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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Apr 19. 2021

우리 모두 여기에

봄밤에 떠오르는 밤샘 친구들

계절 타는 사들이 좋다. 계절 타는 이들이 모여

봄여름가을겨을 몇 해를 함께 보냈다.

노래를 짓는 이,

그림 그리는 이,

글쓰는 이,

학생, 직장인,

무규정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니었으나 우연히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친구로 모인

오묘한 친구들.

회사를 꾸려보자는 말도 나왔고

협동조합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엄밀히는 예술공동체를 꿈꿨던 것 같다.

각자 좀 른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언제라도

지친 이를 받아주는 어릴 적 동아리 같은 그룹을 그렸던가

싶다. 해체되던 순간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마음은 찰흙 같았고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보려

기금 공모만을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정기금이 생겼고 일이 불어났을

우린 아무것도 없이 부딪치던 그때의 설렘을

잃어버렸다.

소외 받는 이가 늘어났고

소외시킨 사람은 없는데 소외 당한 사람만 늘어난

서글픈 면이 속출했다.

상처 받은 이들의 공간.

은행에 가 통장을 깨고

돈을 나눠주고

모두 종료된 뒤 나는 몰래 많이 울었던 거 같다

여운과 그리움과 실패의 기억만 남 채

서로 헤어졌지만

늘 계절이 바뀌면 함께 있어 든든했던,

활자로나 존재했던 그런 환영의 공동체를

그래도 어느 시기 누렸단 사실이 감사하다.

마지막 낭독 콘서트, 마지막 계절 음악회를

열던 날 끝까지 그자리에 있던 건축학도 친구가 있었다.

서른의 나이. 결혼 후 세계여행을 떠나며

그때의 기억과 에너지로 결정할 수 있던 일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다른 가지치기 일을 도왔던 친구 래퍼는

해외로 건너가 국내 브랜드 떡볶이 지점의 사장님이 되었다.

역시 마지막까지 나의 미련에 동조해주며

길고 긴 이야기를 경청해주던 속깊친구는 한국학의

관련자가 되었고, 굳은 일을 마다않던 연극 친구는

티브이에 형사로 나오고 있었다.

다들 여전히 멋지다.

봄밤이면 늘 신촌에서 홍대에서 대학로에서

밤새 얘길 나누며

예술공동체, 수평적 팀조직을 함께 꿈꾸었던 그들.

우리가 갈라선 분기점과 지금의 위치의

좌표를 잡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모임마다 공연마다 행사마다 단체사진을 찍던

그때의 사진들과 함께. 사적인 역사로.

어느 때의 푸른하늘 노래

노래 한곡으로 글뭉치로 그때의 멤버들의,

지금 사는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미련이 많았던 내가, 뒤끝 그리움 심했던 내가

찾아다니며 친구들 얘기를

길게길게 듣고 싶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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