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더하기, 똑같은 수 더하기
요즘은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한글과 수를 배운다. 유치원에 있으면서 많은 아이들이 사교육에 노출되어 있구나. 참. 애기들 힘들겠다. 유치원에서는 유아교육과정이 철저히 놀이중심으로 되어 있다. 형식적인 한글 익히기, 수개념 익히기는 할 수 없게 되어 있다(2019개정누리과정을 나름대로 해석). 하지만 아이들이 놀이하는 속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놀이 속에서 활동도 뽑아내고, 교사가 교육과 기본생활습관, 인성교육까지 하게 되어 있다. 유치원 교사는 정말 만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는 학부모로서 양육한 것을 말하려고 한다.
나는 2019개정누리과정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 전력이 있고, 학원에서 수학강사를 10여 년쯤 해 본 지라, 초등학생이 된 내 아이에게는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아교육을 공부한 대로, 놀이 속에서 아이가 호기심을 발동하면 그때 그때마다 놀이로, 게임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 흔하다는 공부방이나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보내달라는 것만 사교육을 시켰다. 유치원 다닐 때, 그것도 6살 때, 홈플러스에서 홍보하고 있던 한자학습지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 초등 1학년 때까지 한 것, 초등1학년 때 태권도 학원 보낸 것 이외에는 전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유치원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양이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때만 해도 공립유치원엔 순위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립유치원에 보내야 했었다. 알다시피 사립유치원은 온갖 사교육이 난무하다. 특성화교육을 오전에는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이 겨우 통과된 터라, 아이들은 점심 먹고 나면 줄줄이 특성화(오르프음악, 노부영영어, 유아체육, 펙토수학, 플레이미술 등)를 요일별로 진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담임선생님이 한자교육을 하고, 한글단어책 쓰기, 그림독서장, 방과 후에서는 한글과 수학습지를 따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학습양이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때에는 그나마 동네에서 가장 아이들을 놀게 해 준다는 사립유치원이었다. 그 당시에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과과정에 넣는다는 교육부의 말에 학부모와 교육계가 술렁이며 이슈화되던 때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어차피 애들에게 끝까지 모든 지원을 해 줄 수 없을 바에는 인성과 정서에 신경 쓰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에 다닌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아들내미가 물었다.
"2 더하기 2는 얼마게?"
"4"
"4 더하기 4는?"
"8"
"8 더하기 8은?"
"16"
이렇게 시작된 더하기 챌린지.
나는 문제를 냈다.
"2를 5번 더하면?"
아들은 2를 2+2+2+2+2를 차례차례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몇 분 안 걸려 "10"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계속 더하기 문제를 냈다.
"5를 5번 더하면?"이라고 계속 문제를 냈다.
이 놀이를 1시간 동안이나 지속했다. 내가 문제를 몇 번 냈더니, 이내 자기가 문제를 낼 테니, 나더러 맞춰보란다. 최고의 공부는 자기가 문제를 내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수학 100점 맞았어요.'라는 말보다 더 기뻤다. 문제의 출제자가 된다는 것은 출제할 내용을 완벽히 숙지해야 하고 답까지 알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냥 내뱉은 호기로운 말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겠다는 마음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아들내미는 성인이 보기엔 별 거 아닌 문제를 고심고심해서 낸다. 그런 문제를 내가 단숨에 맞히니, 너무 약 올라한다. 역시 남자애라 게임에 사족을 못쓴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얼마 하지 못하고, 밥 먹고 다시 게임을 재개하자고 한 뒤, 나는 서둘러 저녁을 차린다.
밥을 먹으면서도 게임에 약이 올랐는지, 몇 문제를 다시 낸다. 가볍게 맞춰주고는 얼른 먹자고 말한다. 게임을 하면서 먹으니, 먹는 시간이 한 세월이다. 나는 화제를 돌리며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여러 날이 지난날, 나에게 다시 도전해 왔다.
이번에는 곱셈구구를 배웠다며, 새로운 것처럼 나에게 자랑을 한다. 나는 '옳다구나' 생각하고 미리 마련해 둔, A3정도 크기인 화이트보드와 보드마카를 들이댔다.
"엄마! 똑같은 수 더하는 거 배웠어!"
신나서 마카를 든 아들은
"2 곱하기 5는 2를 다섯 번 더한 거래!"
"오호라! 그으래?"
나는 새삼 놀란 눈을 하고, 다시 문제를 냈다. 이번엔 더하기 기호가 아니라, 곱하기 기호를 써서 내었다.
곱하기 기호를 썼지만, 여전히 덧셈으로 계산을 하고 답을 썼다.
"4*3="이라고 문제를 내면 아들은 구석에다 '4+4=8+4=12'라고 계산하고 문제옆에다 쓰는 형식이었다. 계산식을 보고 등호는 저렇게 쓰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학교선생님이 발견해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학교에서 계산 후 등호를 꼭 붙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을 수도 있으니까.
초등저학년까지는 유치원생처럼 학교에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계속 이야기한다. 나는 이렇게 수다쟁이 같은 아들이 몇 년도 안 돼 과묵한 아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야기를 하면 항상 하던 일을 멈추고 들어줬다.
일반적으로 아들은 특히나 일상적인 말을 하지 않는 시기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르면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점점 말을 안 하게 될 것이고, 5학년즈음엔 자신에게 불리한 학교생활은 절대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도록 항상 '나는 모르쇠'로, 항상 바깥소식을 듣고 싶어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새'처럼 연기했다. 학원에서 미리 배워버리면, 이런 일도 없을 것이니까. 또, 학교에서도 얼마나 재미없을 것인지 아니까.
나는 수학은 수놀이로, 국어는 말놀이로, 밥상을 차려놓고 2시간을 먹으면서 학교생활을 듣고 학과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애들이 공부를 잘했냐고? 잘하냐고?
글쎄다.
뭔 대답이 이리 시원치 않냐고 얘기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시험점수를 잘 받아오는지 물어본다면 "아니다."
시험점수보다 '학습의 주체가 나'임을 알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태도'가 생겼냐고 묻는다면 조심스럽게 "그렇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시험점수 잘 받아오는 것보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선택했고, 그래서 청소년기의 반항 없이 잘 지나가는 중이다. 학과공부로도 많은 걸 깨우칠 수 있겠지만, 나는 다른 방법으로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공부 이외에 다른 장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애들에게서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