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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Nov 22. 2024

에이치에게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가요

뇌의 편도체는 개인의 좋고 나쁜 기억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특정 장소나 사물을 대했을 때 편도체가 기능해, 어떤 건 계속 따뜻하고 어떤 건 늘 두려운 감정을 갖게 만든다. 인위적으로 대면해 고치지 않는 한, 기억은 그렇게 흘러간다.

 과거 한때 행복한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애틋하게 미화되는 건 결국 나의 뇌 작용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시간 속에 강렬하게 강화된다. 그리고 자란다. 오랫동안 한 가수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세월이 흐를수록 좋아했던 곡들이 추억을 건드리는 매개체가 되고 그 기억이 점점 아름답게 변해간다. 노래들이 인생 BGM이 되면서 말이다. 인천국제공항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입국장 어느 방면을 바라보다 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차가워진 바람에 고개 묻어버리고 살며시 웃어버리는 건 단지 스치는 낙엽처럼 쓸쓸한 계절 때문은 아닐 텐데…. 비어버린 가슴에 너를 채워버리려 가만히 떠올려 보는 건 그냥 가끔씩 생각나는 사람은 아닐 거야. 넌 아무것도 내게 줄 수 없지만 나의 마음 가져가버린 너”

공일오비 <에이치에게>, 윤종신이 부른 91년 곡이다. 그저 멀리 H가 보여, 무릎 치면 올라가는 무조건 반사처럼 그 곡을 흥얼대고 있었다. 걷다가 가만히 있다가 어떤 노래를 혼자 부르고 있으면 그 곡이 내게 문득 다다른 이유를 떠올려본다. 마치 무의식의 꿈처럼 가사나 멜로디를 되짚어보며 그 노래를 멜론에서 찾아 들어본다. 리메이크 이태권 곡도 좋지만 원곡 윤종신 미성을 더 많이 듣긴 한다. 지금 어딘가에서 실제 H도 가을만 되면 그 곡을 들을 수도 있겠다. 나는 H에게를 들으나의 H에게를 떠올린다. 우연인지 아프게 헤어진 연인도 친구도 이니셜이 H다. 지금은 교류가 끊겼지만 문득문득 이런 이니셜을 보고 노래를 들으면 생각이 난다. 알파벳이나 노래가 편도체를 건드려 깊숙하게 내려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나 보다. 우연히 H를 길에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실제로 만났던 적이 있다. 2호선 지하철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맞은편으로 그 사람이 누군가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직장 주변 낮시간대였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잠시 위로 나가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가 인사를 해야 하나 멈칫하긴 했다. 결국 그런 행동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그 웃음 하나에 잘 사는구나, 다행이네. 그때 또 떠오른 노래가 있었다. “나 역시 좋아요. 그대 덕분에 나를 알았죠.”

https://youtu.be/LO3tlEkVGDg?si=NAnJaB00gAt4WbUM


윤종신 노래. 잘했어요. 이 곡도 역시 정준일 버전의 월간윤종신 리메이크곡이 있는데, 원곡을 더 많이 들었다.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아마도 청승의 정점을 찍은 노래여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와 결혼할 때 혼자 이 곡만 들었다. 노래로 견뎌내고 또 시간이 흐르니 그저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잘했어요는 마지막에 건강해요라는 가사로 끝나는데 그게 너무 애틋하다. 사랑이 퇴색되든 잊히든 영원히 기억되든 상처가 되든, 모든 결과를 다 뛰어넘어 인간적 응원! 건강해요! 이런 간결하고 소중한 이별 인사가 어디 있을까. 순수했던 시절 군입대 하던 남자친구가 마지막 통화에서 했던 “건강해야 돼. 밥 꼭꼭 챙겨 먹고.” 그런 단순하고 우직한 추억의 인사가 떠오르는 구절이기도 하다. 삶이 먼저고 노래가 다음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노래가 추억을 뛰어넘기도 한다. 꾸준히 과거를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온도를 데우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H 공항 철자를 보며 윤종신의 90년대 대학 시절 차가운 미성을 떠올렸고 떠나간 사람들의 차가운 계절 따뜻한 안부를 떠올렸다. 노래의 위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노래가 불러와 준 감정이다.


https://youtu.be/CzPG41tYAkA?si=0Q5KLmNRQ6v3N6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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