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마음대로 살아보니 깨달은 것들

그래도 서로 잘 살았다.

by 배써니

자유부인을 선언한 지 한 달이 되어 갔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밥을 차리고, 저녁에 부랴부랴 달려가서 저녁을 차리는 것을 하지 않았다.


일단 나는 식사 준비하는 시간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었다.

아침을 준비하느라, 일찍 일어나서 자고 있는 애들을 깨운다.

그러면서 밥도 반찬도 꺼내고, 때로는 만든다.


1호는 갓 만든 음식만 먹고, 데워먹는 건 가공식품만이다.

2호는 1호와는 음식기호가 완전히 다르다. 마치 외동 2명을 키우는 느낌이랄까.


1호는 약간 익은 김치만 먹고, 2호는 약간 신 김치를 먹고, 나는 안 익은 김치를 먹는다.

라면도 2호는 꼬들꼬들한 면을 먹고 1호는 푹 익힌 면을, 나는 중간 정도 익은 걸 좋아한다.


두 아이들의 음식 선호도가 매우 달라서 나는 그냥 두 가지 음식들을 먹는다. 마치 박쥐가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것처럼 1호 것이 많으면 조금 집어먹고 2호 것이 많으면 옆에서 먹는다.


음식 준비시간이 줄어드니 출퇴근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예전처럼 동동거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뛰쳐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퇴근 때도 항상 마트를 들러서 저녁 먹을거리, 아침 먹을거리를 사 가지고 오곤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일터에서 간단히 먹거나, 회식하는 날은 그냥 늦게 들어가 씻고 바로 잤다.


1호와 2호도 처음에는 나의 눈치를 봤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찍 잠을 자거나, 내가 출근할 때 가끔 깨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한 일주일이 지나자 그냥 자기네 마음대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1호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느라, 편집 작업에 밤을 새기도 했다. 2호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책상에 앉아서 10시간 동안 꼬박 그림을 그려대는데, 진짜 저러다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 몰래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는지, 책상 한 켠에는 포장지와 일회용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넉살 좋은 1호는 내게 2호가 그림을 그려 팔아 배달음식을 사 먹기도 했다고 가끔 보고(?)했다. 자신도 돈을 주고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아이고. 창조경제 납셨네.


2025년 시급이 만 원 넘었는데, 열댓 시간 그림 그려서 10만 원 벌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2호에게 쪼르륵 달려가서 내 말을 전한다. 아마 노동 대비 돈을 못 버는 거라고 놀리려고 간 것이겠지. 학생 때는 공부하는 게 그나마 돈 버는 거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내 말에 반박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겠다.


엄마가 통제하는 삶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음을 내게 증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원한 것은 내가 1호와 2호의 삶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길 바라는 것이겠지.


그래, 다 안다. 그걸 알면서도 참 나는 자꾸 내가 살아가는 내가 사는 사회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 1호와 2호도 그걸 알지만,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없으니 저렇게 뻗대는 것이다.


우린 다 알면서도 서로 이렇게 자존심(?) 싸움이다.




하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진다고 했었나.


나는 참지 못하고 이내 말을 걸었다.


"한 달 이렇게 살아보니 어때?"


2호는 당당하게 말했다.


"어, 좋아. 괜찮았어."


그 말에 나는 이내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2호가 매달렸으면 아마 또 푸념을 했을 것이다. 이 것 보라며, 엄마 없으니 아무것도 못하지 않느냐며. 다시 통제를 가하려고 들이댔을 것이다. 나는 투덜대면서 다시 장을 본다며 내 시간이 어쩌고 저쩌고... 애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겠지.


이렇게 간사한 마음이라니!


2호의 대답에 나는


"엄마는 안 되겠더라. 너네를 안 챙기면 편하고 자유 부인일 줄 알았어."


"엄마는 너네랑 정서적 교류가 필요해."


그 말에 2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전까지 2호는 짤막한 대답만 하면서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이내 내가 좋아하던 장난스러운 얼굴이 돌아왔다.


그래, 이거야. 내가 힘들었음에도, 투덜거리면서 종종거렸어도,

이 얼굴과 목소리가 없던 힘이 솟아났던 이유였어.


2호는 한 달간 어떻게 살았는지 상세히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벌었던 일을 얘기했다. 일주일마다 주던 용돈은 계속 주었지만, 그 돈으로 배달 음식을 계속 먹지는 못했다. 배달음식을 좋아하는 2호는 '당근마켓'같은 플랫폼에 가입을 했었다.(물론 미성년자라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건 아주 예전에 해 준 것이라) 그곳에서 그림 신청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고 사이버머니를 받아 배달 음식 주문할 때 썼다는 것이다.


나는 또, 이 얘기를 듣고 청소년 도박이 어떻느니 저떻느니 라는 말을 하려 했다. 사이버 범죄에 잘못 걸렸으면 어떡할 뻔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일도 아닌 것에 굳이 초를 또 칠 거냐고! 미쳐 날뛰려고 하는 통제마왕에게 저 구석에서 이성의 끈이 삼지창을 겨누고 있었다.





한 달간의 이 냉전은 내가 백기를 들고 감으로써 끝이 났다. 이제 개학이 다가오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우리는 다시 학교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들은 교복을 찾고, 새 교과서를 챙기고, 2달간의 방학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 나 또한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고 학기를 맞이해야 한다.


나는 2호에게 다시금 물었다.

겨울방학 때 세웠던 계획이 바뀐 것이 있냐고.

혹시 허비한 방학 때문에 올해의 계획이 수정되는 것이 있냐고.

그랬더니, 아니란다.

자신이 세웠던 계획은 아직 유효하다고.

학교 생활과 진학계획은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조금 버거워 보였지만,

일단 믿어 줘야 한다.

설령 그 일이 틀어 질지라도,

다시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고

아이들이 세운 계획을 점검해 주고,

그래도 한 번 경험해 본 나의 조언을 참고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도와줘야 한다.


아이들은 성장했다.

나는 또 뭔가 변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미안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배운다.


삶이 지치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보며 살아지는 이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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