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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그 시절 내가 사랑한 가요

공일오비(윤종신) 요즘 애들 버릇 없어

by 레아

당신이 살아온 세월보다, 내가 OO를 더 오래 했어요.

폴 메스칼과 나탈리 포트먼의 인터뷰를 보다가, 나탈리 포트먼이 폴 메스칼의 나이보다 연기 경력이 긴 것을 얘기하는데 웃음이 났다. 해외 톱스타들도 이런 말을 하는구나.

굉장히 한국적인 나이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연예 잡지 ‘버라이어티’ 배우 인터뷰를 보면서, 사람 사는 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직장에서 겪은 일이다. 폴 메스칼(1996년생) 세대의 20대 직원에게 나탈리 포트먼(1981년생) 또래의 40대 직원이 ‘내가 어릴 적 사고 쳤으면 너만한 아들이 있다’고 말하자, 그 직원이 본인이 입사한 이후로 왜 이렇게 다들 ‘사고를 많이 치는지’ 하면서 웃었다. 그 말은 그 얘기를 엄청 들었다는 뜻이다. 스무 살에 일찍 직장생활을 한 남성 직원에게 수많은 남녀 선배들이 그 말을 입버릇처럼 했나 보다. 사실 사회 생활 초반에 나도 사람들이 ‘애기’ 혹은 ‘젖 비린내’ 이런 단어를 종종 쓸 때면, ‘이렇게 큰 아기가 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예전에 어느 아역 출신 스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웃으며 ‘나는 엄마가 키웠는데, 왜 이렇게 절 키운 사람이 많은지....’라고 했다. 그 말은 잘 큰 배우라고 온통 미디어가 얘기하지만, 사실 어른이 된 배우 입장에서는 ‘내가 널 키웠지’하는 식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렸겠다 싶기도 했다. ^^

친구가 되는 건 나이보다 취향이 좀 더 우선적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를 의식하게 된다. 특히 직장에선 그렇다. 직장 밖에선 좀 자유로운 편이지만 보수적인 직장에선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 나는 직원을 대할 땐 늘 조심하는 편이다. 혹시 은연중 내가 상대가 어리다고 여기거나 ‘라떼’ 시연을 하는 건 아닐까 점검하곤 한다. 신나서 과거 경험담이나 무용담을 떠들다가도 문득 아, 지금 상대는 전혀 관심 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 라고 생각도 하고, 스스로 절제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 와중에 가장 신기하고 궁금했던 게 인사다. 나는 인사를 크고 밝게 하던 편이다. 그런데 조직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이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나보다 어린 직원에게 먼저 인사를 하면 표정이 ‘뚱 -_-’ 한 경우도 많고 다들 휴대폰을 보거나 시선을 딴 데 보고 걷는다. 요샌 그러려니 하고, 웬만하면 덜 친한 이들은 스스로 좀 걸음을 늦게나 일찍 걸으며 피해가는 편이다. 나는 친한 여부 상관없이 인사를 잘하는 인사맨이긴 하다. 대학시절에는 전철역부터 캠퍼스까지 학교 셔틀을 탔는데, 친구가 저만치 지나가면 셔틀 창문을 열고선 '누구야!!!!!'하고 크게 불러 인사하는 편이었다 ^^ 그런 나이기에 요사이 젊은 세대를 보면서 처음에는 ‘예의가 없다’라고 여겼는데, 그건 오해였던 것 같다. 오히려 쑥스러워서라거나 단체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게 더 큰 이유 같았다. ‘라떼는...(나오고 말았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골목에서 놀고 놀이터에서 놀고, 보호자 없이 놀이동산 다니고 그랬다. 학창 시절엔 동아리도 많이 하고 학생회도 하고 이것저것 어울려 다니며 할 게 참 많았다. 그런데 지금 시험을 통과해 들어온 세대를 보면 의외로 그런 단체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혼자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고 인강 듣고 전화보다 메신저가 더 편한 세대다. 전화공포증을 지닌 몇몇 젊은 직원들 경험담을 들으면서도 시대가 변했구나 싶었다. 나는 삐삐세대라서, 전화기를 들고서 혼자서도 잘 떠들고, 사람하고도 대화나누는 걸 좋아한다.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땐 너무 감격해서(ENFP) 수위 아저씨에게도 아침마다 인사하고 뭔가 정문에서부터 열정! 속으로 외치면서 들어갔다. 그게 이천년대인데, 이젠 직장 정문 앞에서도 그런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 내 직장만 그런 건가. 뭔가 예전의 애틋하고 활기 있는 모습이 사라지고 모두 폰 안으로 들어간 것만 같다.

공일오비 노래 중에 윤종신이 부른 ‘요즘애들 버릇없어’라는 곡이 있다. 퇴근길에 이 곡을 들으며, 그때의 앙팡테리블이 이젠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싶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성세대를 어떻게 보았는지 떠올리면, 지금의 젊은 세대와 또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가끔씩 심쿵하게 “나는 OO님을 좋아해요.”라고 직장에서 뜬금없이 고백하는(사랑 고백 아니다) 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대화 맥락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 격차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게 전제된 고백이다. 조용한 직장이다보니 핑거푸드라는 작은 과자나 쿠키, 빵, 초콜릿, 젤리 등의 소소한 선물도 받는다. 음료 쿠폰을 받기도 한다. 어떤 커피가 요새 맛이 좋다던데...라고 하면 그걸 기프티콘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내가 상급자나 출세의 보탬이 되는 직군이 아니기에, 그게 뇌물은 아니고 그냥 마음의 성의다. (물론 상부상조) 그럴 땐 문득 학창시절 에이스를 휴지로 포장해서 주거나 초코파이나 엽서를 건네고 가던 귀여운 후배들 생각이 난다.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살까 모르지만 사람 좋아하던 그 친구들이 사회적 생활의 상처를 덜 받고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는 삶이길 바란다.


윤종신 미성의 ‘요즘애들 버릇없어’를 듣는데, 우리는 어른을 사랑한다는 말이 문득 가끔 주변에 격의없이 대해주는 엠지가 하는 말만 같다. 노래가 90년대 곡인데, 90년대와 이천년대 태어난 직원이 하는 말처럼 다가온다. ^^

나이에 구속당하지 않기란 참 어렵지만... 내가 상대보다 나이가 너무 많다 하더라도 ‘꼰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대화 가능한 이로 살고 싶다. 이건 거꾸로 해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면밀히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나를 어리다 치부하지 않고,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 1:1 진심을 나누는 교류로 이어지면 멋있지 않을까.

삶은 곧 죽어도 멋이지.


https://youtu.be/bf1uelwGkXM?si=3aIqYJY6YGAbN4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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