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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27. 2022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다] #3

국밥을 먹으며

“오늘 엄청 춥대! 따뜻하게 입어!”


영하로 내려간다는 날씨 앱 알람을 보고 등원 준비하는 첫째에게 잔소리를 했다. 나도 내복을 받쳐 입고 롱 패딩을 걸쳤다. 첫째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장갑까지 챙겨서 등원 차량에 태워 보낸 뒤 서둘러서 둘째와 복지관에 갔다. 재활치료를 받고 나와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날이 추워서 뜨끈한 국물 생각이 절로 났다. 집 근처 콩나물 국밥 식당으로 향했다. 


주문을 하고 국밥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했다. 평소 팔로우 중인 ‘전국 장애인 부모연대’ 페이지에 새로운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과 활동보조 서비스를 확충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고 했다. 지도부는 어림잡아도 50대 후반~60대 정도로 보였는데 이 추운 날 밖에서 농성을, 그것도 끼니조차 챙겨 먹지 않고 하다가 건강이 상하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때마침 주문한 국밥이 나왔다. 선배들이 이 추위에 단식을 하는데, 나는 뜨거운 국밥을 먹겠다고 따뜻한 식당에 앉아있다니. 부끄러움에 잠시 망설였지만, 5분도 채 되지 않아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사진 올라프 CC BY

정신없이 한 그릇을 다 비운 후에야 자기 환멸이 밀려왔다. 나만 배부르고 등 따시겠다고 밥을 챙겨 먹었구나. 부모연대 임원들이 단식 농성으로 발달장애인 지원을 늘리면, 그 혜택은 내 아이와 우리 가족이 고스란히 받을 텐데. 죄스러운 마음에 다시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부모연대 게시물을 공유해서 퍼 날랐다. 링크를 복사해서 내가 속해 있는 단체 채팅방 여러 곳에 올렸다. 여기저기 퍼다 나르면 죄책감이 덜어지기라도 하는 듯, 추운 날 단식 농성 중인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달라고 호소했다. 일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변명도 덧붙였다. “제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에, 저는 온 힘을 쥐어짜서 아이 둘을 돌보는 중이라 시위에 참여하지는 못합니다.”라고.


코로나19가 터진 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발달장애인 사망 뉴스가 전해졌다. 코로나 시국에 복지관이나 센터가 문을 닫고 지원 프로그램이 취소되자 발달장애인 돌봄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되었다. 돌봄 부담과 생활고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 계속되자 생의 희망을 놓아버린 부모가, 남겨질 자식을 먼저 죽였다. 시설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사람들을 피해 야외로 나갔다가 실종되어 결국 주검으로 돌아온 발달장애인도 있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매일 재활치료실에 다니고, 종합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면서 애지중지 아이를 키워서 맞이할 미래가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전국 장애인 부모연대에서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발달장애인 정책 예산을 쟁취하기 위해 단식 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죽음은 안타까운 뉴스로만 소비될 뿐, 정부에서는 생활 실태 조사조차 한 적이 없다. 발달장애인 지원 서비스는 낮 동안 6시간만 지원될 뿐이기에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 발달장애인 가족은 생계와 일상을 포기하거나, 당사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시설에 맡기기를 선택한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는 만 6세가 되어야 받을 수 있기에 아직 세 살인 둘째의 치료는 전부 내가 도맡아서 다니고 있다. 전업 엄마로 둘째까지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다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둘째의 장애를 안 순간 일 욕심을 접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쓴 글을 모은 책 <오늘을 견디며, 사랑하며>에는 아이의 장애를 알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연이 여럿 나온다. 엄마라는 이유로 커리어도, 꿈도 포기하고 아이의 치료와 돌봄에 매달렸는데, 홀로 아이를 책임지는 나날이 영원히 이어질 거라 생각하면 누가 견딜 수 있을까.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쓴 책 <오늘을 견디며, 사랑하며>

발달장애 국가 책임제를 도입하라고 선배 양육자들이 싸우는 동안, 나는 불편한 마음을 안고 일상을 살았다. 매일 아침 둘째를 데리고 재활치료실에 가고, 첫째 등·하원을 하고, 밥을 차리고 살림을 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먹고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난방을 틀고 솜이불을 덮은 채 잠을 잤다. 그러면서 평소보다 더 자주 추위에 대해 생각했다. 치료실을 오가며 끼니가 늦어질 때면 배고픔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를 안느라 허리가 아플 때면 건강에 대해, 피곤이 가시질 않을 때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했다. 추운 겨울날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는 나이 든 선배 부모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냈다. 


다행히 국회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 시간을 8시간으로 늘려서 부모연대의 단식 농성은 9일 만에 막을 내렸다. 비록 예산 확보와 24시간 활동 지원은 좌절되었지만 “이렇게 한 걸음 더 가까이, 24시간 지원체계로” 가면 된다고 부모연대에서는 보고대회를 진행했다. 나는 투쟁 결과보다 선배 부모들이 단식 농성을 멈췄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이러다 누구 하나 잘못되면 어떡하나, 매일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었다. 그리고 요구가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좌절하기보다 이렇게 조금씩 바꿔 나가면 된다고 말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장애 아이와 함께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낙관적일 수 있는지 놀랍기도 했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평소처럼 복지관을 찾았다. 성인이 된 자녀를 데리고 복지관에 온 노년의 양육자들을 보며 20년 이후 내 미래를 그려봤다. 그때도 지금처럼 차를 몰고 복지관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할까?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는지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할까? 그 사이에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가 자리 잡아서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사회 구성원으로 몫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이 든 부모가 차가운 길바닥에서 밥을 굶지 않아도 되면 더욱 좋겠다.                   


작성자: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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