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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Sep 30. 2020

4. 식물이 속을 썩인다면

집 환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식물이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로 인식되고 미디어에서도 실내식물이 주는 효과에 관해 연일 재생산하면서 식물을 가까이하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을 실감합니다.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는 대신 신혼집에 극락조화를 선물해 달라는 신혼부부의 소식을 듣는가 하면, 식물을 들여놓았다가 어김없이 죽이고야 말았다는 친구들 소식도 더 자주 접하게 됩니다. 어떤 사유로 식물을 들여놓았건 식물을 들인 사람들이 해주는 말속에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맥락에 따라 구체적인 용어는 다르지만 그 속뜻은 대체로 (식물이 속 좀 썩이지 말고) "그냥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물 관리가 어려워지고 벌레도 많아지는 여름에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습도가 높아지고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벌레가 생기고는 합니다. 뜨거운 볕에 오래 방치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곧 죽을 것처럼 시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빛이 부족하면 삐쭉 웃자라 못생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고민들을 이야기하며, 흙도 깨끗한 것을 썼고 물도 잘 줬는데 왜 문제가 생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식물은 살아있기 때문에 환경에 반응하며, 그 과정 속에서 벌레도 타고 성장이 멈추기도 반대로 급속하게 자라기도 합니다. 따라서 식물이 부정적인 사인을 보냈다면 환경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경험적으로 환기/통풍이 잘 안 되는 문제가 큽니다. 그런데도 환경을 점검하기보다는 "얘가 왜 이러나"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이 왜 이렇게 속 썩일까'라는 질문은 '우리 집 환경에 무슨 문제가 있나'로 바뀌어야 합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저 역시 식물이 (내 의도대로) 가만히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있습니다. 작업을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다루는 것이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던 때입니다. 소재를 구하면 거의 한 달 이내에 분갈이와 수형 만드는 작업을 다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보단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실제로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포트폴리오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기록으로서의 가치(=사진)도 매우 중요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철저하게 식물이 배제된 식물 작업이었던 셈입니다.  



작업 방식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급하게 가지치기를 한 뒤 욕심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방치하던 식물이 어느 날 저 구석에서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물 관리만 해주며 보는 듯 마는 듯했는데 그러는 사이 빛을 향해 가지를 뻗으며 수형이 한층 자연스러워져 있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식물을 만난 듯 반가웠고 식물의 회복력에 감사했습니다. 잘못된 작업 방식을 바로잡는 데에는 식물이 제 스스로 균형을 찾아나가는 데 걸리는 딱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작업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습니다. 점점 마음에 드는 소재를 구하기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적어도 한 계절 이상은 지켜봐야 안심하고 환경에 적응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켜보는 동안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조사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 주로 새 잎이 나오는지도 지켜봅니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살아있는 소재를 대하는 일이기에 언제나 현재 진행형(on-going)인 프로젝트이고, 만약 완성에 가까운 미모를 보았다면 그 순간을 감사히 즐기자는 것으로요.



식물에게 나쁜 환경이 인간에게 좋은 환경 일리 없을 겁니다. 그러니 집에 있는 식물이 말썽이라면 마지막 환기는 언제였는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건조하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너무 꿉꿉한 건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런 참에 환기도 시키고 물도 마시고 식물과 함께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광합성을 즐겨보는 것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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