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Feb 27. 2022

[그때 그 노래] #3

고개 들고 있어 Hold your head up

최악의 순간 vs. 최대의 성공작


일자리를 잃었다. 뮤지션으로 성공하겠다는 꿈 하나로 단칸방을 전전하며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 형편은 나아지기는커녕 경제적으로 최악인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 같이 일하고 생활을 공유하던 동료이자 연인과도 크게 싸우고 결국은 헤어지기로 했다. 


여자는 방바닥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누웠다. 비참함과 깊은 우울. 절망적이고, 모든 게 허무하다(hopeless and nihilistic). 우리 꼴 좀 봐. 이보다 더 나빠질 수가 있을까? 그냥 꿈나라에서 살았나 봐. 절대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이나 꾸면서.  


그런데 헤어지기로 한 남자가 뭘 뚱땅거리고 친다. 처음에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여자는 계속 반복되는 그 리듬에 몸을 일으켜 다가간다. 


“뭐야, 그건, 대체?”


여자는 문득 절망을 떨쳐내고, 남자가 만들어낸 리듬에 더해 신시사이저의 건반을 두드리며 즉흥적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 노래하기 시작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MFqkcPYcg

그 이름도 독특한 듀오 밴드 유리스믹스(Eurythmics)가 터뜨린 히트작 ‘Sweet Dreams’의 탄생 비화는 대략 이러하다. 애니 레녹스(Annie Lennox)와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가 같이 몸담고 있던 밴드 투어리스트(The Tourist)가 해체되고, 음악 동료이자 연인 사이였던 두 사람은 큰 다툼 끝에 헤어지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때 어찌어찌 같이 만든 노래가 유리스믹스의 최대 히트작이 된 것은 물론, 8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가장 비참한 순간에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탄생했다니, 인생이란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이 노래 자체에도 역설적이고 대조적인 요소들이 많다. 시작부터 ‘쿵 차차 쿵쿵 차차, 쿵 차자 쿵쿵 차차’ 하는 힘 있고 흥겨운 리듬감이 두드러지지만, 정작 멜로디는 흥겹다기보다는 낯설고 불길하게까지 느껴진다. 그 멜로디를 애니 레녹스(Annie Lennox)의 카리스마 있고 중성적이면서 특이한 목소리가 완벽히 소화한다.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설사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내용이라 해도 그냥 설득될 것 같은 묘한 목소리다. 그다지 달콤하지는 않은, 심상찮은 분위기의 이 노래에 붙은 제목은 ‘Sweet Dreams.’ 말 그대로 ‘달콤한 꿈’, 즉 ‘좋은 꿈’이란 뜻이다. 잠자리에 드는 사람에게 “좋은 꿈 꿔(잘 자).”라고 인사하고 싶다면 “Sweet dreams.” 한마디로 해결된다. 


달콤한 제목과 음산하게도 느껴지는 분위기.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흥겨운 리듬과 별로 명랑하지 않은 멜로디. 차림새부터가 전형적인 여성 싱어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보컬. 확신에 찬 목소리가 설파하는, 문장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의미를 계속 곱씹게 만드는 가사.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귀를 잡아끈다. 그래서 계속 듣게 된다. 이 노래의 ‘중독성’ 때문이다. 


꿈의 세계, 초현실   

사진 Sweet Dreams 뮤비 캡처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더욱 심상치 않다. ‘쿵’ 하는 노래의 첫 박자에 맞춰 힘 있게 주먹을 쥐는 손. 그리고 검은 슈트 차림에 머리를 짧게 치켜 자른 애니 레녹스가 브리핑이라도 하듯 지시봉으로 가끔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노래를 한다. 비디오 속 TV 화면에는 달로 향하는 듯한 우주선과 그 안의 우주비행사들, 그리고 뒤이어 어딘가로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나온다. 맞은편에는 뭔가를 끊임없이, 건반 두드리듯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는 데이브가 있다. 


두 사람이 명상하듯 나란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때 카메라는 애니 레녹스의 이마 한가운데, 양미간 사이에 그려진 붉은 점 속으로 들어간다. 이 점은 ‘인당’ 또는 ‘6 차크라’라고 부르는 혈 자리로, ‘제3의 눈’이라고도 하며 직관력, 지혜와 관련이 있다. 목표물을 찾는 총구처럼 움직이던 그 점에는 과녁이 그려지고, 과녁은 배를 타고 있는 두 가수의 모습을 조준한다. 


그러다 서양 고전 시대의 가발과 가면을 쓴 두 사람의 얼굴, 그리고 소의 머리가 교차해 나온다. 이윽고 꿈속 세상인 듯, 두 사람은 풀밭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악기를 들고 춤추듯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그 옆을 생뚱맞게도 소 한 마리가 어슬렁대며 지나간다. 다시, 두 사람은 검은 테이블 위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누워 눈을 감고 있다. 이때도 소 한 마리가 그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타이핑을 하는 데이브와 노래하는 애니 뒤로 벽을 가득 메운 스크린에 소 여러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이 잡힌다. 나중에는 그 스크린 속으로 두 사람이 들어가 소와 함께 걷는다. 

사진 Sweet Dreams 뮤비 캡처

꿈속 세상처럼 어딘가 엉뚱해서 웃기기도 하는데 상징으로 가득하며 심오한 것도 같은, 그래서 굉장히 강한 인상을 주는 비디오이다. 여기서 ‘소’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면서, 이쯤 해서 노래의 가사를 잠깐 살펴보자. 


수없이 다른 인생, 각자 다른 꿈을 찾아서


좋은 꿈이란 이런 걸로 만들어지는 거야
내가 뭐라고 그렇지 않다고 하겠어?
난 전 세계와 7 대양을 여행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찾아다니고 있더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당신을 이용하고 싶어 해
어떤 이들은 당신에게 이용당하고 싶어 하고
어떤 이들은 당신을 학대하고 싶어 하지
어떤 이들은 당신에게 학대받고 싶어 해


먼저 두 번째 줄의 가사에 주목해 보자. 


내가 뭐라고 그렇지 않다고 하겠어?(Who am I to disagree?) 


이 문장을 엉뚱하게 해석해 놓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심지어 ‘나는 누구에게 반대해야 하나?’ 등등. 


‘Who am I to ~?’는 ‘내가 누구라고/뭐라고 ~하겠어?’, 즉 ‘나는 to 이하를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내가 누구/뭐라고 그렇지 않다고 하겠어?’라는 뜻. 즉 ‘좋은 꿈이 이런 걸로 만들어진다(Sweet dreams are made of this)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는 말이다. 그럼, 좋은 꿈을 만드는 ‘이런 것, 이것(this)’은 대체 뭘까? 


비디오 첫머리에 등장하는 길거리의 군중이 암시하듯, 이 넓은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산다. ‘전 세계와 7 대양을 여행했다(I traveled the world and the seven seas)’ 부분을 두고 세계에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 등 5대양이 있는데 왜 7 대양이라고 했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천국과 지옥을 더해서 7 대양이라고 한 것이다!’라는 억측도 있던데, 그건 좀 과한 해석인 듯하다. 그냥 대서양과 태평양을 각각 남, 북으로 나누면 7 대양이 된다. 


어쨌든 노래의 주인공이 육지고 바다고 할 것 없이 이 넓은 세상을 두루 돌아다녀 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끝없이 원하는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 각각의 사람들이 매일 밤 꿈을 꾼다. 아무리 24시간 같이 붙어 지내는 사이라도 잠들어 꿈을 꿀 때는 철저히 각자의 영역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 같은 꿈을 동시에 꿀 수도 없다. 자신의 인생을 남이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지금 괴롭든 아프든 즐겁든 계속 살아간다. 생각하고 찾고 추구하면서. 그러면서 때로는 남을 이용하고(use), 이용당하기도 하고(get used by~), 비정상적인 이용, 즉 학대와 남용을 하고(abuse) 받기도(be abused) 한다. 


‘Sweet Dreams’는 좁게는 밤에 꾸는 꿈을 말하지만,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살벌한 현실을 딛고 계속 인생을 살아가도록,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원동력과 희망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Sweet Dreams’를 이루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고, 다르다.  


고개 들고 살아


여기까지는 중독성과 함께 우울감이 느껴지는 멜로디가 이어지다가, 돌연 뭔가 치고 올라가는 듯한 멜로디가 후렴으로 등장한다. 


고개 들고 있어, 계속 들고 있어,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말이야 

(Hold your head up, keep your head up, movin' on)


hold는 무엇을 어떤 상태로 계속 붙들어 두고 있는 것이고, keep도 비슷하게, 어떤 일을 계속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Hold your head up. Keep your head up.’이라고 하면 고개를 계속 들고 있어라, 고개를 쳐들고 살라는 뜻이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라(Move on.)고 응원한다. 바로 이 노래의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팬인 데이브의 아이디어였다. 비디오를 통해 음악 산업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기도 했고, 기이하면서도 꿈결 같은 퍼포먼스 아트 같은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음반 회사의 임원실 같은 공간을 꾸미고, 거기에 소를 집어넣었던 것. 실제로 두 사람이 명상하는 장소는 벽에 음반 액자가 걸린 사무실 느낌이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누워 꿈을 꾸는 두 사람 주변을 소가 어슬렁거린다. 여기저기 오줌을 싸면서 말이다. 그렇다. 데이브는 소가 ‘현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애니는 이 장면을 촬영한 것 자체가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고 하며, 이 비디오는 ‘존재의 다른 형태’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음악계에서 성공하고 성취하고픈 꿈을 품고 사는 자신들 같은 존재도 있고, 또, 소라는 존재도 있다는 것. 


한정된 정답은 없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이해할지는 오직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완전히 자유롭게, 즐길 뿐.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