘 지낼 수는 없어. 자연스러운 거야. 엄마도 친구 때문에 울고, 상처받고, 힘들어한 적 많았어.”     


아이에게는 어떤 말보다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어.’라는 말이 위로가 되는 듯했다. 엄마가 겪었던 실패, 시행착오 등을 진솔하게 말해주면 아이는 서툴고 헤맸던 엄마의 모습에 실망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커다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뚜렷한 해결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엄마도 그런 일을 겪었다는 자체가 아이에게 위로를 주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예전엔 아이에게 이런 말을 많이 했었다. “엄마는 항상 시험 보면 100점이었어. 상은 또 얼마나 많이 받았었다고.” 또한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 같은 건 아이 앞에서 말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뭐든지 잘하는 멋진 엄마로 보이고 싶었다. 아이에게 나의 능숙하고 뛰어난 면만 보여주며 그것만 본받길 바랐다. 또한 나도 잘했으니까 너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에게 동기 부여와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 같지 않았다. 아이는 작은 실패나 문제 상황에서 민감하게 굴 때가 많았다. 아이가 “나만 못해”라는 말을 나지막이 내뱉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평소 아이에게 칭찬도 많이 하고, 틀려도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하며 키우는데 왜 그럴까 의아하고 많이 속상했다. 돌이켜보니 항상 내가 아이에게 보여준 것은 모범답안이나 성공담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내가 글쓰기로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글쓰기의 성공 비결이 아니라 나처럼 똑같이 글쓰기가 힘들고 어려웠던 사람들의 경험담이었다. 나는 도서 팟캐스트에서 한 유명 작가가 글이 하도 써지지 않아 글쓰기 실용서를 펼쳐 보기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도하고 힘을 냈다. 배움과 위로는 실패의 이야기에 있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페일콘(failcon) 행사가 열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실패 경험을 숨김없이 터놓고 공유하며 거기서 배움을 얻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실패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무수히 실수하고, 실패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엄마다. 나는 앞으로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많이 틀리고, 서툴고, 헤맸는지를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그동안은 겁이 나고 어려웠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고, 나의 부족한 점을 아이 앞에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어”라는 말이 가진 위로의 힘을 말이다. 그것으로 건넨 위로가 결국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것도. 그리고 우리 사이를 얼마나 가깝게 만들어 주는 지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을 기억한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요. 위로가 되었어요. 나도 다시 해볼게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용기와 자신감이 그 눈빛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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