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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Aug 11. 2023

간판을 두 번 바꿔야 하는 이유

한글을 읽을 줄 알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게의 간판을 소리 내서 읽고는 했습니다. 세 살 버릇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길을 걸으면 간판을 자주 쳐다보곤 합니다. 다른 점은 어릴 적에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면 지금은 사장님의 의도를  마음속으로 읽어보고는 합니다. 간판은 안 보이는데 손님이 가득 들어찬 Bar, 잘 사용하지 않는 유선 전화번호를 써 놓은 부동산, 메뉴가 빼곡히 적힌 간판 등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담겨 있는 정보가 제 각각입니다. 많아 봤자 서 너 가지 정보로 씨름해야 하는 간판을 보면서 가게의 사정과 사장님의 의도를 추리해 보면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은 SNS나 포털에서 가게 홍보를 하다 보니 간판의 쓸모가 예전만 못합니다. 요즘 소위 힙하다는 카페들을 가보면 건물 귀퉁이에 누가 알아볼까 싶을 정도로 간판이 작게 걸려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을지로에는 간판이 아예 없는 가게도 있습니다. 이런 곳을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올까 싶지만 요즘 고객은 그럴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갈 곳에 대한 검증을 마치고 네이버에 좌표를 찍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간판은 ‘당신이 찾아온 곳이 바로 여깁니다' 정도의 기능이면 충분할 때도 있습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즐겨 봅니다. 2018년 1월에 첫 방송을 했고 4년 간 200회나 방영한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감동도 많았고 논란도 많았고 방송의 효과도 대단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백종원 대표의 비즈니스 철학이나 F&B사업에 대해 배울 점이 많아 일종의 예능형 교양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첫화에서 백종원 대표가 패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간판은 두 번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짜장면 가게를 예시로 설명을 했는데요. 첫 번째 간판은 <짜장면 잘하는 집, 춘향>, 두 번째 간판은 <춘향, 짜장면 잘하는 집>, 세 번째 간판은 <춘향>으로 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방을 보다가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브랜딩을 이토록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어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백종원 대표의 간판학개론(?)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깨달은 자신만의 통찰입니다. 브랜딩의 속성을 잘 드러낸 통찰이지만 백종원 대표는 브랜딩에 대해 설명한 것이 아니므로 브랜딩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편의 상 ‘브랜딩’을 주제로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업의 목적은 고객에게 내 제품/서비스를 가능한 오랫동안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입니다. 근데 제품을 기능적으로 잘 만들면 팔리던 과거와 달리, 내 제품에 어떤 가치를 얹어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가 중요해진 오늘날입니다. 몇 자 담기 어려운 간판, 그 안에서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얹어서 소통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간판, <짜장면 잘하는 집, 춘향>

금융 앱 <토스Toss>는 대한민국 국민 약 2천만 명이 사용하는 국내 최대의 모바일 금융 서비스입니다.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 사용하고 있으니 토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이야 국민 앱이 되었지만 토스도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무엇을 제공하는 서비스인지부터 알려야 했습니다. 핀테크라는 분야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토스의 서비스 출시 해인 2015년의 기사를 검색해 보면 토스를 설명할 때 <간편 송금서비스, 토스> 문구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스가 무엇을 하는 서비스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토스 앱을 열면 첫 화면에 ‘송금이 쉬워진다'라는 문구가 뜹니다. 일관되죠. 그렇다면 토스를 표현한 문구를 떼어내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무엇을 하는가(서비스) = 송금
무엇이 다른가(핵심가치) = 간편하다/쉽다
누가 하는가(브랜드명) = 토스


문구는 필수적인 세 가지만 결합되어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고 간결합니다. 백종원 대표가 간판학개론에서 첫 번째 간판으로 예시를 든 <짜장면 잘하는 집, 춘향>과 비교해 볼까요.  


무엇을 하는가 = 짜장면
무엇이 다른가 = 잘한다(맛이 좋다)
누가 하는가 = 춘향


토스와 춘향의 속성과 구조가 일치합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첫 번째 가게의 간판에는 <춘향>이라고 적혀있고, 두 번째 가게의 간판에는 <짜장면 잘하는 집, 춘향>이라 적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이 손님이라면 두 가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첫 번째 가게는 전라도 한정식 집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인이 필요하니 검색하거나 들어가서 뭘 파는 곳인지 물어보는 방법도 있겠군요. 두 번째 가게는 짜장면이 먹고 싶은 고객은 바로 가게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첫번째 가게에 비해 두번째 가게는 고객의 진입 허들을 최소 한 가지는 없앴습니다. 진입이 간소해진 두번째 가게가 신규 고객이 찾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 간판은 신규 고객이 서비스를 알기 쉽게 홍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간판, <춘향, 짜장면 잘하는 집>

이제 두 번째 간판으로 바꿔 달았습니다. 서비스 설명이 슬그머니 브랜드 명 뒤로 갔습니다. 두 번째 간판을 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통 성명을 합니다. 관계 맺기에서 이름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첫째, 지정입니다. 편의성 때문입니다. 호칭이 있어야 다수의 사람들 속에서도 상대방을 지정하여 호출할 수 있습니다. ‘저기요'로는 원하는 대상을 빠르게 불러낼 수 없습니다. 둘째, 저장입니다. 통 성명이 이루어진 후부터는 상대방과 관계 맺는 동안 인지하는 모든 정보와 감정이 ‘이름'안에 고스란히 저장됩니다. 상대방이 밝힌 이름이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과 같을 때, 우리의 뇌는 빠르게 동창과의 과거 기억들을 소환합니다. 특정 이름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관계를 맺는 동안 자신의 이름에 저장되는 정보와 감각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의도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이것을 '브랜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게를 열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짜장면을 잘하는 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오는 손님도 더러 보입니다. 단골들도 생겼을 테고요. 그러고 보니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고객 그룹이 다양해졌습니다. 신규 고객 그룹, 오가닉 고객 그룹 그리고 충성 고객 그룹입니다. 신규 고객 그룹은 광고로 유입된 고객입니다. 고객획득비용 CAC(Customer Acquisition Cost)이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짜장면 잘하는 집'이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오가닉 고객 그룹은 광고 없이 유입된 고객입니다. 지인의 추천이나 소문을 듣고 직접 검색해서 찾아온 고객인 동시에 충성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에는 ‘춘향'이라는 상호명만 있어도 한정식 집으로 오인하는 일은 없습니다. 충성 고객 그룹은 광고 없이 유입된 고객이자 주변에 바이럴을 만드는 고객입니다. CAC는 제로에 수렴하고 고객생애가치 CLV(Customer Lifetime Value)는 높습니다. 충성 고객은 누적 방문을 통해 얻은 브랜드 경험 정보들을 ‘춘향'이라는 이름에 저장합니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가게를 홍보하는 ‘움직이는 간판’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겐 간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로열티를 높이는 관리가 필요할 뿐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간판은 각 고객군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홍보를 지속함과 동시에 다회 방문자에게 서비스를 주는 쿠폰제도를 도입하거나 단골손님에게 사장님의 재량으로 군만두를 서비스로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간판에서 브랜드 명이 앞으로 왔으니 이제 서비스 설명을 떼어낼 일만 남았네요. 브랜드 명만 남는다고 하니 뭔가 허전하고 그래도 되나 싶기도 합니다. 더하는 것보다 덜어 내는 것이 늘 어려운 법입니다. 



세 번째 간판, <춘향>

이쯤 되면 단골이나 동네 분들은 ‘춘향'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춘향전보다 짜장면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짜장면으로 유명해진 춘향을 방문하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섭니다. 일대가 시끌벅적해질 정도가 되면 필시 인근에는 <짜장면 더 잘하는 집, 가향>이 생겨납니다. 곧 짜장면 거리도 생길 것입니다. 원조딱지가 간판에 하나 둘 새겨집니다. 이제 춘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짜장면 거리를 방문해 그럴싸해 보이는 곳에 들러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광고비를 더 많이 집행한 가게가 이기는 치킨, 아니 짜장면 게임이 시작됩니다. 세 번째 간판은 고객 로열티를 높이기 위해 관계 관리를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름과 제품 너머에 있는 무형의 가치들을 전달하고 팬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일에 착수해야 합니다. 충성 고객 그룹은 춘향의 간판(PR)으로 Foot in 했지만 관계(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로 Lock in이 되어 있습니다. 단골 고객은 춘향의 사장님이 어떤 동기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사장님은 단골 고객에게 짜장면의 맛은 변함이 없는지 서비스에 불편함은 없는지 물어 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문했더니 의견을 냈던 것들이 개선(PMF:Product Market Fit)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혜택도 늘어 갑니다. 몇 년이 지나니 확장도 하고 분점도 낸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단골 고객은 제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줍니다. 짜장면 거리가 생겨도, 신규 가게가 홍보를 아무리 많이 해도 춘향의 팬을 데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앱등이를 만들어내는 ‘애플'처럼 말이죠. 오랜 아이폰 유저가 갤럭시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가격, 기능, 디자인의 매력 외에 한 가지 허들이 더 있습니다. ‘애플을 배신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그걸 뛰어넘지 못해 25년째 타사 핸드폰은 써 본 적이 없는 찐 앱등이입니다.


첫 번째 간판, 신규 고객이 서비스를 알기 쉽게 홍보해야 합니다.

두 번째 간판, 각 고객군에 맞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 간판, 고객 로열티를 높이기 위해 관계관리를 해야 합니다.


‘간판은 두 번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회사의 성장에 맞는 브랜드 전략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지정하고 고객에게 알리는 순간부터 브랜드의 모든 활동은 이름에 저장됩니다. 신규 고객이 많이 찾아오고 충성 고객도 늘어나면서 <짜장면 잘하는 집, 춘향>이 <중국요리 잘하는 집, 춘향>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송금이 쉬웠던 Toss가 ‘금융의 모든 것’이 된 것처럼요. 팬들이 커피를 원한다면 ‘커피 잘하는 집’이라는 카페를 론칭하여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백종원의 홍콩반점 옆에 빽다방이 생긴 것처럼요. 간판은 두 번 바꿔야 합니다. 단, 브랜드가 가진 생각(철학/미션)은 바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관성이 담보되면 브랜딩의 누적효과를 복리로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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