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 나오시니까 일에 집중이 잘 돼요.
회사일이든 집안일이든 같이 일해야 하는 것이 있고, 혼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내 옆 동료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나도 웬만한 수다쟁이라면 서러운데, 이 분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이 쓸데없는 신변잡기의 말과 업무에 관련된 것을 함께 뒤섞어서 말을 한다.
그래놓고는 자신은 업무에 관한 말을 전했다고 우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계속 주의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맥락 없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이야기를 한다. 이게 업무에 관련된 것인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나는 계속 집중해서 듣고 판단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겹다.
나는 모르는 것은 되도록 묻는 편이다. 내가 이해할 때까지. 심지어 상대가 말한 것을 내가 이해한 말로 다시 확인차 물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뒤섞여 이야기하면 나는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일을 못하고 이해력이 딸린 조금은 덜 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내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으로 대한다.
그러면 이해력이 딸리냐고 나에게 대놓고 묻는다. 제대로 얘기하지도 않고 그냥 대충 상황 맥락상 알아들어야 한다.
무엇이든 처음 하게 되면 이해력이 좋든 딸리든 모른다.
상대방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앞뒤 없이 그냥 말해도 다 알아듣는 사람들은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한국인과 일하면 편하다는 외국인이 있나 보다.
사실 이렇게 일하려면 아랫사람이나 신규인 사람들은 선임이 하는 관심사, 하는 일, 취향 등을 모두 꿰고 있어야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개떡 같은 재벌 3세의 모든 비위를 맞추는 엄청 똑똑한 엘리트 출신 비서같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엘리트 출신도 아니고, 엘리트라도 그렇게까지 비위 맞추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
물론 임금도 쥐꼬리다.
그런다고 내 능력이 비상하게 좋은 것도 아니니 적은 임금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겠다.
더군다나 내가 얘기하는 것은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그래놓고 내가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래서 나는 메신저에 적어 놓는다.
그것도 단체톡방에.
그런 이유로 정작 일하는 것보다 이 사람 때문에 더 정신적 에너지가 쓰인다.
처음에는 몰랐다.
내가 신규라 일을 잘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맨날 자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계속 메모장에 적었다.
그랬더니
뭘 그렇게 적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적는 스타일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업무를 빠뜨리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자신은 적어 놓으면 적어 놓은 것을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서 그냥 안 적는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럴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이 신변잡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계속 남아서 하게 된다.
나는 남아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업무에 관련된 것은 메신저로 '마감기한'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고 난 후에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정확히 말하면 내가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내가 부탁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인 걸까?
아니면 업무얘기할 때와 아이스브레이킹을 잘 구분해서 해 주면 좋지 않을까.
가장 바쁘고 힘들 때 휴가를 낸다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지만, 좋기도 했다.
안 오시니까 할 일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