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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Sep 24. 2023

브랜드의 적

첫 번째 적: 편견

미국 MIT 대학교에 다니던 김형수 씨는 시각 장애를 가진 베넷(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듣곤 하는데 그때마다 베넷은 김형수 씨에게 시간을 물어보더랍니다. 그의 손목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시계가 있었지만 버튼을 누르면 음성이 나와 시간을 알려주다 보니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굳이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주변에 알리는 것 같아 시계 버튼을 잘 누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에 김형수 씨는 베넷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점자 시계를 개발하기로 합니다. 초기 제품을 완성한 후, 시각장애인의 평가를 듣기 위해 관련한 단체를 찾아가 그곳에서 그는 뜻밖의 질문과 마주합니다. 


“어떤 색인가요? 전 밝은 색이 좋습니다. 사이즈는요?” 

시각장애인은 앞이 보이지 않으니 기능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김형수 씨는 디자인을 묻는 그들의 질문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김형수 씨는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초기 제품의 실패 후, 김형수 씨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개발에 몰두하여 손으로 만지는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내놓습니다. 김형수 대표는 ‘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킥스타터에 론칭하여 역대 13번째로 높은 금액을 모금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지금도 장애인, 비 장애인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계 브랜드입니다. 저도 하나 소장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애플워치를 사용하지만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는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꺼내 착용하곤 합니다. 시계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멋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적: 일반화

임산부인 지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술이 너무 마시고 싶어서 무알콜맥주를 사 마셔봤는데 안 먹느니만 못하다고요. 너무 '맛'이 없다는 겁니다. 초창기의 무알콜맥주를 마셔본 사람들은 그 맛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워낙 맛이 없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맥주가 아니라 '맥주 코스프레'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습니다. 무알콜맥주, 알코올만 빼야지 맛도 빼버리면 곤란합니다. 물론 그럴만한 명분은 있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회사에 근무할 때 무알콜맥주 출시 프로젝트에 살짝 발 담근 적이 있어, 두 번째 적은 조금 상세하게 풀어내보겠습니다.  

무알콜 맥주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무알콜맥주 시장 규모는 2012년 13억 원, 2014년 81억 원에서 지난 2020년 150억 원, 2021년에는 200억 원으로 약 247% 규모로 성장했으며, 2025년 2,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주류업계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해당 시장은 무알콜맥주와 논알콜맥주를 모두 포함합니다. 둘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은 무알콜맥주는 알코올이 0.01%도 포함되지 않은 맥주로 ‘0.00’으로 표기합니다. 논알콜맥주는 0.03~0.05%의 알코올이 포함된 맥주로 ‘0.0’으로 표기를 합니다. 알코올 도수의 차이를 만드는 건 제조 과정의 차이입니다. 무알콜맥주의 경우 효모를 첨가하지 않아서 발효 과정 자체를 제거한 음료입니다.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 하이트 제로가 이에 해당합니다. 과일맛 캔디 같은 것이죠. 논알콜맥주는 그나마 양심적(?)입니다. 기존에 맥주를 만들던 방식을 따르되 마지막 여과단계에서 분리공법을 통해 알코올만 제거하거나 발효 과정 중 5-10시간 내 발효를 중단시켜 알코올이 생성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차단합니다. 칭따오 논알콜릭, 하이네켄 제로, 버드와이저 제로가 이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주세법은 알코올도수 1% 미만에 해당하면 ‘음료'로 규정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유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온라인 유통의 장점은 무알콜맥주 시장의 성장에 중요한 한 축입니다. 편의점, 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에 멱살을 잡혀 온 제조사에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일입니다.


1) 하이트제로 0.00은 술이 약하거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알코올 걱정 없이 술자리에서 어울리고 싶은 고객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며 무알코올 웰빙음료인 하이트제로 0.00을 통해 건전음주문화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2)"술도 좋지만 건강도 중요해"… 헬시플레저 열풍에 '무알코올' 맥주 인기


1)은 2012년 11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하이트진로가 무알콜맥주 <하이트제로 0.00>을 출시한 뒤의 대표이사 인터뷰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2)는 2023년 2월, 건강 관련 매체인 <매경헬스>에서 무알콜맥주 시장을 다룬 기사의 제목입니다. 12년의 시간 차가 나는 두 기사 모두 무알콜맥주의 니즈와 인기 요인을 ‘건강'에서 찾습니다. 해당 시기의 다른 언론 기사나 보도자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당신은 건강을 위해 무알콜맥주를 마시나요?”  


위 차트는 2022년 5월 하이네켄이 최근 3개월 이내 무알콜과 논알콜 맥주 음용 경험이 있는 전국 거주 2030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입니다. 무알콜맥주를 마시는 이유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가 52.4%로 응답자의 절반이 넘습니다. ‘취하고 싶지 않아서'도 43.4%로 절반에 가깝네요. 그렇다면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설문 문항을 각색해 보겠습니다. 직장 상사나 친해질 필요를 못 느끼는 동료와의 회식 자리에서 소위말해 ‘건배'용 음료가 필요한데 무알콜맥주가 사이다보단 체면치레하기 좋습니다(50.4%). 차를 갖고 왔다면 대리 비용이 얼만지 앱에서 확인해 보고 술을 자제할 것이고요(31.2%). 내일 면접이 있는데 긴장된다면 친구와 수다를 떨 연료가 필요합니다(29.6%). 땀 흘린 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주는 짜릿함에 운동하는데 취하지는 않는데 짜릿함은 준다면? 안 마실 이유가 없겠습니다(22.8%). 


술이 올라오는 게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근데 제 주변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요즘엔 무알콜 맥주를 즐겨 마시더라고요. 차박, 피크닉, 재택근무, 그리고 다이어트까지! 맥주의 시원청량함은 여전히 갈망하면서도 취하고 싶지 않고 취할 수 없는 조금 더 가볍게 즐기고 싶은 그런 순간은 많으니까요.   


디에디트의 <가장 맛있는 무알콜맥주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아티클의 일부입니다. 디에디트는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라는 슬로건을 내건 MZ향의 뉴미디어입니다. 하이네켄의 정량적 조사내용을 MZ세대의 현실에 밀착하여 무알콜맥주의 니즈와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객은 ‘건강한 맥주’가 아니라 ‘안 취하는 맥주’가 필요합니다. 

앞서 같은 설문의 또 다른 문항입니다. ‘술도 좋지만 건강도 중요해, 헬시플레저 열풍에 무알콜맥주 인기'라던 기사 제호와는 달리 칼로리를 고려하는 MZ세대는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또한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선택하려면 알코올 함량이 중요합니다만 이 조차도 18.4%에 그칩니다. 반면 ‘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는 56.4%나 됩니다. 같은 설문을 2012년에 했어도 유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2012년의 무알콜맥주는 건강상의 이유로 알코올이 든 술을 마시기 어려운 고객을 붙잡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알코올을 제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맛도 제거(?)된 회사만의 사정은 알지만 시각장애인에게도 시계가 아름다워야 하는 것처럼 임산부에게도 맥주는 맛있어야 합니다. 고객은 ‘건강한 맥주’가 아니라 ‘안 취하는데 맛있는 맥주’가 필요합니다.   

“마셨을 때 논알콜맥주라는 것을 소비자가 알아채서는 안 된다.” 제주맥주에서 논알콜맥주 <제주누보>를 개발할 당시 양조팀에 떨어졌던 미션이라고 합니다. 대기업 무알콜맥주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제주누보>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쟁여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주누보>를 총괄하는 윤상진 팀장에 따르면 논알콜맥주는 왜 기존 맥주보다 맛있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서 기획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품 개발의 주안점이 첫째도 맛, 둘째도 맛입니다. 무알콜맥주 시장의 Pain Point를 ‘맛없는 맥주'로 본 것입니다. 

수많은 기획안의 타겟 고객에 MZ세대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건강한 삶’을 중요시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특징은 개인주의적 성향입니다. 이 말은 기업이 특정 집단을 일반화하여 고객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 합니다. M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등극하고 MZ세대는 건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맥주마저 건강해져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시장조사를 위해 기사를 찾기보다는 통계를 찾길 추천합니다. 통계보다는 나가서 직접 만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기획안에 존재하는 논리가 현실에서 맞지 않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현실(데이터)과 동떨어진 '정보'에 기인합니다. 데이터가 가공되는 데는 목적성이 있습니다. 특히나 기사라면 틀린 말은 아닌 수준에서 적당히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일반화를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 정보'들을 모아 기획을 하면 틀린 기획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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