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을 고소하고 결혼에 성공한 슈만과 클라라, 그 이후
지난번 내가 해 준 장인어른을 고소하고 결혼까지 성공해 버린 슈만과 클라라 이야기, 기억나? 사랑한다면 정말 뭐든지 쟁취해야 하는 걸까? "밀어붙이면 다 이뤄지는 거 아냐?" 하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말이야,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사랑이라는 게 꼭 쟁취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 어떤 사랑은 싸워서 얻어내지만, 어떤 사랑은 지켜 주기 위해 멀리 서 있어야 하고, 또 어떤 사랑은 평생 마음속에서만 오래오래 자라는 경우도 있거든.
슈만이 클라라랑 결혼한 과정은 거의 로맨스 판타지잖아. 장인어른이 둘 사이를 결사반대하니까 법원에 가서 “저 장인어른 고소할게요!” 하고, 결혼 허가 소송에서 이겨 버렸지. 여기까진 해피엔딩처럼 보이지? 결혼 이후가 문제였어. 슈만은 원래부터 워낙 멘털이 약했거든. 조울증, 불면, 환청까지 오늘날 기준으로 해도 쉽지 않은 정신질환들이 한꺼번에 있었어. 게다가 생계 스트레스, 창작의 고통, 과로까지 겹치니까 사람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거야. 남편이 버티지 못하면 결국 집안 분위기는 흔들리기 마련이지. 그때 등장한 사람이 있어. 바로 브람스야.
브람스는 슈만의 제자였는데, 슈만도, 클라라도 진심으로 아끼던 애였어. 근데 슈만이 아프니까 브람스가 그냥 제자 모드가 아니라, 거의 가족 관리자 모드로 들어간 거지. 아이들 돌봐주고, 집안일 도와주고, 아픈 스승 챙기고, 클라라가 무너지지 않게 옆에서 붙잡아 주고. 이러다 보니 둘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보게 된 거야.
둘 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었냐고? 응, 있었어. 근데 절대 말로 안 했어. 아니, 못 했어.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스승님의 아내였고, 클라라에게 브람스는 남편의, 그것도 자기보다 14살이나 어린 제자였지. 그러던 어느 날, 슈만이 세상을 떠났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각했지. '아, 이제 브람스에게 기회가 왔다!' 그리고 클라라도 은근히 기대했대. 근데.......
브람스는 너무 착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너무 조심스러운 사람이었고. 스승의 아내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던 거지. 또, 유럽의 슈퍼스타 피아니스트인 클라라가 '죽은 남편 제자랑 연애한다' 소문 돌면 난리 날 걸 뻔히 알았지. 게다가 브람스 자체가 엄청 내성적이라 말로 할 바에는 차라리 피아노를 연주하는 스타일이었거든. 브람스에게 사랑은 말로 꺼내는 게 아니라 지켜 주는 것이었어.
브람스는 평생을 클라라 옆에서 지켜봤지만 단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어. 대신 그는 자기 방식대로 사랑을 고백했지.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스승에 대한 의리, 클라라를 향한 배려, 내성적인 성격, 그리고 세상 어떤 것보다 깊었던 감정들. 그 모든 걸 브람스의 음악 속에 담아 남겼어. 그래서 우리가 오늘 듣는 그의 음악이 이렇게 깊고 아린 거고.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사랑은 꼭 ‘손에 넣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 슈만은 사랑을 위해 법정까지 갔고, 클라라는 사랑 때문에 평생을 흔들렸고, 브람스는 사랑을 알면서도 끝내 한 발짝도 내딛지 않았어. 누군가는 쟁취했고, 누군가는 버텼고, 누군가는 지켜 주려고 멀리 섰던 거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 사람 중에 가장 조용했던 브람스의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깊게 남아 있어. 입으로는 끝내 단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손끝으로는 평생을 고백했지. 그 대표적인 곡이 바로 브람스의 Intermezzo Op.118 No.2야. 이 곡을 듣다 보면 마치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아. 부드럽고, 따뜻하고, 조금은 울컥하는 그 멜로디는 고백보다 더 고백 같고, 침묵보다 더 솔직한 마음이야.
“내가 말은 못 했지만…
나는 이렇게 너를 사랑했어.”
그러니까 사랑이 꼭 쟁취해야만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거, 브람스가 음악으로 보여준 셈이지. 오늘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음악을 다시 들어보면, 브람스의 그 조용한 마음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