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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27. 2022

[고구마 세 개] #1

홀로 살이 청소년들의 슬기로운 부모 이름 저장법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있습니다. 길이 곧 집이요, 학교요, 놀이터인 청춘들입니다. 길 위 그저 허술했던 천막 아래에서 만난 인연들이라 오다가다 또 만나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연말에서 연초로 넘어가는 때는 이른바 졸업 시즌입니다. 오다가다 더 자주 이이들을 만날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오다가다 한 무리의 ‘길동이’들과 조우했습니다.


“쌤, 밥 사줘요! 오늘 순구 졸업했어요.”

“맞아요, 맞아! 졸업하면 짜장면하고 탕수육 사준다고 했잖아요.”


길동이들은 마치 식권이라도 몇 장 주웠다는 듯이 더 왁자지껄해져서 식당 문을 서슴없이 열고 들어갑니다. 짬뽕에 오징어나 낙지를 올려주고 육칠천 원씩을 더 받는 중식당입니다. 남자 넷, 여자 셋. 정작 졸업 당사자는 한 명뿐인데 서로 축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폼이 전부 다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은 것처럼 보이는 풍경입니다.


“야들아, 짜장면하고 탕수육만이다.”

“에이 여기 짬뽕 맛집인데, 오늘은 짬뽕으로 하시죠.”

“저 졸업하면 삼겹살에 소주 쏜다고 했는데 특별히 짬뽕으로 봐드릴게요. 대신 낙지는 추가 안 할게요.”


결국 주인장에게 오징어 짬뽕 일곱 그릇과 탕수육 대짜, 짜장면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이이들은 모두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의 돌봄으로부터 멀어져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홀로 살아온 공통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이 맞아서 서로 어울려서 먹고 놀고 자고 하는 인연들입니다. 평소라면 해는 떨어져야 밖으로 나와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졸업생이 있어서 모두들 점심시간에 맞추어 나온 듯합니다.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 이름은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부터 해보자'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요란한 재난 경보음이 울립니다. 한파주의보라도 왔나 하는데 곁에 있던 남수가 무심히 전화를 받습니다.


“밥 먹는 중인데 다시 전화할게요.”


남수는 남도 끝에 있는 어느 섬에서 혼자 올라와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기계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돕는 어머니를 둔 까닭에 어려서는 남도 섬에 사는 외할머니와 지내다가 아버지의 고향으로 전학을 온 친구입니다. 그런데 졸업을 딱 두 달 남겨두고 출석일수 미달로 퇴학처분을 받아서 졸업식에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야 알바를 하느라 늦게 잠들어서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하는 날이 많아 지각이 잦았고, 지각 3회는 결석 1회라는 교칙 덕분에 결국 출석 미달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남수의 무사 졸업을 위해 매일 아침 기상 알람 전화를 해주고, 정히 급할 때는 밥차로 몇 번 등교를 시켜주기도 했는데 그만 무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든 졸업 좀 시켜보려고 학교 관계자를 찾아가 보기도 했는데, ‘교칙은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말 끝에 그냥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속이 있는지 없는지, 저는 퇴학 맞아서 졸업도 못하면서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순구의 졸업을 축하해준다고 나온 걸 보면 그런대로 마음 씀씀이가 괜찮아 보이기도 합니다.


“재난경보 아니었니?”

“엄만데요.”


다들 킥킥거리면서 눈을 마주칩니다. 다 알 만한 상황인 듯합니다.


“뭐야? 엄마 전화가 재난경보라는겨?”
“그건 아니지만, 일단 경계는 해야 돼요. 오늘 또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거든요. 엄마도 오늘이 졸업식이라는 걸 아는데 뻔하죠 뭐.”

문득 다른 이들은 부모님 전화번호를 어떻게 설정해 저장해 놓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전 수정이요”

“수정?”

“그 여자 이름이에요.”


어려서부터 보호시설을 돌며 살다가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바람에 시설에서도 중도 퇴소해서 2년째 또래살이를 하고 있는 연서입니다.


“저한테는 그냥 수정 씨일 뿐이에요.”


제 엄마를 아무개 씨로만 부르는 저 마음에 얼마나 시린 것들이 들어있을까 하다가 그보다 더한 별칭으로 저장한 경우도 많다는 말에 그나마 고마운 일인가 싶어 집니다. 이이들이 아는 다른 친구들이 저장했다는 부모 이름으로는 ‘미친년’, ‘술 먹은 개’, ‘양아치’, ‘외계인’ ‘왜 또’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난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부터 해보자'인데요.”


휴대폰에 저장할 가족과 부모의 존재도 없다는 것


일행 중 유일한 성년, 작년에 빛나는 졸업장을 획득한 스물한 살 도훈이입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진작부터 일행을 힐끔거리던 다른 테이블에서 일제히 시선이 날아와 박힙니다.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한다는 건 엄마가 학교나 경찰서에서 무슨 연락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잘못한 게 뭔가를 미리 알아서 말을 해야 욕을 덜 먹거든요. 한번 전화하면 말이 길어져서 일단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야 통화가 끝나요”

“나름 슬기로운 엄마 이름 저장법이네. 그래도 설마 그런 일로만 전화를 하실까?”

“진짜예요. 우리 엄마는 전화 거의 안 해요. 뭔 일을 하고 다녀도 좋은데 ‘학교는 졸업해라, 경찰서 가면 죽는다’가 전화에 대고 하는 말 전부예요.”


이때까지 별말 없이 애꿎은 단무지만 뒤적거리고 있던 민정이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 아, 쌤! 저 엄마 없는 거 아시잖아요.”


민정은 두 살인가에 떠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이름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지난여름에 한 적이 있었는데, 그만 그걸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휴대폰에 저장할 가족과 부모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또 얼마만 한 상실일까, 쉬이 가늠도 되지 않는 부모 빠진 졸업 회식이었습니다.


이이들과의 가느다란 인연을 만들어준 청소년 심야식당 '개구리 밥차’는 2020년 2월 이후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5년 동안 원주 시내 길 위에서 일주일에 두 번 천막을 치고 운영했었는데, 이래저래 그렇게 되었습니다. 애초에도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은 인연들이었는데, 코로나 19 방역책으로 사회적 거리를 더 두라 하니, 그 뒤로는 아예 연락도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몇몇은 도시락을 전달하면서 가끔씩이라도 만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어떻게 지내는지 형편을 알아보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지난 2년, 이이들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드문드문 지켜보면서 ‘고구마 세 개’를 동치미 국물 한 모금 없이 한꺼번에 먹은 것처럼 막막하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고구마 먹은 속이야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뚫리겠지만, 이 청춘들이 받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하루하루는 도무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가슴이 더 퍽퍽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오늘도 엄연히 이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내일도 여전히 함께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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