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차리면 돈 못 법니다.
얼마 전 퇴사한 전 직장 동료를 만났습니다. 이직을 앞뒀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회사 생활 10년쯤 넘어가면, 옮기는 회사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그놈이 그놈이지 하며 내려놓습니다. 부모님 세대에는 누구나 '사표'를 품고 회사를 다녔다고 하죠. 요즘은 누구나 '사업자등록증' 하나씩은 품고 회사를 다닙니다. 여차저차하여 이직으로 결론이 났지만 창업해 볼 생각도 있는 듯한 뉘앙스입니다. 근황 토크가 끝나갈 때쯤 대뜸 질문, 아니 탄식이 날아듭니다.
"휴... 뭐해서 먹고살아야 할까요?" 대뜸 날아들었으니 저도 대뜸 대답합니다.
"음... (인간이 아니라) 유전자의 Needs를 따를수록 돈을 벌 확률이 높아요."
최근 탕후루를 두고 우리나라가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MZ 세대, 특히 성장기 아이들이 탕후루를 유행처럼 사 먹습니다. 어느덧 동네에는 <쥬시>가 사라진 자리를 탕후루 가게가 대신합니다. 탕후루 열풍을 본 기성세대는 급기야 탕후루 업체 대표를 국감장에 불러 세워 명분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홍대나 명동이 활동 지역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탕후루는 최근의 '시끌벅적'한 논란이 있기 훨씬 전부터 '호젓하게' 팔리고 있었습니다. 중국까지 영역을 넓히면 800년 된 유서깊은 간식입니다. 우리나라에 갑작스레 열풍을 몰고 온 배경을 추측컨대 인기 있는 먹방 유튜버가 집에서 탕후루를 만드는 방송이 트리거가 되었을 것이고 창업의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한(낮은 초기투자비용, 누구나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탕후루는 저비용 중고소득의 사업 아이템으로 각광받으면서 자영업자의 타겟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4명 중 1명이 자영업을 합니다. 이처럼 공급은 빵빵했고, 수요 또한 뿌리 깊었습니다. 20만 년 전부터 모두가 원해 왔으니까요.
'나뭇가지에 낀 빨간 과일'의 모습을 한 탕후루를 20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가 봤다면 일말의 경계 없이 맛봤을 뿐만 아니라 환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던 약 20만 년 전은 수렵-채취 시대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잡아 먹힐 위험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이때 과일을 통해 섭취할 수 있었던 '당'은 일시적으로 열량을 높여줌으로써 굶주림과 사냥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가 (초록색 숲과 보색 대비 색상인) 빨간 과일을 보며 먹음직스럽다고 느끼는 것도 진화의 산물입니다. 현대 사회의 생활양식이 나타난 것은 고작 200여 년 전으로 진화의 역사에서 볼 때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20만 년 전부터 유전적으로 '당'을 선호하도록 진화해 왔고 현대의 생활양식과 무관하게 그것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기심 가득한 유전자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탕후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기에 유리한 '당'을 먹도록 계속해서 뇌에 신호를 보낼 뿐입니다.
탕후루를 극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탕후루를 즐겨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라면 누구나 좋아해야 마땅합니다만 왜 둘로 나뉘는 걸까요? 전자는 사회적 관념을 따른 것이고 후자는 유전자를 따른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200년 된 현대 인간은 탕후루를 싫어하(는 것이 옳다고 믿)지만 20만 년 된 유전자는 탕후루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유전자는 변화하는 데 수 만년이 걸리지만 인간의 관념은 당장이라도 변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말이죠. 그래서 탕후루를 먹는 '아이' 사람을 보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어른' 사람이 야단을 치는 모순된 풍경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탕후루의 당함량은 9~20g(1개 기준), 코카콜라의 당 함량은 27g(500ml 기준)으로 콜라가 탕후루보다 훨씬 높습니다. 건강을 위해 당 섭취를 줄이자는 사회적 관념이 옳다면 코카콜라는 매일 20억 잔씩 팔리지 않아야 하며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130년간 계속 오르지 않았어야 합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탕후루 대표자와 함께 도넛 열풍을 일으킨 노티드 도넛(당햠량 27g, 가장 최근 유행한 브랜드로써, 도넛을 대표하여 언급함)의 대표자도 국감장에 함께 불렀어야 합니다.
탕후루는 지탄받고 콜라는 물처럼 마시고 노티드는 열광합니다. 왜일까요? 과도한 당 소비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명분이고요. 콜라와 도넛은 (비록 당이 많지만) '먹기로' 사회적 합의를 마쳤고 탕후루는 그 과정을 좀 기이한 모습으로 거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사회적)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이길 강요받고 (유전자적)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길 '선호'합니다. 이 또한 진화적 산물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보다 몸집이 큰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최후의 인간종이 된 이유는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에 탑재된 유전자는 '당'을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협력'도 선호함에 따라 도덕적인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주류의 관념에 동조하고 협력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래서 주류의 관념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탕후루 대표자를 불러 세워 야단치고 언론이 나서서 이 사실을 확산하고 일반 대중이 옹호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명료한 사실에 근거할수록 의사결정의 질은 높아집니다. 관념은 가변적이고 모호하여 '사실 또는 진실'을 가립니다. 앞선 사례에서 관념, 도덕적 가치 판단을 모두 걷어내면 오롯이 하나의 '사실'만 남습니다. 탕후루도 노티드도 코카콜라도 '돈을 벌었다'는 사실 Fact입니다. 따라서 해당 사실 기반에서는 인간이 유전적으로 가진 '당 선호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사업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위워크 Wework>의 사례에서 보듯 사업을 실패에 이르게 하고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위협을 끼치는 요인 중 하나가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명료한 사실]
탕후루는 인간 유전자가 가진 당 선호 본능을 자극하는 비즈니스이고 사회적으로 '먹자고' 합의가 되지 않은 상품입니다(그래서 단기간에 성장했고 국감장에 불려 간 것).
현대 사회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쇼츠를 무한스크롤하는 99% 사람과 그 무한스크롤을 개발하고(자본가) 용인하기(정치가) 위해 욕망을 극도로 제어하는 1% 사람 간의 균형으로 유지됩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에는 전 세계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이 80억 명의 집중력을 빼앗기 위해(욕망에 따르도록 하기 위해) 일하고 있으며, 정치가는 10대 청소년의 집중력이 65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용인하기 위해 적절한 관념(예를 들면 정보 공유의 효용성, 경제 성장률을 견인하는 테크기업)을 가져다 대중의 관심을 돌립니다. 그리고 청소년은 더 큰 도파민의 자극을 찾아 탕후루와 도넛을 사 먹습니다. 잘 짜여진 각본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내 한 몸 뉘일 방법은 없을까요.
요가와 필라테스가 유행하면 돈을 버는 것은 요가원이나 센터가 아니라 룰루레몬(시가총액 7,000억 원, 연평균 30% 성장)입니다. 요가원의 본질은 욕망을 제어하는 곳(유전자는 붓다를 싫어합니다)이지만 요가복은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도록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요가의 유행이 필라테스로 옮겨가서 증폭될 수 있었던 것은 '거울' 때문입니다. 혼자 가야 하는 운동인 요가나 필라테스는 애석하게도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의 팔 길이는 수려한 자세와 요가복의 아름다움 전체를 담기에는 턱없이 짧습니다. 자신의 움직임을 (고유수용성) 감각으로 인지하는 운동인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습니다만 내 몸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필라테스 센터에는 사방팔방 거울이 있어 수업 시작 전 5분만 일찍 가면 오늘 새로 산 룰루레몬 요가복을 인스타그램에 인증할 수 있습니다. 요가의 본질(관념)을 충실히 따르기로 한 요가원 사장님은 거울이 웬 말이냐 할 것이고 유전자의 욕구를 따르기로 한 사장님은 요가원에 거울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을 공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선택일 뿐입니다. 요가의 원형에 천착(한다고 믿는)하는 요가원 사장님이 요가원에 거울은 좀 아니지 않냐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걱정이라면 5천 년 전 요가원에는 룰루레몬을 입고 만두카를 들고 오는 사람이 없었을 것 아니냐고 반문해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전국 요가원에 거울이 난무하면 (정치인이 요가에 그렇게 주목하지는 않겠지만) 국감장에 불려 갈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업의 애매한 성공과 분명한 실패의 사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면 이처럼 사회적 관념을 우위에 둔 의사결정이 많습니다. 소위 말해 '체면'차리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 체면은 항상 옳음이 없으며 때에 따라 (힘 있는 자에 의해) 명백한 사실을 가리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탕후루를 극혐 하지만 동시에 콜라를 마십니다. 이것을 모순이라고 느끼는 것은 사회적 관념에 따른 결과입니다. '당'을 좋아하고 '협력'을 주문하는 유전자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 유전자를 따르면 돈이 되느냐!? 물론 가능성이 높아지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체면(관념)을 따르면 돈을 못 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