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사적인가요
뜨거운 여름밤
by
레아
Jul 16. 2021
올 여름 밤은 매미 소리보다 귀뚜라미 소리를
먼저 들었다.
1호선 밤 열차를 기다리다 옆 선로들로
지방을 오갔을 기차가
웅장한 폼으로 지나는 걸 보
니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떠올랐고,
그 안의 쓰쿠루 유일한 취미,
역에 나가 하릴없이 오가는 기차와 행인을
바라보던 모습을 떠올렸다.
이렇다할 특징도 없다고 말하는 그가
정작 덕후처럼 바라보던 역과 기차.
직장도 정작 철도 회사.
무색 무취라고 말하는 이들도
그 무심함 자체가 매력인 경우가 많다.
실제 세계에서도...
검은 밤 녹빛이 없는 풍경 속에
어디 먼 데서 귀뚜라미와 기차 기계 소리를 들으며
찌는 듯한 더위이지만 그래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또 오는구나 생각했다.
넋놓고 기차가 오는 선로를 바라보던
몇 초를 보내고 열차에 올랐다.
먼저 와준 귀뚜라미 울음 덕분에
계절이 이동하는 걸 알게 됐고,
여름 특유의 비릿한 계절 냄새와,
무더운 바람이, 겨울이 오면 또 여름이
그리워질 거란 미련에 잠기게 했다.
아직 다 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가버릴 시간을 떠올리는 건,
불안한 사랑처럼 조바심 내는 일만 같고,
얼마전 교보문고 외관에서 본 시의 구절과
예전 잔나비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 떠올라 집에 가서
듣고 싶어졌다.
여름이 가기 전
"모르는 이의 그늘을 읽고" 싶어지도록 만든
소리였다. 밤기차 귀뚜라미.
https://youtu.be/cidZ41v73wU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여름 버전)
https://youtu.be/luGHgGyhRQw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겨울 방송분
먼 데를 이동했을 여름 밤 기차
김경인 시인 여름의 할 일 시구
p.s.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
해당 간판의 구절이 들어있는 2연. 시의 일부.
keyword
귀뚜라미
일상
여름
6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레아
직업
크리에이터
움직임을 기록합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발자국
구독자
35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고립
사슴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