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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un 24. 2021

고요

한강 잠수교를 차도 곁으로 마지막으로 걷는 시간

https://youtu.be/3ZjndJ3ZFg4

월간윤종신 2014년 10월호 고요. 이별 풍경을 그린 뮤직비디오


월간 윤종신 뮤비를 보다 보면

직접 들러보고 싶은 뮤비 속 배경이 많아지는데,

예전부터 생각만 하다가 결국 올해 여름 걸어본 곳이 있다.

바로 잠수교!

용산구 서빙고와 서초구 반포를

잇는 이층 구조 다리의 일층이다.

여름 방송 뉴스에서 집중호우가 내릴 때마다

주요 자료 배경으로 쓰이는 단골 장소다.

잠수교가 잠기었다는 보도 자료로 제일 자주 했다.


월간 윤종신 뮤비 중에서는 2014년 10월 가을에

정준일이 부른 '고요' 뮤비 이별 장면에서

헬리캠으로 찍힌 잠수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고요 뮤비 속 첫 장면, 이별 전
구절구절 절절함이 느껴지는 이별 직전 심경. 윤종신 가사

그 뮤비를 보면서 꼭 잠수교를 한 번 걷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잊고 살다가 그 마음을 가진 지

7년 만에 방문했다. 늦었지만 적절한 방문였다.


다녀오고 나서 우연히 뉴스를 보니 6월에 서울시에서

이 도로를 전면 보행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파란 시내버스와 온갖 자가용, 자전거, 사람이

섞이어 이동하는 다리로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세대가 된 것이나

다름없기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며(?) 자족했다.

지난 5월 서울 시민 3,214명을 대상으로

한강 보행교 조성에 대한 여론조사가 진행됐고

투표자의 84.9 퍼센트가 찬성했다고 한다.

151억 가량의 예산을 들여

7월에 온라인 공청회, 8월에 투자 심사,

내년에 국제설계공모가 진행될 예정이란다.

유용한 보행로로 거듭면 좋겠다.

드라이브로 잠수교를 즐기고 싶은 이라면

그전에 방문해야 할 것 같다.

야경이 너무나 멋있는 곳. 없던 감정도 생길 곳이다.

퍽퍽한 일상을 과히 위로받을 만한 다리다.


윤종신 고요 뮤비에서는 이별한 남녀가

마지막 포옹을 한 장소로 나오고,

남자의 아픔에 집중하며

잠수교와 반포교를 비춰준다.

근경에서 원경으로 멀어지며

이별 직전 막막한 심경을 한강 풍경으로

조망해준다.

고요 뮤비 속 이별 후 장면

왜 이별한 사람은 한강을 걸을까 싶지만,

이 클리세적인 행동을 나 역시 해본 바로는,

(갠적으론 바다라면 더 좋을 듯 싶지만)

큰 동요 없는 웅장한 강물 한가운데 서보고 나면

이별의 복잡한 심경과 누구도 탓하기 힘든 상황 

복잡한 감정을,

물살에 쓸려 보낼 수 있게 된다.

바람마저 세게 분다면,

그때야 말로 누군가의 내가 아닌,

나로서의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된다.

현실 자각의 시간이랄까.

아, 이제 혼자구나.

그래도 멀쩡한 정신에선 긴 긴 한강 다리를

좀처럼 안 건너게 되는 걸 보면

이별이라든가, 혹은 너무 설레는 사랑에 빠져

정신 못 차릴 때 커플끼리 한강을 건너보는

경험은, 고요의 순간이 왔을 때

회상 속에 등장하는 베스트 신이 된다.

잠수교 인근 여름 정경

잠수교는 너비 18m, 길이 795m이다.

100m 달리기를 7번 넘게 할 수 있는 거리다.

심지어 굴곡도 있다.

예전에는 가운데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구조였다가

아시안게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점 1986년

아치형으로 고정되었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부산 영도교가 떠올랐다. 다리가 갈라져

배가 이동하는  바다 풍경을 보고 싶어진다.)

잠수교는 강북과 강남을 잇고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시점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이때 태어난 사람에게는

다리가 동년배다.

굴곡 진 다리를 걸어봄으로써

거창하지만 자기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도

다리에 기대어 떠올려 볼 수 있다. 인생 다리. 후훗.

달 뜬 반포교


석양 무렵 방문한 잠수교는

그야말로 체육 센터였다.

사이클링 선수들처럼 갖춰 입고 열심히

두 바퀴를 굴리는 단정한 옷매무새의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그저 산책하는 유유히 걷는 이들.

보행도로가 돼 있어 위험도도 낮은 편이다.

다리 아래로는 한강 수상레저 레이크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위로는 꽉 막힌 반포교에 차량이

물 밀듯 밀려가고 있었고

다리 끝에는 역시 여가를 즐기러 나온 소풍객들과

운동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다리는 부산과 서울 간 경부고속도로를

잇기 위한 애초의 용도도 있었고

고속터미널이 생길 때 그 쓰임을 뒷받침했다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강을 빠져나가자 마자 직진하면

고속터미널이 나온다.


시작 시점은 이촌동으로 잡았고

가는 길에 숲처럼 이어진 산책로와 공원을 지났고

4호선이 지나는 동작대교를 거쳤는데

동작대교에 잠시 멈춰 서

이곳 앞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고

카메라를 멀리서 잡으면

물 위에 떠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판타지적인 풍경을 떠올려본 뒤

다시 걸었다.

한강을 걷는데 나무와 풀이 무성해

물길을 가려 강가가 아니라

정처없이 수풀 안을 헤집고 가는 기분이었다.


동작대교 밑

P.S.

친구가 이촌역부터 반포대교까지의 여정을

그림자로 찍어 주었다.


이촌역 경의선과 한강예술공원 이촌지구

반포대교, 잠수교로 향하는 한강 숲길

반포대교 입구
이촌역 기찻길에서 찍어 본 열차. 땡땡땡 신호음과 쉬이익 바퀴음이 아날로그적으로 다가와 쵤영해 보았다. 이질적 서울 거리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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