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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ul 17. 2021

사슴

오가던 길

노래 한 곡을 연거푸 듣다보면

멍하니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그것도 점점이 어떤 일들과 예전 사람과 연결되면서,

노래를 듣는 그 시간 동안

온전히 기억을 여행하는 사람이 된다.


월간윤종신 2020년 4월호 고립을 들으며,

문득 사슴이 보고 싶어졌다.

서울에서 가장 쉽사리 볼 수 있는 곳은

뚝섬 서울숲인 것 같다. 그곳에 사슴 우리가 있어서

처음 생겼을 때 사슴 보러 간단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근데

뭔가 우리에 갇 사슴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사슴이 보고 싶었다. 갑자기 사슴 얘기를 하는 건, 고립 가사 속에 사슴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슴마저 잠시 눈짓을 나누고 총총히 사라져가는 모습이 노래 안에 흐른다.

아마도 사슴과 더불어 코로나 19 초반에

직접  눈인사를 건네기 어려웠던 이들을 모두 비유적으로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최근에 사슴을 보지 못했지만

지난달 친구와 방배동을 걷다 문득 기억 속 사슴을 소환했다. 예전에 가까웠던 이는

어린 시절을 방배동에서 보냈는데, 동네 산에서 사슴을 보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릴 적  우면산에 운동하러 와서

사슴을 보았다고...

왜 그말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사실 그때의 기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참을 사슴 동네 살던 모습으로

 그의 과거 한 모습을 틋하게 규정했다.


작년 여름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방배와

우면산 부근을 우회했다.

 일 때문에 가긴 했지만

대낮에 사람들이 반대편 건물을 가려 산을 넘고 있

신기한 풍경을 목도했다.

 같이 걸었다.

다행히 야트막한 산이었다.

건물과 길 사이 빠른 길로 접어들려다 보니,

지름길인 산길을 택했다.

남부 터미널에서 예술의 전당 방면으로 진직하면

바로 산 입구가 나다.

대낮에 각기 마스크를 낀 채로,

직장인과 주변 채소밭에 일나온 이들이 점점이 떨어져

존재하는 모습에서

노래 고립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길에서 문득

사슴을 마주치진 않을까 상상했다.


친구가 말하던 어릴 적 동네 사슴.


 한낮인데도 도심의 산속은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지만

멧돼지가 아니라 사슴이 튀어나오리라

여기니 무섭지 않았다.

몇몇이 오가곤 있지만 흙길 사이에 각기 따로

떨어져 걷는 이들. 그때도 서울 코로나 등급이 상향되어 극장도 닫고 공공시설이 영업을 중지한 때였다.

게다가 산길로 접어들기 전 예술의 전당에 들렀는데

로비에 인파도 전혀 없고 처음 보는 생소한 모습였다.

그 직전 늦겨울 본 풍경이 뮤지컬을 끝내고 퇴근길에 나섰던 규현과 팬들을 보았기에 더 그랬던 것도 같다.

규현을 둘러싼 이들이 걷던 모습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때의 인상을 갖고 텅 빈 로비를 보니

도시가 멈춘 풍경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대부분은 치명적인 재난에

가까운 상황을 아슬아슬하 비껴가야만

일상생활에서 좌절과 분노 때문에

인정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중에서' 73p.


우면산에선 결국 사슴은 보지 못하고

마스크 쓴 행인들만 보았지만

그곳에 사슴이 살았다는 친구의 말이

그게 자랑이었든 설렘이었든

어린 시절에 대한 사소한 소회였든,

 여전히

기억에 박혀 있다.

그 얘기를 들었던 숲길과 벤치는 그대로

있었다. 우면산 자락의 끄트머리.


예술의 전당을 들르면

시간이 남는다면

한번쯤 들러보라고 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길이다.

나로선 추억 때문에 좋아하는 길이지만

추억을 만들고 싶은 이에게도 괜찮은 산책지다.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옆으로 좀 더 가서

한예종 서초캠퍼스 사이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곳인데.

모차르트 카페 옆길 계단으로 올라도 좋다.

나무가 우거지고 잠시 외따로 떨어진 듯한

공간이 나온다.

클래식 연주 소리도 들리고 극장 인파와 떨어져

고요히

쉬어갈 만한 의자다.

그 옆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무용원이

있어 라이브 음악 소리도 비지엠이 되는데,

예전에 그곳이 예술학교인지 모를 때조차

좋아해 그곳에서 왜 그리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지,

정확한 이유를 몰랐었다.

자주 가던 까닭에 어떤 운명이 이끈 건지,

시크릿플레이스로 홀로 지정한 탓이었나,

나는 한때 그곳에 또 자주 가는 생활을 했다.

뒤늦은 예술 공부를 하겠다며,

마치지 않은 학업 속에서

음악과 무용빠졌다.

그래서 지금도 왠지 아련한

기억 속 자리, 그 벤치가

여전히 있다는 게 반갑다.

한예종도 이사를 가니 아마도

그곳도 미래엔 다른 곳이 될 테고

이후 리모델링이 되더라도,

오래 아끼던 기억 속 그 벤치는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의자 끝에서 직진하면 또 다시 우면산 숲길과

이어져 있다.

예술의 전당 위쪽 산책로
2021 우면산 산책로
2020년 여름 우면산 산책로 (다른 길을 잇는 산길 골목이기도) 입구
2020년 도시가 멈춘 듯한 느낌의 지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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