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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Oct 06. 2020

5. 가지치기 작업의 원칙

오래 지켜보고 신중하게 할 것




식물을 돌보는 분이라면 누구나 가지치기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을 겁니다.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해봐도 가지치기는 ‘다빈도 질문’ 카테고리에 해당합니다. 가지치기는 언제 하는 게 좋나요? 이런 상황은 가지치기를 해도 좋은 상황인가요? 가지치기 후에 식물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잘못한 건가요? 누구나 가지치기에 확신을 갖고 싶어 합니다.



가지치기는 기본적으로 식물의 생장을 보다 원활하게 돕고자 행하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나무의 겉모양을 고르게 하고 과실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나뭇가지의 일부를 잘라 주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수형을 가꾸고 좀 더 멋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는 가지치기의 부수적인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정리되어 있는 가지치기 가이드를 보면 과실수에 대한 예시가 많습니다. 원초적으로는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해 발전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매를 거둘 필요가 없는 도시에서의 가지치기란 어쩔 수 없이 좀 인간 중심적인 것 같습니다. 식물의 생장을 위하기보다는 식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서 불편하거나 덜 아름다우면 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깝게 개인의 수준에서 찾자면 수형에 대한 욕심이 앞선 나머지 가지치기를 하다 오히려 기본(식물의 생장)을 놓쳐 병들거나 죽게 만드는 경우.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시각으로 넓히면 도시의 가로수들이 그렇습니다. 거리를 보면 누가 더 못생긴 나무를 만드나 시합이라도 한 것처럼 사납게 잘려나간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지치기'라는 작업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계기가 있습니다. 2019년 5월 방영된 KBS 스페셜 <서울 나무, 파리 나무>를 보고 식물의 생장에 개입하는 아주 적극적인 방식의 하나인 '가지치기'의 필요성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방송에서는 서울과 파리, 런던의 가로수 관리 방법을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가로수 선별 기준이나 가로수 가지치기 가이드가 미흡한 서울의 방식을 지적합니다. 지적을 당한 건 서울이지만 제가 뜨끔했던 건 각국의 수목 관리자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KBS스페셜 <서울나무, 파리나무>의 한 장면



나무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돌보고 가꿀 능력이 되기 때문에 올바른 곳에 잘 심겼다면 굳이 인간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나무의 생애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전정은 필요한 때에 한정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말. 올바른 관리를 위해서는 식물 생장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교육 과정에서 국민이 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비록 도시의 가로수 관리자나 산림청 관계자도 아니지만, 작업의 주제로서 식물을 다루고 누군가에게 그와 관계된 콘텐츠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가지치기에 대해 제가 어떤 태도를 갖느냐는 문제는 매우 중요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식물 디자인의 영역에서 가지치기는 식물 생장보다는 미적인 필요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한참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그것이 불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습니다. 능숙한 관리자는 전정에 따른 식물의 스트레스까지 고려해 작업할 수 있지만, 경험이 적은 가드너는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펼쳐지고 모인 끝에 간단한 작업 원칙을 세우게 됐습니다. 오래 지켜보고 신중하게 작업할 것. 디자인 과정에서 시행하는 가지치기도 식물의 생장에 탄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 외적인 아름다움을 극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공존합니다. 때로는 생장 탄력이 더 큰 목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외적인 아름다움이 더 큰 목적이 될 때도 있습니다. 어느 때이건 공존하는 두 목적 사이의 무게가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단, 언제 어떻게 개입하는 것이 좋을지, 그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오래 지켜봐야 합니다. 오래 지켜보며 해당 식물의 생장 특징을 이해하고 그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시각이 길러져야 꼭 필요한 작업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 원칙은 작업의 속도를 현저히 늦추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문제의식을 갖는 것 자체만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가드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알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 작업의 방식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언급된 다큐멘터리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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