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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Apr 07. 2024

10화 시계만 쳐다보는 아이.

계속 질문하는 아이와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 나.

유치원 방과 후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안전한 하원입니다.

유아들은 유치원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혼자 남게 되거나 몇몇이 남아 있더라도 이미 유치원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유치원도 이만 닫아야 하는 때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 둘 보호자가 유치원 인터폰으로 이름이 불리며 나가는 것을 남은 아이들은 지켜봅니다. 일찍 가는 아이가 한 두 명이고 나머지 아이들이 한꺼번에 하원하면 괜찮습니다. 그 반대일 경우는 남아 있는 몇몇 유아들이 시계를 봅니다.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지  말이죠.


부모님들은 부모님 나름대로 애로점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바로 오고 싶어도 상황이 그렇게 놔둡니까? 갑작스러운 야근, 회식, 그마저도 피했는데 교통체증에라도 걸리면 길에 마구 시간이 려집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긴박한 스릴러 영화 한 편씩을 찍으시고 계시죠.


문제는 하원시간이 바뀌었을 경우 교사나 유치원측이 모르는 경우입니다. 미리 교사나 유치원 측에 알리지 않으면 남아 있는 아이는 약간씩 불안해합니다. 교사가 아무리 잘 놀아 줘도 아이의 제1순위는 부모님이죠. 저도 이건 제 아이를 키울 때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요. 함께 전체 하원할 때와 조금 늦게 갔을 때 얼굴 표정이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는 것은 항상 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서운합니다.  아이의 자존감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저는 겨우 한 달 정도였는데도, 후유증이 좀 많이 갔답니다. 미리 얘기를 안 해서 말이죠. 아침마다 몇 시에 올 건지 계속 물었거든요.


아이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더라도 괜찮습니다. 교사에게 늦게 올 것이라고 전달하면 됩니다. 요즘은 키즈노트니, 클래스팅, 하이클래스, 아이엠스쿨 등 학교로 소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많이 쓰고 있어서 그 톡을 이용하셔도 되고요. 전화로 연락 주셔도 되죠.


매일매일 전화하기 부담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단 5분이라도 늦으실 것 같으면 연락을 미리 주시는 게 좋답니다. 그래야 교사가 언제쯤 부모님 오실 것이라고 전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 시간까지는 아이가 마음 놓고 있을 수 있어요. 기다릴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답니다. 교사도 정확히 들은 바가 없으면 아이에게 그저 "곧 오실 거야."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계속 시계만 쳐다보면서 교사에게 묻습니다.


우리 엄마는 언제 와요?


어떤 놀이를 제시해도 그냥 시큰둥하고요. 특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면 단체 하원시간 이후에 계속 시계만 하염없이 본답니다. 교사가 놀이해 주어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후 방과후를 하는 유아들의 상태는 방과후 선생님들이 더 잘 알기에 이런 상황은 오전 교육과정 담임선생님은 잘 모르는 사항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오전 선생님은 오후에는 행정일과 다음 수업준비를 하시기에 유아들이 오후에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실 수 있어요.  



전 유치원에 근무할 때 집에서 일을 하시는 어머님이 있었는데, 같은 유치원에 7살과 6살 연년생을 보내시는 분이셨어요. 그런데 7살 자녀는 4시에 일찍 데려가시고 6살 자녀는 거의 7시가 다 되어서야 데리러 오셨거든요. 게다가 7시까지 남아있는 유아는 그 아이 혼자였어요. 남은 아이는 선생님이 놀아줘도 10분에 한 번씩 엄마는 몇 시에 오냐고 묻고, 지금은 몇 시냐고 계속 물어봤어요. 물론 우리 반 아이는 아니어서 오다가다 보기만 했지요. 가끔 통합으로 한 교실에 있을 때 보면 아이가 불안해 보이기 그지없었어요.(물론 순전히 저만의 느낌일 수 있어요. 더욱이 우리 반이 아니었기에 옆에서 보기만 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런 어느 날이었어요. 부모님이 5시에 온다고 아이에게 말한 날이었나 봅니다.  정각 5시 하원에 친구들과 함께 대기하러 줄을 섰어요. 그때 그 아이가 그렇게 활짝 웃는 걸 처음 보았어요. 얼마나 기쁜 얼굴인지 모릅니다. 게다가 보는 사람마다  족족 집에 간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요. 


어떤 날은 아이가 엄마가 5시에 오신다고 말하면서(선생님은 전해들은 바가 없었죠.) 주섬주섬 가방과 옷을 챙겨 하원 줄에 서 있습니다. 선생님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도 유아는 아침에 분명히 그렇게 자신에게 이야기했다고 우기면서 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설득을 하다가 부모님이 안 오시면 다시 선생님하고 교실에 가자고 말하고는 함께 하원하는 줄에 섰어요.


 아니나 다를까, 10분이 다 되어도 역시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세상 다 잃은 멍한 초점의 눈을 하고는 힘없이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갑니다.


이 아이는 자신의 말에 항상 불안을 보였어요. 자신이 한 이야기에 스스로 맞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눈치를 보기도 했어요. 그래서 담당선생님이 보호자에게 하원시간이 바뀌거나 하면 꼭 알려달라고 하고, 웬만하면 하원시간을 5시로 고정해서 당분간 오는 것이 어떠시냐고도 얘기했대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대요.


물론, 매일 스펙터클한 하루의 전쟁을 치르시는 부모님들이 하원시간이 들쑥날쑥할 수 있죠. 또 계속 하원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일일이 유치원에 연락하는 것도 귀찮으지 몰라요. 그런데 아이를 맡은 교사들은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기다림이 얼마쯤 되는지 알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부모님이 자신을 데리로 오는 것에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유아들도 있긴 합니다. 간 멘털이 강철인 유아들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자기 혼자만 남아 있으면 폭력가정에서 자라는 유아가 아닌 이상에는 모두 보호자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그러니, 유치원 측에 미리 꼭 연락을 주셔서 유아들이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협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돌보고 있는 선생님도 부모와 연락을 하고 있으니, 정확하게 얘기해 줄 수 있고요. 하염없이 그저 "오실 거야."라는 말만 하게 되면 유아들이 오히려 더 불안해한답니다.


작은 약속 하나 지켜내는 것,

그것 참 어렵지만

그걸 해내시면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답니다.


그러니

도착시간이 바뀐다고

유치원에 꼭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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