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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 Nov 10. 2022

내 서툰 사랑을 일깨워준 구절

내 기준의 사랑과 노력은 상대방에게 중요하지 않다


내 나이 34살. 그동안 6번의 연애를 했다. 그리고 6번의 이별을 했다. 크고 작은 짝사랑도 합친다면 설렘과 상실감을 느꼈던 횟수는 좀 더 많았겠다. 설렘과 상실감 반복되는 과정에서 '내 기준의 사랑법'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기준으로 최선을 다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상대방은 서운해할까. 왜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


내 나름의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설렘의 크기는 줄고 상대방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만 커졌다. 하지만 내 최선이 상대방에게도 최선이었을까 - 돌아보니 최악만 아니었다면 다행이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약 2년 전, 그동안 내 사랑법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일깨워준 구절이 있다. 책의 내용을 이해했다고 해서 사랑에 대해 알게 된 건 아니지만, 사랑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감명받았던 구절을 공유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사랑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로 인해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충만함과는 별개로

고독해질 수 있다는 것.


오래된 인연이 함께해온 많은 방식을

어느 한쪽은 익숙해져 안온해하는 반면,

어느 한쪽은 지루해져서

변화와 모험을 욕망할 수도 있다는 것.


다른 사랑을 추억하고 상상할 수도 있다는 것.


사랑받는 자의 천성적인 그릇이 작아서

어떤 경우는 너무 넘쳐

받아내다 지칠 수도 있다는 것.


예민하던 사랑이 둔감해져 가는

자연스러운 사실에 대하여

한 사람은 생활이 되어간다며 안도감을 느끼지만

한 사람은 상실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모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것.


이 어쩔 수 없는 모습 앞에서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온 입장에서는

이 결여를 입 바깥으로 꺼내어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


오해를 살까 봐 두려워

그저 견디기만 할 뿐이다.

그것이 사랑을 좀먹고 두 사람을 좀먹을 때까지.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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