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김치를 담그지 못했다. 왼손 관절염이 찾아와 손을 많이 쓰기 힘들어졌고, 김장을 하는 것도 점점 귀찮아졌다고 할까.
10년 전 캐나다로 이민올 때,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이 김치였다. 친정 엄마는 "캐나다에 김치냉장고는 있니?" 라며 걱정하셨고, 시어머니는 직접 담가 먹으라며 갓 빻은 태양초 고춧가루를 챙겨주셨다. 한국에선 한 번도 김치를 직접 담가본 적이 없었다. 김장은 평생 주부로 살아온 어머니 세대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친정 엄마는 새우젓만 넣은 아주 심플한 김장을 하시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깔끔하고 좋다. 겨울이 오면 무의 시원한 맛에만 집중한 말간 동치미를 담그신다. 살얼음 동동 떠있는 동치미 한 그릇을 받아 들 때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시어머니께서는 수십 가지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를 담그셨다. 철마다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을 만드시는데 우리가 한 번씩 시댁에 갈 때마다 엄청난 양의 김치들을 싸주신다. 신혼 때는 시어머니께서 챙겨주신 파김치와 갓김치를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 먹다가 너무 시어져 군내가 나면 결국 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행동이었다.
그랬던 내가 캐나다로 이민 오면서 김치를 직접 담가 보겠다고 배추 씻는 채반, 김치통, 스테인리스 대야까지 챙겨 왔다. 작은 도시 리자이나에 도착해 그곳에 있는 한국마트에서 31 포기 배추 한 박스를 덜컥 사 왔다. 무모한 도전인 줄 알면서도 김치를 담가야 했다.
고춧가루는 한국에서 가져온 어머니표 국산, 액젓은 피시소스로 대신하고, 나머지는 한국마트에서 구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절이는 법을 익히고, 몇 번이나 배추를 뒤집고 눌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 절여진 배추를 깨끗이 씻어 채반에 올려놓고 물을 빼기 시작할 때 즈음에야 이제 겨우 절반은 해냈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엄마를 도와 김장을 할 때처럼, 배추 속을 넣고 동그랗게 말아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았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손으로 해낸 김장이 참 뿌듯했다. 문제는 김치냉장고도 없이 냉장고 절반을 김치통이 차지했었다는 점이었다. 그 후로는 힘들어서 한꺼번에 많이 하지 않고, 한두 포기씩 맛김치처럼 담가 먹었다.
어느새 김치를 담가 먹은 지도 10년이 되었다. 이제 나에겐 김장도 오래된 의식처럼 자리 잡았고, 필요할 때 배추 한 박스를 사다 남편과 함께 김치를 담는다. 냉장고에 가득 쌓인 김치통을 보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그러다 보니 정성 들여 담근 김치는 아까워서 김치찌개 같은 요리에 넣기가 매번 망설여진다. 대신 푹 익은 김치가 필요한 요리는 코스코에서 산 12불짜리 캐나다산 김치 한통을 사서 해결한다.
손이 아파 김치 담그는 걸 멈추면서, 우리 집 냉장고엔 종갓집 김치가 자리 잡았다. 한식에 꼭 김치가 없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고, 오이무침이나 파절임 등으로 충분히 김치를 대신할 수 있었다. 김치가 필요하면 마트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왜 그렇게 김치에 집착했을까?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나, 일본의 우메보시처럼, 김치도 이제 상점에서 사 먹는 시대인데. 한국에서는 김장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김치를 담그고, 김장이 끝나면 함께 먹을 수육을 삶아 먹는 것이 하나의 문화다. 집집마다 손맛과 재료가 다르니 김치 맛도 다르고, 서로 나눠먹는 정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에서 혼자 김치를 담그는 걸 전통을 잇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기엔 우습다. 늘 한식만 먹는 것도 아니어서 김치가 매 끼니마다 올라와야 하는 필수 반찬도 아니다. 간단히 김치를 사 먹는 것에 합의를 본 후 그저 편하고 좋았다.
글쓰기 모임 멤버들과 "김치"를 주제로 한 시간 정도 함께 글을 써 본 적이 있다. 각자 본인이 쓴 글을 읽어 주는데, 멤버 하나가 한국에 있는 친정 엄마 생각에 글을 읽다 말고 울컥하며 눈물을 보였다. 결국 다른 멤버들도 함께 눈물이 터져 버렸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 엄마를 빼놓고는 김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김치는 한국이고, 친정 엄마다...
나는 그동안 김치를 담그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김치 없이도 밥상이 차려졌고, 마트에서 사 먹는 김치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싸했던 이유는, 김치를 담그는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어쩌면 한국엄마로서 내 안에 깊이 자리한 익숙한 소명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손이 조금씩 나아지면 나도 모르게 배추 한 박스를 사러 가겠지. 부엌 바닥에 고춧가루 흘려가며 허리를 뻐근하게 세우고, 빨갛게 버무린 배춧잎을 또르르 말아 막내 입에 넣어주면 "어머니, 진짜 맛있어요!" 하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그 한마디에 피곤했던 몸이 사르르 녹겠지. 차곡차곡 쌓인 김치통을 쓰다듬으며, "이번에도 맛있게 익어라" 주문을 외우게 될 것이다.
그래... 나는 어차피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