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와 나의 ‘육아 갑론을박’, 웃기지만 생각할 거리
국공립어린이집을 700세대 아파트에 새로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쇼츠를 보았다. 아침부터 기분이 잡쳤다. 엄마의 기분을 살피는 1호에게 어린이집이 이제 혐오시설급으로 취급되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정말 한심하다고 말해줬다. 애들이 자라서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일을 이어받아서 우리나라가 존속해 가는 건데, 장려해 줘야지 생각들이 없다고 투덜댔다. 다문화 아이들이 입소하기 때문이고, 이것은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나. 한참을 아이를 키워내는 것에 사람들의 이기심에 대해 불평을 해댔다.
그랬더니, 1호가 하는 말.
엄마, 나 아기 낳으면 엄마가 봐줄 거야?
이렇게 물어보는데, 나는 내가 왜 길러주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네가 낳고 싶다고 낳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네 부인될 사람에게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랬더니, 낳는다면 돌봐줄 거냐고 재차 묻는다.
나는 안 봐줄 거라는 얘기를 아주 길게 늘어놓았다. 나 같은 고오급(?) 인력을 무료로 착취하려고 그러냐고.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양가 부모 도움 없이 어떻게 키웠는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내가 그렇게 줄줄이 말하는 이유는 내가 봐준다 하면 나 믿고 육아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내가 지들 대신해주는 것이 많아서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1000% 들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육아 기회를 내가 빼앗고 싶지 않아서다. 물론 육아, 적성에 안 맞으면 무척이나 힘들다. 낳는다고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키워가면서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역할을 하려면 고3입시생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은 걸 알아야 한다. 직접 육아를 하지 않더라도 육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남의 손에 제대로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고난도 퀘스트를 깨면 내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발전되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하다. 이건 개인차이가 커서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마지막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약간의 도움을 바란다면 흔쾌히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가 육아에 나서는 순간, 나와 1호의 관계는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것이다. 내가 1호와 관계가 좋은 이유는 내가 직접적으로 1호의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나도 살을 깎는 고통을 인내했다. 내 자식이니 더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 다른 부모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에 비추어 나는 해 보지 못했던 것, 내가 하고 싶었었던 것을 부지불식간에 강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면 항상 갈등이 일어났었다.
바로 내 자녀에게도 그랬었는데, 손자들(손자라 하니 정말 어색하다. 아직은 먼 미래일 같다.)에게 그러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다.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는데, 굳이 내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안 봐준다는 뉘앙스를 풍기니, 1호가 다시 되물었다. 그럼, 비용을 주면 하겠냐고 말이다. 내가 나름 고급인력이라니까(내 입으로 말하니 민망했지만) 나름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버는 월급 정도는 받아야 되겠다고 말했다. 남의 손에 맡겨도 그 정도 줘야 한다고.
그랬더니, 친족 디스카운트는 없냐고.
아, 진짜. 1호의 너스레는 당하지 못하겠다.
장난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어린이집 설립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의 이기심을 욕하다가, 이야기의 결말이 어쨌든 나도 아이를 돌보지 않겠다는 것으로 끝나서 약간 나도 이기적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며 돌봄 노동의 사회적 인식과 나의 생각을 비교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