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질문의 시대, 질문도 여러 가지가 있다.
6살(만 4세) 정도 되면 질문하는 것이 많아진다.
하늘은 왜 파랗냐부터 시작해 아기는 어디서 오냐고,
동생을 사달라고 하기도 한다.
현실과 가상의 그 어딘가를 헤매면서 진리를 찾기 시작하는 때이다.
미운 7살이 찾아오기 바로 전 이 "왜요"병이 온다.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을 적절히 해 주기 위해 머리는 계속 굴러간다.
아이 수준에 맞게 대답해 줘야 하고, 동심파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기에
어른입장에서는 고난도의 민원대응일 수밖에 없다.
수도꼭지처럼 쏟아지는 이 "왜요"는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유아는 금방 눈치챈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왜요"에 열심히 대응해주려 하면 할수록 막강한 권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칭찬을 받을 뿐 아니라, 엄청난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왜요"남발이 쉬운 선택이라는 걸 누구보다 금방 눈치챈다.
물론 '왜요'의 가장 본연의 기능은 항상 탑재되어 있다. 어떤 현상이나 진실을 찾기 위한 언어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항상 있는 기능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 말고 또 질문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도 질문을 한다.
"그거 알아요?"
갑자기, 뜬금없이 뭘 아냐고 묻는다. 어른들도 가끔 서두에 이런 말을 쓰긴 한다 이 말은 내 말을 들어보라는 주의집중 도구로 서두에 쓴다. 유아들도 아주 자주 쓰는 말이다. 나는 안 듣고 싶지만, 들어줘야 한다. 안 들어주면 들어줄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기어코 말을 하고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말을 들어준다.
그냥 말을 이어가려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장충동 왕족발 보쌈 알아요?"
계속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데, 딱히 말을 할 것이 없으면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다.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나 이상한 말로 리듬을 만들어 계속 말하기도 한다. 특히 유행어 같은 걸 계속 말한다. "뚝배기~"같은 말도 하면서 자기네끼리 낄낄대며 웃는다. 우리 때의 "얼레리 꼴레리"이런 말 같은 말장난 같은 것이다. 아무 뜻도 없고 그냥 흥얼거리는 중독성 있는 말리듬 같은 걸 계속 말하는 것뿐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 얘가 코 풀었어요."
소위 '선생님에게 이른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경우다. 참, 알고 싶지 않은 아주 작은 것까지 말하는 경우이다.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는지, 자신들에게 정말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질문의 형태를 빌려서 말한다. 어떤 때 보면 그 사소한 것마저 다 나에게 얘기해 내고야 마는 아이들에게서, 이렇게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나 감격스러울 때도 있다.
확인을 받기 위해서 질문을 한다.
"선생님, 이거 잘 접는 것 맞죠?"
분명히 다 설명해 주고, 아주 쉬운 것이다. 계속 질문할 까봐 영상으로도 보여주고, 설명도 해 주고, 보드에 시범 자료까지 전시해 놓는다. 그래도 자신이 한 것이 맞는지 꼭 확인을 받는다. 이것도 자신들의 기분이 안 좋거나 하면 설명할 땐 보지도 않다가 나중에 잘 모른다고 알려달라고 온다. 다 알고 있음에도 꼭 확인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