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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이전과 지금의 교차 지점
by
레아
Jul 5. 2021
고궁이 개인적으로 내게 아름다운 이유를 생각해보고
싶었다. 오랜 시간 살아남아서, 긴 시간 버텨주어서,
그 질긴 생명력에 나도 경이롭긴 하지만
그 이유 외에도 나를 잡아당기는 게 있을 것 같았다.
대답을 찾긴 했다.
고궁을 걷다 가장 오래 멈춘 곳에서
그 나름의 의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춘헌. 정조가 독서를 즐기던 곳. 입구 홍화문에서 문을 등지고 오른편, 북서쪽에 있고 좀 오르막길로 걸어 오르면 창덕궁과 이어진다.
영춘헌. 정조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창경궁은 이산, 정조가 태어나고 사라진 장소다. 탄생지는 경춘전. 영춘헌에서 조금 걸어 맞은편에 있다.
창경궁에서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 곳은
두 군데가 있었다.
정조가 독서를 즐기던 곳과 숲이었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이라면
발을 딛고 섰을 때
다른 위치보다
담장 너머가 잘 보이는 곳이란 점이다.
서울 도심의 빌딩 숲 정경과 바깥 하늘이
눈에 잘 들어온다.
정조 대왕이 책을 읽을 때도
바깥 세상, 담장 너머가
잘 보였을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독서 지점이 그 사실을
인지하기 전에도 좋았다.
고궁 안에서도 약간 지대 기울기와 높이가
있는 까닭이었다.
평소에도 종종 고궁을 갔던 건, 그게 도심 가운데
있어서였고, 도심 중에서도 가장 번잡한 종로구
한 가운데 있고 (선릉 주변 산책도 좋아하는데,
강남구 번잡한 도로 사이에 능선이 보이고
고요한 숲이 등장한다.) 이질적인 옛 것이 새 것 사이에 출연하는
그 느닷없는 걸음 속 예외에 반하는 까닭이었다.
고궁 안에만 있다면, 도심에만 있다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도리어 답답하게 갇힌 느낌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산 속 가운데 적막하게 출구를 잃은 것처럼.
그런데 고궁의 야트막한 담 뒤로
남산타워가 섞이고 빌딩 숲이 드러난다.
조금만 걸으면 출구 밖으로도 나갈 수 있다.
조선 시대라면 그것들이 야트막한 동산이라든가
다른 계층의 세상일 수도 있었겠다.
나는 창경궁 후원에서도 명륜동 골목의
특이한 건물들이 눈에 잡히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나무 사이로 사진을 찍곤 했고,
그 자체로 힐링이 되곤 했다.
스무 살 즈음에도 역사책이나 고궁을
둘러보며 좋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시간의 긴 강 위에 있다는
거창한 인식 때문이었다.
나의 고민이 역사 속에서 보면
너무 티끌 같아서,
긴 흐름 안에 아주 작은 점 정도 되려나.
그러면서 정도전의 도시 디자인 얘기나
고궁에 이름을 붙이던
그의 개국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 받곤 했는데,
도심 속 고궁에서
내 어린 날도 떠올랐다.
정조의 독서 지역은 실제로
지금은 한가히 책을 읽어도 될 정도로
적막하며 홀로 쉬어가기 좋은 장소로,
주말 오전에 찾은 때 역시
여느 행인들도 곳곳에서 혼자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
창덕궁 후원으로 갈 사람들은
뒤 편 문 쪽으로
주변을 소요하는 이들은 저마다
자기 리듬대로 고궁에서 산책 중이었고,
공공 근로자들이 작업 조끼를 걸치고
풀과 방화 시설을 점검하는 등
일하고 있었다.
.... 창경궁 산책기 계속...
입구 1번, 정조 서거 및 독서지 영춘헌 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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