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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Aug 12. 2021

날려 사라진 동작에서

날리다 동사를 생각

근육 운동을 할 때 천천히 해야 할 동작을 빠르게 해버려서

운동 슨생님에게

동작을 다 '날려버렸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정신을 차리고 의식적으로

느리게 해야지 마음 먹는데,

문득 날리다라는 우리 말

참 오묘한 서술어라는 생각이 었다.

적절히 상황을 그려내는데,

밝고 어둔 느낌을 동시에 준다.

종이 비행기나 행글라이더를 날릴 때의

날리다는 시원스럽고 희망 찬 포즈라면,

운동할 때 정성스러운 포즈로 하지 못해

(대강대강 아무렇게나)

날려 버릴 땐 '헛되다'라는 뜻이 되어버리니,

어쩌면 서로 다른 늬앙스를 풍기는 다의어다.

어떤 공사가 허술할 때도 날림 공사였다고 하고,

도박이나 뽑기 같은 걸로 헛돈을 썼을 때도 날렸다고 한다.


날다의 사동형으로 접미사 ''가 붙어서 날게 하다 뜻의

날리다가 되었을 텐데, 뜻이 참 극단적으로

허와 실의 형상이 그러져 각별히 다가왔다.

그런데 왠지 그 날리다가

좋은 무대를 보았을 때

뒤따라오는 허한 심경과도 좀 일맥상통하는 듯했다.

나는 아끼는 공연 무대가 해체되고

고물상이나 쓰레기통으로 갈 때

몹시 아까워 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살아있을 때 한껏 눈에 웃음을 날리며 바라보던 곳.


응당 사라지는 예술이라 아름다운 것인데,

얼마 전 무대에서 밝게 빛나던 재료들이

때가 묻고 제 쓸모를 다하여

으로 날아가 버릴 때

어디 간직할 물리적인 공간은 없고

안타까운 심정만 배가 된다.

언젠가 어느 배우는 내게,

이번 공연 끝면 저 구조물 어쩔 거예요,

저기 고물상 있네, 하면서

전화번호 적어가라며

혜화로터리 고개를 지나며

신학대학 편 방향의 편을 가리켰다.

차 안에서 어찌나 약이 오르는지,

그때 그 배우잖이 미워 보였다.

고물상을 바라보며 겉만 웃었다.

공연에 퍼부은 애정 정도에서

스태프 파트인 나와 배우인 그 중에서

그가 더 빛난다고 겼지만

사라지는 무대를 너무 예견하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그

서운한 맘이 들었다.

그냥 그는 미리 챙겨준 것인지도 -.-

가끔 포스터 속 그 배우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고물상 단어가 겹쳐 떠오르고,

무대를 날려먹길 바라진 않았겠으나

쉽사리 보내주던 위기가 생각난다.


무어라도 보내주는 것을 잘 해야

스펀지처럼 흡수도 잘 된다는

생활의 이치를 알면서도,

쉽사리 실천은 안 된다.


오늘 몇 차례 날림 동작들을 하면서,

다음엔 꼭 천천히 해야지 다짐하다가

날리다란 동사가 떠올랐고

날려버린 아니 사라진 저편 기억

어느 무대가 떠올랐다.

하지만

해체되고 남은 일부 찌꺼기들

모조리 재활용 봉투에 담아

보낸 것이니 어딘가에서 부활해 다른 물질로 잘 살겠지.


210812 고블릿 스쿼트 10kg, 레그 컬링,

막대 의존 숄더 프레스 

운동 후 생각. 이클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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