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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Aug 10. 2023

16년된 고슴도치 빵집

고슴도치 조카가 있습니다. 고슴도치는 주로 제 자식을 빗댈 때 쓰는 말이지만 저는 지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조카 사랑이 좀 유별난 사람입니다. 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조카의 몇 가지 특징을 말하자면, 올해 14살이고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산 중턱에 살며 어릴 적부터 대안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빵, 향신료, 발효음식을 특히 좋아하며 1년에 책을 약 5-600권 읽습니다. 독서량이 이쯤 되면 몇 권을 읽는지 세지 않더라고요. 그냥 5분만 시간이 비어도 책을 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여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인지, 소위말해 저와 대화가 됩니다.


조카를 비롯한 누님 가족과 주말 아침, 브런치를 먹기 위해 역시나 한적한 외곽지에 위치한 베이커리 카페를 갔습니다. 요즘 한창 트렌드로 떠오르는 ‘도심 근교 대형 카페'입니다. 3개 동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베이킹룸과 대형 취식공간은 기본이고 정원, 식물양호실, 쿠킹스튜디오, 서점, 다이닝 대관룸, 대형 주차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카페라기보다 작은 테마파크에 가깝습니다. 겉모습이 화려한 대형 카페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이곳의 빵과 커피는 맛도 훌륭합니다. 오픈과 동시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핫한 카페입니다만 주말 아침 오픈런을 한 덕분에 꽤나 여유롭게 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님 댁은 집에서 식사 빵을 직접 구워 먹는데요. 그래서 조카도 덩달아 빵과 식재료에 관심이 많습니다. 왠지 이런 자본주의스러운(?) 빵집에 오니 호기심이 발동해 조카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습니다.  

“OO이는 빵을 좋아하잖아. 그럼 빵집을 해보면 어때?”

“글쎄, 좋아하는 건 맞는데 어떻게 해?”

“일단 네가 하고 싶은지만 결정한다면 나머지는 삼촌이 알아서 해볼게”

“음..”

“삼촌이 만약 네가 빵집을 지금부터 하면 좋은 이유를 PPT로 만들어서 OO에게 발표하면 들어보고 네가 결심해 볼 수 있겠어?”

“그래. 좋아"

지금부터 빵을 좋아하는 14살 조카가 ‘지금’ 빵집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잘 써야 할 텐데요. 고슴도치 조카의 미래를 위한 이야기이니 제가 아는 모든 지식과 경험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들만 모아서 정성껏 써야겠습니다. 주제는 ‘복리 브랜딩’입니다.  



고객이 당신의 가게를 찾는 3가지 이유 
첫 번째, 맛

2009년으로 기억합니다. 압구정에 <르알래스카>라는 프랑스식 빵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다니던 학교가 근처에 있어 자주 방문했던 빵집인데요. 가게에 들어서면 ‘르코르동블루’ 졸업증서가 걸려있고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밀가루 포대가 바닥에 턱턱 쌓여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믿을만한 보증서(졸업장)와 ‘빵 하면 프랑스’라는 편견이 강하게 작동한 걸까요. 빵이 유난히 맛있었습니다. 이후 가로수길 일대에는 르코르동블루 졸업장이 걸린 빵집을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요. 2004년부터 약 13년간 압구정/가로수길 부근에서 서식(?)한 경험에 한해 볼 때, 그 일대 빵집의 빵 맛은 2010년을 경유하여 점차 상향 평준화를 이뤄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가로수길이 우리나라 카페 거리의 시초 격이니 이후에 삼청동, 분당 정자동, 부암동, 경리단길 등등 대한민국 전역으로 유사 콘텐츠와 퀄리티 높은 맛이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맛이 상향 평준화되고 SNS 인증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맛집'의 경쟁력이 ‘맛’에 있지 않은 역설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맛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영역이기도 하여 절대적인 경쟁력이 되긴 쉽지 않습니다. 맛은 기본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조심스럽게 잠시 제쳐두고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람들을 ‘계속’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요?



고객이 당신의 가게를 찾는 3가지 이유
두 번째, 편의성

사람들은 왜 도심근교의 대형카페를 갈까요? 많은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질문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 보면 결국은 편안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의 대부분은 '편안함'을 위한 외주화입니다. 대형 카페는 면적도 면적이지만 층고가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들은 층고가 낮은 곳에서는 구체적인 인지활동이 촉진되며 층고가 높은 곳에서는 추상적인 창의활동이 촉진됩니다. 이를 대성당 효과라고 합니다. 층고가 낮은 사무실과 집에 5일을 머물렀으니 주말은 층고가 높고 커다란 통창이 있는 카페에 앉아 자연 풍경을 보며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공간의 규모가 커지면 익명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가는 수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눈치 안 봐도 되니까'가 있지 않나요? 이러한 대형 카페는 서너 시간 머물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편안함 외에도 기능적인 편의성이 매우 큽니다. 일단 주차가 편리합니다. 5인 가족이 가도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가 있고 반려견을 데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 수 십 가지 빵과 음료가 있으니 끼니를 해결할 수도 있고요. 이렇게 다 적고 보니, 편의성을 높이는 데는 자본이 많이 필요합니다. 자, 그럼 자본을 최소화하면서, 또는 적게 들이면서도 사람들을 계속 찾아오게 할 수는 없을까요?



고객이 당신의 가게를 찾는 3가지 이유
세 번째, 이야기

재밌는 카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2019년에 제주 사계리에 문을 연 <사계생활>은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멀리서 보면 맞게 찾아온 건가 싶을 정도로 ‘카페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익숙한 듯 낯선 이곳은 1996년부터 20년 넘게 <농협>으로 사용되던 건물인데요. 제주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재주상회>가 연남장을 비롯해 전국에 로컬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어반플레이>와 손잡고 만든 공간입니다.

입구가 재밌습니다. 바로 ATM기가 있던 자리에 기계를 빼내고 사람이 출입할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지나 들어가면 주문하는 곳에는 번호 알림 표지판이 있습니다.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번호가 표시되는데요. 이처럼 기존 은행의 공간/기물 중 카페의 사용자 경험에 유사하게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남겨두는 방법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공간 한편에는 은행 민원 서식지를 넣어두는 곳에 입출금요청서 대신에 사계리 여행 지도가 엽서 형태로 들어 있습니다. 사계리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뿐 아닙니다. 로컬 식재료로 다이닝을 선보이기도 하고 지역 작가들의 전시도 열립니다. ‘사계리와 은행'이 가진 이야기 유산을 기반으로 모든 상품과 콘텐츠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산방산 부근에 위치한 사계리는 야트막한 집들이 모여있는 작은 동네입니다. 아마도 20년 전 이 큰 건물은 동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고 마주치고 안부를 묻던 곳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25년이 흘러 이 공간은 거래되는 상품이 금융에서 커피로 바뀌었을 뿐, 이야기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도시의 신축 상가에 있는 카페와 수 백 년 된 마을의 수 십년된 공간을 활용한 카페 중 당신은 어디에 더 ‘가보고 싶은’ 가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이야기를 만든다고 다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습니다-만 <사계생활>의 사례처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쌓여 있는 공간이라면 그 유산을 잘 이어받으면 오픈하는 날부터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이야기 유산에는 권리금도 없죠).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뉴트로 열풍, 지역의 도시재생사업 활성화, 그리고 가깝게는 을지로가 단숨에 힙지로가 된 배경에는 ‘이야기 유산'이 있습니다.

이야기 유산이 ‘공간’에만 적용될까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하나의 관심사를 일관되게 꾸준히 파온 사람을 우리는 ‘덕후'라고 부릅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덕후'는 부정적 의미가 강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골방에 틀어박혀서 돈벌이는 관심 없이 오로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외골수처럼 받아들여졌는데요. 최근에는 성공한 덕후가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어릴 때부터 PC방만 드나들었던 것 같은 동기인데 억대 연봉을 받는 IT개발자가 주변에 한 둘은 있을 것입니다. 이뿐인가요 평생 레고를 만들면서 온갖 핍박을 들었던 어른아이는 기어코 레고의 제품 디자인을 책임지며 어엿한 경제활동을 합니다. 덕후의 외골수적 '기질'은 이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역량'이 되어 경제활동으로 이어지거나 관심사의 깊이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 미디어의 조명을 받기도 합니다. 콘텐츠가 중요해진 시대임을 실감합니다. 미디어 플랫폼의 경쟁이 날로 심해지죠. 플랫폼은 콘텐츠가 있어야 존재하기 때문에 질 좋은 콘텐츠를 계속 만들거나 수급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습니다. 돈을 들이면 때깔 좋은 콘텐츠가 나옵니다만 시간을 들이면 복제불가능한 콘텐츠가 나옵니다.



복제불가능한 유산

"오늘부터 네가 먹고 싶은 빵이 생각나면 그때마다 그림으로 남겨보면 어때? 그림 옆에 재료 이름과 맛의 특징, 날짜도 써보는 거지."

조카는 요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조카에게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빵집을 차려서 손님을 받는-돈을 투자해서 가게를 구하고 인테리어를 하는-대신에 매일 하나씩 기록을 하면 어떨까요. 조카는 거의 매일 빵을 먹으니 사진, 그림, 영상, 글로 기록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손수 베이킹도 합니다. 조카가 서른에 빵집을 차린 다고 하면 16년간 남긴 기록이 5,000여 장이 되고 직접 만들어 본 빵이 약 800(주 1회 베이킹 기준) 개입니다. 창업하기도 전에 책이 서너 권, 레시피는 연구할 필요도 없이 800개 중 '의미를 가진 맛'을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블로그나 SNS에 꾸준히 올린다면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마케팅에 돈을 쓰지 않고도 손님을 찾아오게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사계생활>이 은행의 20년짜리 이야기 유산을 물려받았다면 14살의 조카가 30살의 조카에게 16년짜리 이야기 유산을 물려주는 겁니다. 5,000여 개의 기록과 800개의 빵은 창업을 준비하는 각오로 각 잡고 하면 1년 안에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기록은 쌓이지만 행간의 이야기는 그리 깊지 않습니다. 마케팅의 변수가 빈도와 커버리지라면 브랜딩은 시간과 밀도입니다. 그래서 브랜딩은 시간의 복리 효과를 누리는데요. 16년 전 기록과 1년 전 기록은 같은 내용도 값어치가 확연히 다릅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겠네요. 하나의 관심사가 시간의 세례를 받으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확장되면 세계관이 됩니다. 앞으로 팔리는 건 상품이 아니라 세계관입니다.



세계관으로 초대하다   

서울 사는 A 씨는 평소 러스틱 라이프에 관심이 있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SNS도 팔로우합니다. 그녀는 14살 때부터 빵, 향신료, 발효음식에 관심이 많아 동년배 친구들은 학원 뺑뺑이 돌고 있을 나이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꿋꿋이 시간을 쏟습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 그림으로 남긴 빵 레시피는 지금 봐도 너무 먹음직스럽고 또한 창의적이기까지 합니다. 빵과 식재료에 대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 블로그를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그녀의 생각, 선택, 삶의 태도에 위로와 대리만족을 얻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그동안의 기록을 모은 독립출판물을 냈다는 소식을 알게 됩니다. 작은 서점에서 저자와의 대화가 이벤트로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SNS, 블로그, 책으로 그녀의 빵과 라이프스타일을 흠모하던 어느 날, 그녀가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마을에 작은 빵집을 연다는 소식을 알립니다.                      

위 시나리오는 가상입니다. 키워드만 따서 기획안처럼 만들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목적: 베이커리 카페 오픈을 위한 사전 브랜딩
2. 실행기간: 16년
3. 실행 방법
   -콘텐츠: 빵->식재료->라이프스타일로 확장
   -채널: 블로그/SNS: 고객접점 Coverage 늘리기
   -독립출판물/저자대화: 밀도 Branding 높이기

시나리오에서 촉촉했던 감성이 기획안에서 순식간에 메말라버리는군요. 시나리오를 연역적으로 바꾸고 (그래서) 시간 순서가 바뀌니 ‘사전’ 브랜딩이라는 단어 하나만 넣었습니다. 저는 기획을 숱하게 해 왔지만 이런 기획안을 작성해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습니다. 기획안도 사실상 가상입니다. 그런데 가상 시나리오는 그럴듯해 보이는데 기획안은 왜 이토록 비현실적일까요. 다른 건 뭐 대단할 것 없습니다만 딱 하나, 실행기간 16년 때문입니다. 작은 빵집 하나를 열기 위해 16년간 사전 브랜딩을 한다니요. 부장님이 대노할 일이죠. 바꿔 말하면 16년의 시간 동안 꾸준히 할 의지와 관심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머지는 그냥 하면 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카의 경우처럼요.

공간 비즈니스는 크게 쪼개면 2가지의 해결인데요. ‘뭘 만들어서, 어떻게 오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이것이 공급자 입장에서 실행의 관점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일의 순서 상, 만드는 것이 먼저고 손님을 불러들이는 것을 그다음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대박 아이템'병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아이템이 좋아서 고객이 줄을 선 것이 아닌데 고객이 줄을 서는 걸 '보고’ 아이템이 대박이구나라고 생각해 버려서 그렇습니다. 인과관계가 잘못된 거죠. 고객이 줄을 서게 하려면 해야 할, 보이지 않는 1억 가지 일은 들여다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아이템만 ‘보는’ 병입니다. 고객은 일의 순서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해결할 2가지 문장의 순서를 바꿔 보겠습니다. ‘누구를 오게 하기 위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 문장에 인과관계가 생기고 아이템보다 고객이 ‘와야 할 이유 Reason Why’가 중요해집니다.

“일단 네가 하고 싶은지만 결정한다면 나머지는 삼촌이 알아서 해볼게”

서두에 조카에게 했던 말인데요. 누가 들으면 대단한 재력가 삼촌인가 싶습니다. 아쉽지만 제가 알아서 해본다는 건 투자가 아니라 브랜딩입니다. 조카의 관심사가 일관되고 뭘 하든 워낙 꾸준하게 하는 성격이라 이야기를 쌓으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어 딱 하나 모르고 있는 사실 하나만 제가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누군가를 오게 할 이유 Reason why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울 사는 A 씨는 조카가 문을 연 빵집(조카와 '고슴도치 빵집'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에 ‘가야 할 이유 Reason Why’가 명확합니다. 수년간 팔로우하며 그녀의 세상(세계관)을 동경하기 때문에 방문합니다. 빵 맛도 궁금할 텐데 그건 ‘명분’이겠고요. 자, 이제 돈을 태워 SNS에 ‘마케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서울 사는 A 씨들을 ‘초대'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세계관으로 초대하는 것이 곧 마케팅인 셈이죠.



필요, 이유 그리고 명분

대체로 다 설명을 한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생길지도 모를) 편견 하나를 깨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다수의 생각은 학교, 부모, 친구, 때로는 미디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개인에게 스며듭니다. 그래서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 사회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이 되어 버리곤 합니다. 조카는 문득 빵이 먹고 싶어지면 엄마에게 빵을 구워달라고 합니다. 조카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사람은 엄마가 유일합니다. 가장 맛있는 빵을 무료로 편리하게 제공하기 때문이죠. 어른이 되면 아마도 ‘엄마'대신에 ‘빵집'에게, ‘요청’이 아니라 ‘구매'를 하게 될 텐데요. 필요가 있어 구매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근데 집밖으로 나오면 선택지가 매우 다양합니다. 빵집이 다양한 것뿐 아니라 배고픔을 해결할 수단이 무한대로 늘어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먹어야 할 이유도 다양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배고파서,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려고, 스트레스받아서, SNS 하다가 예뻐 보여서, 아는 분 집에 가는데 빈 손으로 가기 뭐해서… 등등 돈 쓸 이유가 무궁무진한 세상에 던져집니다. 이 때는 이유가 있어 구매를 하게 됩니다. 필요가 있어 구매할 때는 상품이 중요한데 이유가 있어 구매할 때, 상품은 단지 명분에 불과합니다. ‘시발비용’을 예로 들면 쉬우려나요.

빵집이니까 마땅히 빵을 팝니다만 서울 사는 A 씨는 세계관에 초대받고 싶어서 빵집을 방문하는 것이고 빵은 30살의 조카와 A 씨를 연결하는 ‘구실’을 할 뿐입니다. 빵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4살 때부터 빵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애착도 기술도 더해져 누구보다 잘 만든다는 자부심도 생길 것입니다. 그건 그것대로 잘해야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에는 조카보다 더 맛있는 빵을 만드는 사람도, 더 멋진 공간도, 더 싸게 파는 가게도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14살 때부터 쌓아 온 조카의 이야기 유산은 세상에서 계속 유일하며 값어치를 고객이 스스로 매겨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게 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따라서, 팔아야 하는 건 빵이 아니라 16년 간 복리로 불어난 가치, 자신의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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