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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Jul 04. 2024

중3의 수학 이생망

계단 쌓기 좋아하면 기사회생 가능해.

중학교 3학년.

내년이면 준사회인 취급받는 바로 이 기로에.

수학시간엔 계속 자는 친구가 생각난다.


수학 수업을 듣지 않는 4-5명이 있다. 

그중 한 두 명은 이미 고등수학 푸느라 수업을 안 듣는 애들이고

나머지 애들은 아예 포기한 채,

자거나 다른 짓하거나 하는 학생들이다.


오늘도 나는 어떤 아이를 공략해 수업을 듣게 할지,

수학문제에 흥미를 보이게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20명 아이들 중에 1-2명은 결석했다.

4명씩 모둠 5조로 책상을 붙여 앉는다.


수학교사는 이차방정식의 활용문제 중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판자를 가지고 정사각형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식을 세우고 답을 말해보라고 던져줬다. 


나는 이미 여러 반을 돌았기 때문에 교사가 의도하는 것이나 풀이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려줄 수는 없다. 학생들이 답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이 바로 이 수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둠은 으쌰으쌰 이리저리 의견을 내어 가며 풀이하는 반면

엘리트(?)가 있는 모둠은 이미 그 아이가 식을 세우고 답을 써 내려간 것을 다른 아이들이 베껴 적고 있었다. 


사실 엘리트가 섞여 있는 모둠이 더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 법이지만,

나는 그보다는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넋 놓고 있는 모둠에게 다가간다.


한 여학생은 자신은 예술고등학교 진학예정이고 진학할 때 수학과 같은 교과점수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방과 후에 베이스기타를 친다고 했다. 여학생이 베이스라! 진짜 멋지다. 갑자기 옛날 유명했던 밴드그룹이 생각났다. 

다른 남학생은 운동을 중2까지 하다가 중3 때 전학을 온 케이스다. 운동 중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또 다른 남학생은 열심히는 하는데, 핵심을 짚지 못하고 계속 '열심히'만 한다. 인수분해를 한 식을 다시 전개하고 있다가 다시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인수분해 한다. 뭐 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다. 

나머지 여학생은 이과 과목에는 전혀 흥미 없는 천상 문과 소녀다. 

수학책 밑으로 열심히 일본어 책을 보고 있다. 그냥 그 책을 쓱 봤는데, 책 수준이 수준급이다. 읽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수줍게 웃는다. 


이 총체적 난국인 그룹은 이미 교사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같았다. 중3이니, 그 짧은 45분 수업시간에 어쩔 수가 없겠지. 그래, 어쩔 수 없다. 수학은 진심 그렇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사실,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물어보고 대답하는 시간이 더 좋고 재밌다.). 


수학을 언제 놓았느냐고.

베이스 치는 여학생 애는 상당히 자존심 상한다는 투로 "그건 왜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말갛게 웃으면서 "아니, 그냥 궁금해서."라고 대답해 줬다. 뭐 어쩌려고 물어본 것도 아니고, 담임교사도 아니고, 교과교사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강사가 아무런 뜻 없이 호기심에 물어본 것이다. 나의 빙구같은 웃음에 눈은 내리깔고 퉁명스럽게 대답해준다. 그래도 대답은 해주네. 


그 여학생은 초등학교 때 대안학교 나왔는데 수학을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리가!

수학을 형식적으로 배우지 않았겠지.

네가 배우고 있는 베이스도 수학의 원리가 들어 있는 걸 너는 알까.

열심히 반음, 마이너코드, 메이저코드 외우던데.


여하튼, 그래서 중학교에 와서 수학을 배우는 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흥미도 없어서 그냥 그때부터 수업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운동을 그만뒀다는 남학생은 크면 김종국(맞다, 우람한 몸매에 가느다란 미성으로 노래 부르는 그 가수. 맞다.) 같을 것 같은 외모를 지녔다. 조별로 내 준 문제를 이제 풀이하기 시작했는데, 종이 쳤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 풀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가 와서 공부하고 있는 책을 덮게 만들었다. 매점 가자고. 


그러자, 망설임도 없이 책을 덮고 나간다. 그러면서 약간의 양심의 가책은 느꼈는지, 내 눈치를 살살 살폈다. 나는 웃으면서 "다음 시간에 보자. 다음 시간에는 꼭 끝까지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매점 가자고 온 친구에게 "아, 쫌 기다려주지~. 친구의 앞날을 막는 사탄이네. 사탄!"이라며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놔버린 수학.

괜찮다. 

나는 2분의 1 더하기 3분의 1을 더하면 5분의 2라고 대답했던 중학교 1학년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 모진 수난을 겪으면서도 꼭 수학을 풀어보겠다는 승부욕을 불태우던 학생이었다.

오래전에 가르쳤던 학생이었는데, 그날따라 그 승부욕에 불타던 그 학생이 왜 이렇게 보고 싶던지 모를 일이었다. 


미리 포기하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그렇게 된다는 걸 깨우쳐주고 싶다.

마치 어린 코끼리가 묶인 사슬을 끊고 도망치려다 계속된 실패로 지레 포기해서 사슬을 끊고 도망칠 힘이 있는데도 그냥 그대로 묶여 지내는 것 같다. 


수학은 사실 계단과 같아서, 한 번 오를 때 너무 힘이 든다. 

그런데 한 번 오르고 나서는 그 평탄한 상태가 유지된다. 

그러다 갑자기 높은 낭떠러지 같은 높은 계단이 나타난다. 아주 어릴 때 배우는 수학(사실 초등수학까지는 계산이라고 하고 싶다.)은 낮은 게단이 계속 이어져 있어 그 계단 높이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낮은 계단의 높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리면 어느샌가 높지 못할 계단의 높이에 한 발 디딜 생각도,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괜찮다.

그 까이꺼.

한 발이 너무 힘들면 같이 뛰어 줄 수 있다.


중요한 건,

제발 창피해하지 말라는 것.

지나버린 시간만큼 내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며,

이걸 해 봐야겠다는 가벼운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냥 가랑비에 옷 젖듯,

문제를 풀어보고,

왜 이런 걸 푸는지 딱 한 번만 생각해 보자.


그러면 

맹목적으로 풀기만 하는 수학문제에서

인생과 철학과 사람의 향기를 느끼는 수학 문제를 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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