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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07. 2022

[고구마 세 개] #3

소원 씨의 소원

한 사람이 밥차 텐트 안으로 쭈뼛쭈뼛 들어섰습니다. 한참 전부터 주변을 서성였던 그이는 텐트 안이 좀 휑해지고 나서야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낸 듯했습니다.


“저...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돈 없어도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짧은 단발머리는 부스스했고, 눈은 퀭했습니다. 세탁한 지 꽤나 되었을 법 한 옷, 다 낡은 삼선 슬리퍼가 처지를 짐작하게 해 주었습니다. 길 위에서 신산스러웠을 하루하루가 그대로 몸에 들러붙어 있는 그이에게 대수롭지 않은 척 물었습니다.


“집 나온 지 며칠 된 것 같은데요?”

그이는 기운 없이 엷게 웃기만 합니다.

“배고파요.”


밥을 두 그릇째 비우고 나더니 비로소 자기 같은 사람이 와도 되냐고 묻습니다. 밥차를 철수할 준비를 하던 대학생 봉사자들과 금세 말을 트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밤 열한 시, 밥차 텐트를 걷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어디서 잘 거예요?”

“잘 데가 없어요. 공원 의자나 공원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자기도 하고, 그냥 밤을 새우기도 해요.”


전형적인 청소년 노숙인들의 밤입니다.


밥보다 담배


활동가들이 모여 회의를 한 끝에 그이에게 비상 숙소를 제공해주기로 했습니다. 비상 숙소는 가출 또는 노숙 청소년들이 정말 긴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한시적으로 묵을 수 있도록 마련한 것입니다. 비상 숙소 이용 기한은 대개 열흘 남짓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월세로 방을 구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본인의 자생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비상 숙소에는 친구를 데려올 수 없고, 실내에서는 음주, 흡연이 불가능하며, 이 규칙을 위반하는 즉시 바로 퇴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식사, 세탁, 청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은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이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담배 한 대 꿔 줄 수 있어요?”

 잠자리가 정해져서 마음이 좀 눅었는지 한결 편안한 목소리였습니다.

“꿔 줄 수는 없고 그냥 줄 수는 있어요”


그이에게 말보로 레드-줄여서 ‘말레’라고도 합니다-를 한 갑 구해 주었습니다.

“이 담배가 좋은 건, 찐하거든요. 자주 피울 수 없으니 필 수 있을 때 한 번에 찐하게 빠는 거죠. 그런데 제가 말레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길 위의 어린 청춘들이 유독 선호하는 브랜드가 ‘말레’라는 말은 굳이 해주지 않았습니다. 시설을 조기에 자진 퇴소하고 혼자살이를 하고 있는 아무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이 ‘말레’입니다. 밥 먹자고 하면 대신 담배로 하면 안 되냐고 하는 친구입니다. 그럴 때마다 몸의 허기보다 마음의 허기가 더 급한 게로군 하면서 빠르게 체념하게 됩니다.


흡연에 대해서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백해무익하니 꼭 끊도록 해야 된다는 입장과 어느 정도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데, 드물게는 권장하는 활동가도 있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삶인데, 담배라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될 것 아니냐는 지론입니다.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 입장 차가 종종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길 위에서 이름 찾기


“<소원>이라는 영화 아시죠? 조두순 사건 가지고 만든 영화요.”

좀 뜬금없다 싶어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데, 이어서 들려오는 말이 귀에 와서 박혀 버립니다.

“저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가족들은 있어요?”

“아버지하고 오빠가 있는데 어디 사는지 몰라요. 그리고 알아도 안 가요. 저를 다시 잡으러 올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 당했어요. 그래서 안 돌아가요.”

살던 곳도, 본명도 말해 줄 수 없다는 그이는 자기의 신분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주민등록도 말소됐을 거예요. 어머니는 없고, 어려서 집을 나왔어요. 저를 때리던 아버지 이름은 기억도 안 나요”

신분을 밝히면 경찰이 알게 될 거고 그러면 경찰이 집에 연락해서 아버지가 자기를 잡으러 올 수도 있다며 두려워했습니다.


“저 미짜인 건 아시지요?”

담배를 새로 꺼내 물면서 그이가 한 말입니다.

“아, 이름이 미자 씨라고요?

“에이, 장난치는 거죠? 알면서... 미짜, 미성년자 말이에요”


이렇게 드러내 놓고 자기를 ‘미짜’라고 하는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대부분은 ‘미짜’라는 걸 감추고 싶어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부를 이름이 필요할 테니 그때는 ‘소원’이라고 하면 된다는 그이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이 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냐고 물으니 시설에 있다가 나와서 줄곧 ‘그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다고 합니다. ‘그 일’을 한 것이 들통나면 잡혀갈 거라는 두려움도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된 것이리라, 그리 짐작만 할 뿐입니다. 


‘소원 씨’는 밥차의 그렇고 그런 일상에 그렇게 불쑥 스며들어와 버렸습니다. 비상 숙소에서 지내는 날이 열흘을 넘겼고,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건강검진도 받았습니다. 이례적으로 숙소 이용기한을 연장해 준 뒤에도 ‘소원 씨’는 언제까지 더 있을 수 있냐고 자주 물었습니다. 


이후 틈틈이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정보를 모아 ‘소원 씨’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았지만, 결국 정상적으로 신원을 회복하여 사회보장제도의 그물망 속에 편입시키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조각난 기억과 일관되지 않은 진술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했습니다. 절대 잡혀가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고 난 뒤에 알게 된 ‘소원 씨’의 본명을 가지고도 신원 확인은 불가능했습니다.


신분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필요한 도움을 줄 수가 없다고, 우리나라 법이 그렇게 되어있다고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지문이라도 찍어 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습니다. 열 손가락 지문은 습진으로 뭉개져 있거나 살갗이 뜯겨서 존재를 증명해 줄 만한 흔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다른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관련 기관 몇 곳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정확한 신분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현행법상으로는 전혀 없다’는 사실만 재차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도움 필요 없어요. 여기서 그냥 며칠만 더 이렇게 편안하게 있다 갈게요. 전 이거면 돼요. 센터 같은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행정적 탐색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린 후에야 ‘소원 씨’는 비로소 속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끝내 이름을 밝힐 수 없었던 진짜 이유


숙소에 머무르면서 ‘소원 씨’는 규칙적으로 담배를 피웠고, 밥차가 열리는 날에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와서 또래들과 어울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배드민턴을 치고 인라인 타는 법도 알려 달라 봉사자를 조르고 하면서 자주 웃었습니다. 한 대학생 봉사자에게는 호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나가서 친구를 만나 치맥을 먹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비상 숙소에서 지낸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가던 날이었습니다. ‘소원 씨’는 처음으로 머리에 웨이브까지 주고, 목까지 올라오는 흰색 스웨터와 깡똥한 감청색 스커트로 한껏 멋을 내고 밥차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밥차에서 보낸 날들이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고, 그 밤 그 길로 떠났습니다. 끝내 자신의 이름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원 씨’가 떠나가고 난 뒤, 우연히 그이가 스물두 살이었고, 주민등록도 멀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열일곱 살로 돌아가 교복 입고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요. 이게 제 소원이에요”

이제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을 ‘소원 씨’가 여러 번 말했던 소원이었습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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