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하 Nov 28. 2022

25살 여자 신입과의 재회

좋은 인연을 하나만이라도 만들고 퇴사할 수 있다면.


어떤 조직에서든 좋은 인연을 하나만이라도 만들고 나올 수 있다면 그 회사생활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5살 여자 신입사원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다. 팀에서 혼자 여자이어린 나이에 바로 입사해서 내심 걱정을 했지만, 일을 너무 잘해서 반전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신입과 1년 간 함께 지내면서 많이 보고 배웠다. 그리고 신입은 이제 실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더 이상 신입사원이 아닌 '일잘러'가 되었다.


나는 AI분야의 회사를 그만두고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이제 '일잘러'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퇴사를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시기에는 사람들과 비슷한 대화가 자주 오고 간다.

'퇴사하고도 연락하고 지내요'

'연락 드릴게요 밥이라도 한 번 먹어요~'

'사무실 강남이랬죠? 강남 가면 한번 봬요ㅎㅎ'

'이직한 회사에서 성공해도 저 모른 척 하면 안 돼요!'


아니나 다를까 퇴직할 때 쯤, '일잘러'도 내게 비슷한 말을 건냈다.

"선임님, 나중에 강남 갈 일 있으면 연락 드릴게요 시간 되면 봬요!"


나와 '일잘러'는 같은 팀이긴 했지만 그닥 친하지는 않았다. 다만 팀원들 중 혼자 여자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꿋꿋하게 일을 잘해내는 모습이 본받을만 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종종 '일잘러'에게 '경력이 없는데도 어떻게 회사생활이랑 일을 그렇게 잘하냐, 비법이 뭐냐'라며 궁금함이 담긴 칭찬을 건내는 정도의 사이였다.




급하게 인수인계를 하느라 퇴사하기 직전까지 정신이 없었다. 출근 마지막 날, '일잘러'는 재택근무여서 만나지 못했다. 따로 작별 인사를 안 한게 못내 아쉬웠지만 내가 먼저 연락할 만큼 가깝지도 않았고 부담을 주기도 싫었다. 퇴사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잘러'에게 꽤 긴 카톡이 와있었다.


'그동안 칭찬해주고 알게 모르게 챙겨줘서 고마웠다. 스타트업 가서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성장을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회사였는데, 후배에게 진심이 담긴 응원을 받아서 뿌듯했다. 나는 그렇게 22년 5월 중순에 퇴사를 하고 바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한달, 한달, 한달. 시간은 계속 흘렀다. 새로운 환경인 스타트업에서의 시간은 더욱 빨리 갔다. 그리고 '일잘러'는 내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그러던 8월 12일 금요일, 뜬금없이 '일잘러'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퇴근할 때가 다 되어서였다.

"선임님 잘 지내시죠? 저 내일 강남 갈 일이 있어서 그런데 오후에 시간 되시나요?"


놀랍고 반가웠다. '강남에서 보자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일잘러'와 나는 이전 회사가 아닌 강남역 카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일잘러'는 그동안 회사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해줬다.


내가 퇴사하고 난 뒤, 업무 외적으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많아서 고립감은 점점 심해졌고, 개인적인 안 좋은 일도 겹쳐 너무 힘들었다고. 다행인 건 최근에 20대 신입사원이 여러명 들어왔고 여자도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고 했다.




일을 너무 잘해서 내가 있든 없든 당연히 잘 지낼 줄 알았는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줄은 몰랐다.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내가 경험 중인 스타트업 생활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그리고 나한테 진짜로 만나자고 할 줄 몰랐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더니, '일잘러'는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 부담 안 되게 신경써주고 말 걸어줘서 고마웠어요. 또 선배가 꽤 열정적인 사람 같았고, 성장해야겠다고 갑자기 잘 다니던 대기업 퇴사하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한게 멋졌어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부도 궁금하고 밀린 우리팀 얘기도 할 겸 연락했어요."


'일잘러'가 나를 이렇게 좋게 봐줬는지 이때 얘기하면서 처음 알았다. 퇴사 전에 좀 더 얘기 많이 하고 더 잘 해줄걸.




이전 회사가 내 첫 회사였고, 스스로 업무든 회사 내 인간 관계든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그래도 후배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선배로 기억되었다니.


이때 당시 스타트업에서 미래도 불안하고 업무적으로도 압박을 느끼던 시기였는데 후배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위로가 됐다.


이 이후로도 '일잘러' 후배와 연락을 자주 하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최근에 내가 백수가 되고 구직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대한 팁을 후배에게 물어보고 있는데, 회사생활한지 겨우 1년 됐다는 게 안 믿길 정도로 조언 하나 하나가 통찰이 느껴지고 주옥같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후배를 만나, 힘을 얻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신기하고 고맙다. 그래서 평소에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베풀어야 하는 것 같다.


어떤 조직에서든 좋은 인연을 하나만이라도 만들고 나올 수 있다면 그 회사생활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백수 생활을 끝내고 새로 들어가게 될 회사에서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들고 싶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생일에 연락 한통 없는 친구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