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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Jul 19. 2021

이유 없이 달리기

천천히 길게 ~

공항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참 많은데,

공항 내에서 수차례 왕복 달리기를 한 장면이 첫째다.

가장 오래도록 뇌리에 남은 건,

어느 범인이 해외로 도주해서

인터폴에 잡혀 들어올 때

그가 입국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인천공항에 갔을 때였다.

수많은 취재진이 공항 출입 통로를 채우고 있었는데,

몇 번 게이트에서 나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카더라 통신에 따라,

오른쪽에서 나온다더라, 하면 오른쪽으로

미친 듯 달려가고

왼쪽에서 나온다더라, 하면 왼쪽으로

정신 놓고 달렸다.

노트북을 팔에 들고 구두를 신은 채로.

집념을 다해 달렸다.

새벽녘 총알택시를 타고 영종도에 가서

그 범법자를 인파 속에서 기다린 날였다.

점심 전에 입국했던 것 같다.

끝나고 맥도날드 세트를 먹었으니.

애초에

2명이 배당을 받았는데,

한 명은 그가 입건될 분당 경찰서에 가 있고

나는 인천 공항 게이트에 가 있었다.

이리저리 뛰다 보니

타회사의 몇 명과 즉석에서 팀을 이루게 됐고

함께 달렸다.

혼자 달리는 것보다 같이 달리면

덜 힘들다. 사람 심리가 참 오묘하다.


달리기 중 그 달리기가 인상적였던 건,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결국 내 편 게이트에서

범인이 호송돼 나왔고,

바로 폰으로 사진을 찍어

회사로 전송하고 그 자리 앉아

기사를 쓰고 발송할 수 있었다.

함께 달리던 이들과

약간은 후련한 맘으로,

햄버거를 먹었고

우리는 또 같이 그를 욕했다.


그때가 기억에 가장 남는 건, 그 시절엔

이유가 있어서였던 것 같다.

늘 의미를 찾던 과한 열정.

대학 시절 취준생 때부터 좀 더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는데,

힘이 세거나 합기도나 태권도, 태껸같은 걸

하진 못하니,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을 취재할 때

달리기라도 잘 해야겠단 생각을 했고,

그게 동기부여가 되어

대학 졸업반 시절부터

한강 영동대교부터 잠실대교까지

왕복해 달리고

자양동 아리랑 선박 앞에서 줄넘기를 하곤 했다.


요사이 다시 내게,

달리기에 어떤 동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 떠오른 장면였다.

지금은 그때의 직업도 아니고,

열정도 못 미친다.

나이에 따른 건강 챙기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뭔가 또 어떤 기분 좋은 목표를 만들고 싶은

강박에도 잠겼다. 그런 강박을 내려놓고자

달리는 건데 또 사람이 참 모순적이다.


게다가 20대 때 열의를 다해

달릴 땐 그 계절에 만나던 이가

군인이어서

구남친은 고생하는데

나는 편할 수 없지, 란 마음에

달리고 또 달리다

결국 그게 뇌에 박혀 습관이 되어버렸다.

잘 달리고 오래 달리진 못해도

매일 달리는 사람

정체성을 갖게 됐고,

취직 후에도

집이나 회사 주변 헬스장이나

수영장을 연 단위로 끊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는

왕가위 영화를 너무 좋아해,

과히 센티멘털해서

지금 시대 감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감정 철철 흘러넘치는 남자,

이별에 허덕이던

하지무 368

금성무의 달리기 장면에 반해,

또 그렇게 달리는 상태를 흠모하게 됐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빠진 세대이기에,

그의 달리기 에세이나 에피소드를

보면서도 영향을 받았다.


https://youtu.be/fEPjEdiFsS4

금성무 달리기 신은 참 멋져 보였다. 10대 때 달리기 영감을 준 배우 ㅎ

"나는 아침 6시에 태어났다.

2분 후에 난 25살이 된다.

다시 말해 난 벌써 이 세상에서

4분의 1을 보냈다.

이 역사적 순간에 난 조깅을 한다.

몸 안의 수분을 모두 내보낸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다.

운동장을 떠날 때 삐삐를 버리기로 했다..."

 '중경삼림'  금성무 독백 중에서


그런 시간이 축적되어

어느 시기, 잘 달리는 연극 배우들과

더 달리는 무용수들이 ,

달리는 영상 클립 찰나에 만들어내는 시간과,

달리기춤을 무대에서 맨몸으로 테크니컬하게 소화하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일하기도 했다.


습관이란 게 신기한 건,

그게 미래의 어느 예정된 시간들을

불러오는 것 같다.

과거에 몰랐으나 미래에 알게 될 무엇.


지금의 취미 달리기는 내게 또 어떤

시간과 몰입, 혹은 추억을 만들어줄까.

알 수 없어도

기대하지 않아도 일단 달리자.


목적 없는 생활도,

가끔은 필요하니까,라며

무목적의 달리기를  오늘도 실천 중.

천천히 오래 가보자.


Q. 당신은 왜 달리나요?

https://youtu.be/UGL-MpOO2nE

윤상의 노래, 달리기. 이하이와 이수현 버전.
윤상의 달리기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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