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생각보다 에너지가 넘치지 않아요.

영감 북, 그 두 번째 이야기

by 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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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보존 법칙

; 물체가 소유한 에너지는 열, 전기, 운동 등으로 형태만 바뀔 뿐 그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 즉, 물질 전체의 에너지는 위치나 물체의 속도가 달라져도 그 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매일을 시간 단위로 쪼개 살기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루틴'이라고 하는 것을 삶에 적용시켜본 이후이다. 하루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9시 이전에 눈을 뜨고 일어난다. (계획은 7시 30분 - 8시 사이에 일어나기이지만 항상 실패한다.)

바로 몸을 굴려서 요가매트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요가매트 좁은 방향에 놓인 아이패드를 켜 요가 소년 30일 요가 챌린지 재생목록을 연다.

9시 30분까지 요가를 열심히 한다. 30일 요가 챌린지는 매일의 시퀀스가 다르다. 어느 날은 땀이 주룩 주룩 흘러서 매트를 적시고, 어느 날은 심심할 정도로 평온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짧은 명상으로 요가는 끝난다.

9시 30분부터 10시까지는 샤워로 정신을 한 번 더 깨우고,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명상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컴퓨터로 명상 음악을 틀어두고 10분간 눈을 감고 호흡을 한다.

10시부터 12시까지는 해야 할 일을 한다. 할 일이 없다면 책을 보는데, 대부분의 날에 나는 할 일이 있었다.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는다. 요즘의 점심은 클린 식단으로 해결하는데, 주로 닭가슴살 소세지와 샐러드를 먹는다. 반찬과 밥으로 때우기도 하는데, 어찌 됐든 어떻게든 간단하다.

12시 30분부터 1시 살짝 넘어서까지는 강아지 브라우니와 산책을 간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천천히 걷는다. 집 주변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매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숨이 찬다.

1시부터 3시까지는 다시 책상에 돌아와 앉는다. 마저 해야 할 일을 한다. 옛날 노래를 틀어놓고 일을 하는 편이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고집스럽게도 체험조차 해보지 않았다. 매일 성실하게 광고 skip 버튼을 누른다.

3시부터 5시까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사실 시간은 유동적이다. 가고 싶을 때 헬스장에 가는데, 보통 통계적으로 3시 정도에는 헬스장에 있더라)

6시부터는 저녁을 준비한다. 함께 사는 큰 오빠가 7시에 집에 도착하니, 7시 전까지 요리를 마쳐둔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지는 노을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갈 때가 많다.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저녁을 먹고 잠깐 멍을 때린다.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앉아있기도 한다.

8시부터는 자유시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8시부터 11시까지가 가장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시간이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이렇게 지루할 수 있다고? 싶지만, 빠져있는 책이 있거나 봐야 할 영화가 있다면 세상에서 나만큼 즐거운 사람이 없다.

11시부터 잠에 들기 전까지, 플래너를 펼쳐놓고 루틴대로 살았는지 체크한다. 식단 기록도 잊지 않는다. 그날의 최고온도와 최저온도를 적고, 하루를 가만히 돌아본다. 그리고 일기장을 펼쳐 하루를 간단히 요약한다.

보통 12시 전까지는 잠에 든다.


이렇게 하루는 열심히도 지나간다. 매일 똑같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루틴보다 루틴 이외의 시간이 내 하루를 만들기 때문이다. 10시부터 12시까지, 1시부터 3시까지, 8시부터 11시까지의 시간이 하루의 내용을 결정한다. 나머지는 쿠키 틀 같은 거다. 내용물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형태를 잡아준다. 쿠키는 얼그레이 맛이 될 수도, 초코맛이 될 수도 심지어 민트 초코 맛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루틴은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루틴을 무시하고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다음 날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고 루틴을 허겁지겁 지켜내려고 했지만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 그마저도 힘에 겨웠다. 그럼 나는 과연 급한 일에 최선을 다 했을까? 밤을 새우는 도중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제출을 하고 제출 내용을 되뇌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조급함이 불러온 참사였다.


'최선을 다하려면 그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생각해요'

'나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넘치지 않아요.'


내게 루틴은 최선을 다하기 위한 준비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만들어둔 나만의 쿠키 틀이다.

사람에겐 쓸 에너지가 정해져 있다. 에너지를 몰아 쓰느냐, 나눠 쓰느냐의 문제이다. 나는 요즘 나눠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루틴을 통해서다. 아직까진 꽤 성공적이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소비, 루틴을 위해 나는 오늘도 애쓰고 있다.


- 2월 3일 영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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