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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27. 2022

[맨발로 쓰는 애도일기] #4

아빠가 가려던 곳

“아버님 그날 가시려던 곳. 어디였는지 발견했어.”


아빠의 마지막 옷을 수습해서 집으로 가져갔던 남편이, 주머니에서 발견했다며 꼬깃꼬깃한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 뒷면에는 원주 치악산과 운악산에 가는 방법이 적혀있었다. 원주 치악산은 출발지가 터미널, 운악산은 청량리역 환승센터였다. 아빠는 운악산에 가는 길이었구나. 


나는 그저 아빠가 자주 가던 산이 관악산과 북한산이었으니, 그날도 북한산에 가는 길이었으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악산과 북한산은 저녁에 우리 집에 와달라고 내가 부탁하는 날 오전에 다녀오는 곳이었다. 그날은 내가 늦게라도 와달라고 부탁한 날이 아니었다. 아빠는 평소보다 더 멀리 가보려고 했을 것이다.


아빠가 어딜 가려고 했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 검색해보니 운악산 현등사에 가는 1330-44번 버스가 청량리역 환승센터에 있었다. 아빠가 적어놓은 첫차 07:05. 이 첫 차를 타려면 대체 몇 시에 집에서 나선 걸까. 해도 뜨기 전 어둑어둑한 새벽 5시경 아빠는 등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을 것이다. 아빠는 이 첫 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고 첫 차가 도착하기 1분 전 환승센터에서 쓰러졌다.


아빠가 쓰러졌던 청량리역 환승센터에, 아빠가 그날 가려고 했던 운악산에,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아빠가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부터 카메라를 챙겨 나선 그 길을, 가다가 영영 틀어져버린 그 길을.

청량리역사 (사진 Corcega1031 CC BY)

언니의 출국 전 날. 2월 17일 우리는 단단히 무장을 했다. 하필이면, 우리가 운악산을 가기로 약속해 놓은 전 날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날씨도 올 겨울 날씨 중 체감상 가장 추웠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발가락이 금방이라도 오도독 부러질 것처럼 얼어붙었다. 


“산에 갈 수 있을까?”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청량리 환승센터로 갈 때까지, 우리는 수도 없이 이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수도 없이 생각했다. 내가 그날 아빠 보고 아이들을 보러 와달라고 부탁했다면, 주말에 있었던 식사 약속을 금요일 점심으로 당겨서 하자고 했더라면. 내가 무언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아빠가 그 새벽부터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아빠가 쓰러졌을 때 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심폐소생술을 해 주지 않았을까. 누군가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아빠가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청량리 역에 내렸을 때, 나는 내가 청량리역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보았다는 걸 알았다. 청량리역은 차가 많아 복잡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분주한 길 언저리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도 있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포장마차와 그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다니던 노년의 어르신들. 날씨만큼이나 얼어붙은 그곳의 풍경은 나를 쉬이 체념하게 만들었다.


“언니, 와 보니 알겠어. 애초에 여기에 심폐소생술 같은 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거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어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충분히 고마워했어야 하는 곳이라는 걸 알았어.”


우리는 아빠가 cctv에 찍혔던 그 자리에 섰다. 신호등 조금 위 쪽. 멀리 환승센터의 지붕 처마 끝에 카메라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저어기, 저 카메라일 거야. 아빠가 여기 서 있다가 앞으로 쓰러지셨어. 차도 쪽으로. 그래서 달리던 버스가 급하게 옆으로 방향을 틀었고.” 


환승센터에는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꽤 있었다. 다행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쓰러지셔서.


아빠의 명함 뒤에 적혀있던 현등사행 1330-44 버스는 노선이 꼬불꼬불 길었다. 가평 운악산으로 가기까지 남양주, 마석, 대성리와 청평도 들렀다. 현등사까지 두 시간은 걸리겠는데? 해 지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까. 날씨도 이렇게 추운데? 우리 둘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이미 발가락들은 감각을 잃어 버석거리고 있었다.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도 가자.”  

“그래. 가자.”


꾸벅꾸벅 이리저리 얼굴을 부딪치며 졸다, 종점에 도착했다. 운악산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초록색 아치가 다리 끝에 걸려있었다. 산은 온통 흰 눈이었다. 산 입구 식당에서 더덕구이 정식을 푸짐하게 먹고 등반을 시작했다. 등산화도 장비도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현등사까지만 갈 생각이었다.

사진 지녕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겨울용 운동화를 신고 나왔는데, 눈이 덕지덕지 신발 바깥에 붙어 금방 얼어붙을 참이었다. 언니는 호주에서 산 지 10년이라, 눈 쌓인 산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지 모른다며 신나 했다. 발을 쭉쭉 밀며 눈 쌓인 산을 성큼성큼 올랐다.


따끔따끔하게 감각을 잃어가던 발가락은 어느새 온기를 되찾고 있었다. 사람이 전혀 지나간 기색이 없는 넓은 공터에 이르자 언니는 뒤로 벌러덩 누웠다. 


“팔다리 위아래로 휘휘 저어봐! 몸이 눈 속에 푹 잠겨!”

“진짜 그러네?”

“아부지 덕분에 설산도 등반하네. 이런 경험을 우리가 언제 또 하겠어.”

“언니는 아빠랑 산에 간 기억 없어?”

“난 그닥 없지.”

“난 같이 관악산도 가고 북한산도 간 적 있는데. 그리고 이렇게 눈이 하얗게 내리던 날 광교산에 같이 갔던 적이 있는데. 아빠가 저만치 걸어가는 그 뒷모습이 괜히 아련하고 좋아서. '이 순간을 꼭 기억해야지' 하고는 사진 찍어 놓듯 내 머릿속에 저장했던 때가 있었어. 10년도 더 전인데 아직도 그 뒷모습과 눈 쌓인 풍경은 생생하게 기억나.”

“그런 적이 있었어?”

“응. 오늘 우리도 오래오래 기억나겠지.”

“그렇겠지.”


현등사는 아담하고 작은 절이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백팔 계단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가 거기 있었다. 사자바위를 보고 가지 않겠냐며 눈길에 푹푹 빠지면서도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몸이 바짝 마른 스님이 거기 있었고. 내렸다 멈췄다 반복하며 우리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굵은 눈송이들이 그날 있었다. 해가 질 것 같으니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하는 나와 ’해 지면 핸드폰 불 켜고 내려가면 되지!’ 라며 배포 좋게 늦장을 부리는 언니와. 그리고 함께 왔다면 참 좋았을 아빠. 넘어지는 언니를 바라보며 "거봐라. 아이젠도 없이 눈 잔뜩 쌓인 산 내려가면 안 넘어지고 배기냐?"라고 말하며 낄낄 웃을 것만 같은 아빠가 그날 우리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

사진 지녕

작성자: 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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