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Feb 27. 2022

[그때 그 노래] #6

이제 거짓말은 제발 닥쳐! - Eye in the Sky

네 속이 훤히 보여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까? 역으로, 누군가가 내 실체는 물론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고 있음을 알게 되면 느낌이 어떨까?


1982년에 발표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노래 ‘Eye in the Sky’ 속 주인공은 상대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거짓말을 일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면서 수없이 만회할 기회를 준 그는, 이제 더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상대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6hqrlQxMMI

Eye in the Sky by Alan Parsons Project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내뱉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Don’t think sorry’s easily said)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고도 하지 마(Don’t try turning tables instead)
너에게 이미 많은 기회를 주었어(You’ve taken lots of chances before)
하지만 이제 더는 없어(But I’m not gonna give anymore)
나한테 따지지 마(Don’t ask me)
세상사 원래 다 그런 거야(That’s how it goes)
난 이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 알거든(Cause part of me knows what you’re thinkin’)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양심을 쿵쿵 두드리는 듯한 전주가 지나가면, 곧바로 보컬인 에릭 울프슨(Eric Norman Woolfson)의 무심한 목소리가 이렇게 무정한 경고를 던진다.


둘째 줄의 ‘turn the tables’는 서양의 백개먼(Backgammon: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에 따라 말을 움직이는 게임) 또는 체스 등의 보드게임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게임을 하다가 게임판이 놓여 있던 테이블을 돌리면 판의 위치가 정반대로 바뀐다. 즉 지고 있던 사람이 이기고 있던 사람의 위치에 오게 되니 ‘판을 바꾸다, 형세를 역전시키다’라는 의미가 된 것이다.


마지막 줄의 ‘part of me knows~’는 우리말과는 다른 영어 표현법의 특징 일면을 보여준다. ‘나의 일부분은 ~을 안다’가 아니라 ‘나는 ~을 조금 안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나중에 후회할 말은 하지 마(Don’t say words you’re gonna regret)

흥분하지도 마(Don’t let the fire rush to your head)

그런 비난은 전에도 들었지(I’ve heard the accusation before)

이제 더는 듣지 않을 거야(And I ain’t gonna take any more)

정말이야(Believe me)

네 눈 속에서 빛나는 태양 때문에(The sun in your eyes)

어떤 거짓말은 좀 믿을 만했던 거야(Made some of the lies worth believing)


상대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진정성 없는 사과를 영혼 없이 내뱉는가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비난을 퍼붓기도 하면서 상황을 돌이켜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면 통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 소용없다.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건조한 어조로 할 말만 하는 주인공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이렇게 차가워진 주인공도 한때는 상대의 눈에서 태양처럼 반짝이는 빛을 보았었다. 그렇게 눈을 빛내며 하는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고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담고 있을 거라고, 좀 더 기다리면 거짓보다는 진실을 더 많이 얘기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까?


‘have the sun in someone’s eyes’ 또는 ‘the sun is in someone’s eyes’라고 하면 ‘햇빛이 ~의 눈에 직접 비치다(그래서 눈이 부시다)’라는 의미인데, ‘The sun in your eyes made some of the lies worth believing’이라는 이 가사는 그냥 단어 그대로 해석해도 어울린다.


가령, 이런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햇살 아래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다. 햇빛이 상대의 눈에 비쳐 눈부시게 빛난다. 자신을 바라보며 반짝반짝 빛나는 상대방의 눈동자 자체가 태양 같다. 그런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 노래를 듣는 이의 마음이 조금 아파지려 한다.

나는 하늘에 떠 있는 눈이야(I am the eye in the sky)

널 보고 있지(Looking at you)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지(I can read your mind)

나는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야(I am the maker of rules)

바보들을 상대하지(Dealing with fools)

널 감쪽같이 속여 넘길 수도 있어(I can cheat you blind)

이젠 보지 않고도(And I don’t need to see any more to know that)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지(I can read your mind, I can read your mind) 


그런데 뒤에 이어 나오는 후렴의 노랫말은 1, 2절에 비해 더욱 가차 없어진다. 마음 단단히 먹고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신과도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를 연상케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눈’이고 ‘규칙을 만들고 바보들을 상대’하며 ‘보지 않고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니, 신이 아니고서야 그게 가능할까?

그래서 이 노래의 주인공과 상대방은 도대체 누구며 어떤 관계냐에 대해 늘 해석과 의견이 분분했다. 거짓말을 일삼으며 자신을 속이던 연인의 실체를 확실히 깨닫고 결별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에게 던지는 말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게 아니고 끊임없이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독재 정부를 그린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노래다, 등등. 


늘, 지켜보고 있다


노래 제목이면서 후렴에 등장하여 노래의 중심 이미지를 잡아주는 단어, ‘eye in the sky.’ 이것은 인공위성이나 항공기의 공중 전자 감시 장치, 또는 감시카메라를 의미하는데, 헬기를 타고 교통량을 체크하는 교통방송 리포터를 뜻할 때도 있다.


이 노래를 만든 에릭 울프슨은 한동안 카지노 천장에서 모든 게임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녹화하는 감시카메라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정말 <1984>에서처럼 언제 어디서나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결정적으로, 에릭은 ‘eye in the sky’라는 단어를 하루에 세 번이나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먼저 친구가 자신이 근무하는 카지노에서 감시카메라를 보여주었고, 그다음에는 에릭이 묵던 호텔 방에서 뉴스를 듣는데 인공위성 감시 장치에 관한 소식이 나왔고, 누군가 1달러짜리 지폐 뒷면의 피라미드 그림 꼭대기에 하늘의 눈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 눈이 무얼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도 의견과 각종 음모론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하느님의 눈’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eye in the sky’란 말은 이날 그의 머릿속에 확실히 남아서 이 노래의 제목이 되었다.

거짓 환상을 남기지 마(Don’t leave false illusions behind)

울지도 마, 난 마음을 바꾸지 않아(Don’t cry, I ain’t changing my mind)

그러니 전처럼 다른 바보를 찾아보지 그래(So find another fool like before)

난 이제 네가 날 속이는 게 뻔한데도 그 거짓말을 믿으며 살진 않을 테니까(Cause I ain’t gonna live anymore believing / Some of the lies while all of the signs are deceiving) 


3절에 이르면 주인공의 ‘인간다운’ 면모가 다시 조금 살아난다. 상대방은 급기야 눈물까지 보이지만, 주인공은 그 뻔한 거짓말에 번번이 속았던 자신이 바보였음을 확실히 알았다. 그런 바보는 이제 다른 데 가서 찾아보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외친다.


물론, 사람은 성능 좋은 감시카메라도, 무정하고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기에 모르고도 속고 알면서도 속고, 속상해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명확하고 냉정하게 끝장을 보는 것 같은 이 노래 주인공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누구를 속이려고?!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 때문인지, ‘애증으로 얽혔던 관계를 정리하는 연인들’에 관한 노래로 느껴졌던 이 노래가 요즘에는 왠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감시카메라는커녕 전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없던 시절부터 ‘세상 사람들 다 몰라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고사성어처럼 상식과 양심에 비추어 살아왔다. 뻔뻔한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꾼’을 볼 때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빌어 호통을 쳐주고 싶다.


“국민은 하늘에 떠 있는 눈이야. 널 늘 지켜보고 있지. 그 시커먼 속이 훤히 보인다. 규칙을 만드는 건 바로 국민이야. 그러니 거짓말은 그만 닥쳐!”


하지만 과연 그 호통이 강력한 죽비가 되어 그의 뒤통수를 후려칠 날이 오기는 할까.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 세 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