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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May 09. 2021

달리다 문득

떠오른 기억 기록

생활 체육의 사적 기록 1


90년대 말이었다. 세기 말. 헬스장처음 등록했다.

그즈음

불쑥 달리고 싶어서 새벽에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공원 내 닭 우는 꼬끼오 소리가 들리는 시간에

야외분수대를 지나 동물원을 끼고 돌아,

(동물원 초입에는 원숭이가 살았고

그 뒤로 기린 사슴 등이 포진했고

중간에 코끼리,

언덕 너머 뒤쪽으로 사자, 호랑이 등 맹수가 존재.)

식물원

뒤편에 있는 야외음악당에서

동네 주민들과 무료 에어로빅을 했다.

7시 전에 들어가면 공원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돼서

6시 대에 진입했다.

(물론 지금은 시간 관계없이 공원 입장 무료)


왕가위에 깊게 빠져있을 때이기도 했고,

중경삼림 금성무처럼 몸의 소금기를 빼고

새벽내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을 신나게 달렸던가.

작심삼일을 넘어섰고 뿌듯해할 시점,

새벽녘 조깅하러 가는 골목에서

보기 싫은 광경을 목도한다.

'바바리맨'

그 이후 새벽 운동을 멈췄다.

또 마주치기 싫었다.

좁은 골목에서 마주한 바바리맨은

기괴하니 충격적이었다.

그러다 실내 운동으로 종목을 바꾸어

대로변, 입구가 절대 으슥하지 않은

깨끗한 건물에 있던 헬스장에 등록했다.

그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알아봤는데

맘에 드는 곳이 있었지만

가격대비 고르느라 차선을 택했다.

처음에 끌렸던 곳은

레슬링 선수가 운영하던 헬스장이었다.

역발산.

상담하러 갔을 때 아저씨의 커다란 덩치와

굵직한 음성이 팀버튼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졌다.

테이블 뒤에서 지폐을 새어

현금이 주변에 보였던 듯다.

바구니째 돈을 주워담을 정도로

그곳이 잘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 판타지 헬스 클럽을 뒤로 하고

좀 마른 관장님이 하던 곳엘 갔다.

그분은 오전마다 플래카드를

대로변에 걸었다 떼었다 하셨다.

너무 매일, 어떤 땐 하루 두 번 가다

살짝 눈치가 보였던 것도 사실다.

줄곧 러닝머신밖엔 안 썼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공공시설이 생기면서 헬스장을 이동했다.

월수금은 수영, 화목토는 헬스를

할 수 있는 구립체육센터.... (다음에...)


P.S.

동물원 새벽 달리기가 떠오르자

문득 생각난 조지훈의 시.

나는 우울한 번뇌를 없애고자 달리며

동물원의 분위기를 쾌청하게 여겼으나

일제시대 올곧은 지훈님은

시를 자유로이 쓰지 못하는 울분을

동물원 풍경에 투영하셨다.

지금도 선명한 동물원 새벽 달리기의 기억.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은 날"이면

가끔 다시 동물원을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시간은 오후가 아닌, 새벽이어야 한다.

"이방의 짐승"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경계선에서 스타트!


동물원의 오후

조지훈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동물원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 오진 않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 앉아 시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어가며

정성스레 써서 모은 시집을 읽는다.


철책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보면

사방에서 창살 틈으로

이방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무인한 동물원의 오후 전도된 위치에

통곡과도 같은 낙조가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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