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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r 24. 2022

[꼭 뭐가 되어야 할까?] #7

취미: 스트레스와 과욕 사이


선배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적이 있다. 기업체 홍보물을 기획해서 만드는 회사였는데, 그 홍보물에 필요한 이런저런 글과 광고 카피를 쓰는 것이 내가 맡은 업무였다. 프리랜서라 그 회사 일 이외의 다른 일도 간간이 맡아하던 그즈음, 한참 바쁘게 일이 돌아갈 땐 거의 매일같이 원고를 쓰고 마감해야 했다.


마침 출판사에서 의뢰받은 단행본 원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와 선배 회사의 일은 조금 줄여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선배는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내게 맡기려 했다. 까다로운 광고주의 일이라 어쩔 수 없다나 뭐라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만큼 나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려니와 일을 한 만큼 보수를 받는 프리랜서로서는 닥치고 감사할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200자 원고지 1천 매에 달하는 원고 마감이 코앞이라 이 달엔 평소만큼의 일을 하는 것도 벅차다고 난생처음 앓는 소리를 해 보았다. 그러자 선배는 말했다.


“넌 빨리 잘 쓰잖아!”

“……”


나는 아직도 글을 쓰는 게 어렵고 힘들다


생업으로 글을 쓴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첫 반응은 “오! 그럼 글 엄청 잘 쓰시겠네요?”다.

글쎄 솔직히 엄청 잘 쓰는지 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상업적으로, 일정 비용을 받고 의뢰받은 글을 쓰는 입장이니 아주 못 쓰지는 않을 테지만 이런 반응 앞에서는 매번 몹시 난처하다. 그래서 프로 축구 선수에게 “오! 그럼 축구 엄청 잘하시겠네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프로 축구 선수라고 해서 축구가 식은 죽 먹듯 쉬운 일이라거나 공을 차는 족족 골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러니 내 말은, 나 역시 글쓰기가 그저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쓰는 게 어렵고 힘들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백지를 채우는 일이다. 그것도 오롯이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정리해 자기만의 단어를 고르고 배열해 채워나가는 것!


가끔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고-사실 그 노트북을 열기까지가 제일 힘들다- 텅 빈 새 문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망망대해에 나 홀로 동동 떠 있는 것 같은 막막한 기분마저 든다. 그 막막함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해버리고 싶은 유혹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정말 정수리 끝까지 물이 차오르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나를 끌고 간다.

그 상태에서도 나는 잠시 생각한다. 이참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꼬르륵 가라앉아 버릴 것인가, 아득히 멀고 먼 육지를 향해 헤엄이라도 한번 쳐볼 것인가. 그러다가 정말 숨이 차서 더는 어쩔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주 힘겹게 한쪽 팔을 들어 올리고 내 젖는다. 그러면 탁, 하며 독수리 타법을 간신히 면한 내 검지나 중지가 키보드 어딘가에 닿는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은 시간과 그 시간을 견디는 묵직한 엉덩이가 해결해 준다.


잘하는 일을 할 때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


매번 가라앉지 않고 헤엄을 쳐보자 마음 다잡게 하는 동력은 나를 믿고 글을 의뢰한 사람들과의 약속과 신의였다,라고 말하니 꽤나 멋져 보인다. 하지만 그 힘은 사실 계약서에서 나온다.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없는 한 출판 가능한 상태의 완전 원고 납기 의무를 불이행하였을 시에는 계약금의 몇 배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매우 의례적인 척, 무심한 척 쓰여있는 그 한 줄이 매번 나의 침몰을 막았다. 그래서 정말 정말 쓰기 싫을 때, 너무너무 안 써질 때는 계약서를 꺼내 한번 큰 소리로 읽어본다. 참으로 구차하고 청승맞은 장면이다. 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의 실상은 이런 것이다.


몇 차례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학창 시절엔 200자 원고지 70매를 못 채워 소설이 아닌 시를 전공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이젠 마음잡고 앉아 쓰면 원고지 100매 정도는 우습게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게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게 어렵고, 힘들고, 심지어 두렵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잘하는 일로 먹고사는 삶은 모두에게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의외로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 좋아하니까, 잘하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 때문에 때때로 두려움에 갇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고난 자가 노력하는 자를 따를 수 없고,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따를 수 없다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타고난 자도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그 노력이 일상의 루틴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쯤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은밀하고도 신중한 자아도취, 일명 ‘자뻑’의 순간도 종종 찾아온다. 나 역시 ‘정녕 이 문장을 제가 썼단 말입니까!’ 하며 남몰래 가슴 벅차 했던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다른 누가 동의를 하든 말든 그런 순간조차 없다면 이 어렵고, 힘들고, 두려운 일을 이렇게나 오랫동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어디 없을까?


언제부터인가 좋아서 마냥 즐기기만 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대단한 노력 없이도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절실해진 것이다. 타고나지 않았으면 좀 어떠랴, 썩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너무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정도라면 뭐든 오케이였다. 그걸로 꼭 뭐가 되거나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되는 일, 누군가에게 굳이 인정받고 평가받을 필요도 없는 일, 그게 나에게는 그림이었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도 있었지만 결국 보태니컬 아트를 배우고, 놀방 화실을 드나들고, 슬세권 친구들과 모여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슬럼프에 빠질 일까지는 아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까지 버려지지는 않는 게 또 취미인가 보다. 하긴, 나도 눈이 있는데 썩 잘 그린 그림과 어딘가 어설픈 내 그림은 한눈에 봐도 영 달랐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그리고 싶었는데 다만 내 솜씨가 여의치 않아 그리되었을 뿐이다. 뭐 프로페셔널하게 그려내지는 못할지라도 화지(畵紙) 위에 일그러진 오브제가 둥둥 떠다니며 따로 노는 느낌은 좀 없었으면 하는 욕심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물론 글을 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렇게 미미한 스트레스와 과욕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던 지난가을. 사과 농사를 짓는 대학 후배가 보내온 사과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 고마움과 감동을 내가 직접 그린 사과 한 알에 담아 보내자는 야심을 품었다. 저도 쓰고 나도 쓰는, 그래서 우리 사이에 너무 흔해진 글 대신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마음을 전하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뿌듯하고 묘하게 설렜다. 그러나 그 뿌듯함과 설렘은 금세 스트레스로 돌변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면 다들 그렇게 쓱쓱 쉽게 그리던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붉은색 계열 몇 개, 노란색 계열 몇 개로 제법 리얼한 사과색을 내던데, 72색이나 되는 내 오일파스텔은 그야말로 개발에 편자였다. 


대 여섯 장을 망치고 결국 그나마 만만한 수채색연필로 돌아와 매우 소극적인 색감의 사과 한 알을 그려 후배에게 보내는 데에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필자가 후배에게 선물로 그려준 사과 드로잉

후배에게 이 어설픈 사과 그림을 보내게 된 사연을 다시 구구절절한 글로 써 설명하며, 나는 생각했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더니, 글쓰기가 제일 쉽구먼!

아뿔싸, 내가 이 말을 하게 될 줄이야!


다시뉴스 필진 정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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